2025년 1분기에 첫 등록하신 한윤희 샘께서 작년 3월에 시집을 출간하셨습니다.
보유량이 많지 않아 현대시창작반원 모두께 시집을 돌리지 못함을 죄송해 하시네요.
제가 대표로 받아 여기 세 편의 시를 공유합니다.
한윤희 샘, 첫 시집 출간에 늦은 박수를 보냅니다.^^
석류나무 죽다 외 2편
한윤희
젊은 석류나무가 죽었다
한창 꽃 피워 열매 맺기 좋을 때
입던 옷 가지런히 내려놓고
계절 없는 삭정이로 서 있다
홍보석 닮았다며 환호작약하던
동네 팬들의 소리도 잊은 채
부고 없이 달려온 참새들만
쓸쓸한 빈소를 지킨다
거미줄로
긴 만장輓章을 드리우고
줄지어 앉아
슬픈 라멘트를 부른다
가을을 기다리던
이유 하나가 같이 죽었다
컬러 오브 더 나이트
밤은 무채색이라고 노래하는 시인이 있다
그는 모른다
밤새 도시를 비추는 샛노란 별빛을
슬플 때면 나타나는 블루문을
새벽어둠 밀고 나오는
저 영롱한 주홍빛 여명을 보라
비 끝에 오색 무지개가 꼬리를 접고
해질 때 빨간 노을이 하나씩 내려앉는데
색깔 없이 밤이 잠들 리 없지 않은가
촛불 창가에서 붉은 장미를 곱게 든
연인이 애절한 세레나데를 부르는데
무채색 사랑이 기다릴 리 없지 않은가
밤은
시안, 마젠타, 옐로우가
배추 단처럼 꽁 묶인 컬러 주머니
지금은 인터미션중인 불 꺼진 극장
잠시 후면 총천연색 연극이 펼쳐질
우로보로스의 원圓*
막 열던 밥뚜껑이 떨어져 돌기 시작하고
엎질러진 물컵이 덩당아 돈다
시침時針 하나가 돌아갈 때
길고양이가 꼬리를 물고 돈다
짧은 하루가 돌고
한 달이 돌고
일 년이 돌고
눈물이 마르는 동안
어머니의 한 생애가 돌고
우주가 돌고
우주의 우주가 돌고...
만물이 다
우로보로스의 원圓을 따라 돈다
*그리스어로 자시느이 꼬리를 물어서 원형을 만드는 뱀이나 용. 시작이 곧 끝이며 끝이 곧 시작이다.
윤회나 영원성의 상징으로 쓰인다.
―『우로보로스의 원圓』, 심상,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