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노을해안로 1163 (한경면 고산리 3592-1번지)
영업시간 매일 09:00-17:00
064-738-5355
주차장 무료주차
유람선&섬탐방 성인, 청소년 18,000원 소인(12세 생일전 초등학생) 13,000원
노을투어&유람선&섬탐방 성인, 청소년 22,000원 소인 17,000원
예약할인 성인, 청소년 14,800원 소인 13,000원(현장 결제)
제주투어패스를 이용하면 무료로 탑승할 수 있다. (추가비용 없음)
미리 예약할 필요는 없으나 항차별 선착순 입장이다. 이용 당일 현장 매표소에서 선착순 티켓팅을 한다.
꼭 탈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조금 일찍 서둘러야 한다.
탑승 시 승선 신고서와 탑승자 전원의 신분증(아이는 등본)이 필요하다. (미지참시 탑승 불가)
9인 이상 이용은 유선(064-738-5355)으로 이용 가능 여부를 문의하여야 한다.
항차별 예약 인원이 최소 10인 이상일 때만 출항이 가능하며, 10인 이하인 경우 출항이 취소 될 수 있다.
출항 30분전 도착 필수 (해당 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한 경우 탑승이 불가할 수 있다.)
섬 탐방 시 운동화 필수 지참이다. (센들 이용 불가)
차귀도 까지 배로 10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나중에 나올 때 배를 타고 10분정도 유람을 하며 설명을 해준다.
차귀도 섬에서 자유롭게 탐방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이다.
그래서 총 소요시간은 약 1시간30분이 걸린다.
박여사가 탑승 신고서를 작성하는 동안 고산포구(자구내포구)를 둘러보았다.
자구내포구에서 밤에 출항을 기다리며 정박해 있는 오징어배를 만났다.
한경면 주변 바다는 예부터 오징어잡이로 유명한 곳이었다.
주변엔 매끈한 반건조 오징어가 셀수 없이 많이 줄에 매달려 있다.
다들 출항을 기다리다가 기웃기웃 유혹을 참지 못하고 한 두마리씩 구입해서 먹는다.
즉석에서 구워주는 반건조오징어의 꾸덕꾸덕 쫄깃함에 만족도는 대단히 높은 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반전이 있다. 여리서 작업하는 화살오징어는 전부 수입 냉동 오징어란다. 작업해서 이렇게 말리는 거라고...
고산포구에서 바다바람에 말렸으니 어디서 잡힌 오징어든 고산포구 준치인 셈이다.
당상봉을 배경으로 둔 고산포구에는 갈매기들도 앉아서 한가롭게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차귀도는 제주에서도 아열대성이 아주 강한 지역으로 바닷속에 많은 물고기가 서석해
강태공들이 좋아하는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제주투어패스 차귀도달래 돌핀뷰배낚시도 바로 이곳에서 신청하고 탑승한다.
차귀도 해안 절경과 돌고래가 뛰어노는 이색적인 뷰를 만끽하며 초보자도 문제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배낚시 체험이다.
사전예약 필수로 차귀도달래 돌핀뷰배낚시 하단 예약하기를 누르고 30분 내에 추가요금(1인 15,000원)을 입금해야 한다.
사전예약 오픈은 이용일 기준 48시간 전에 시작한다.
몇년전에 온가족이 함께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가족 모두가 배멀미로 죽다 살아났다.
초보도 쉽게 낚시를 할 수는 있으나 작은 배의 출렁임을 경험해 보지 못한 도시촌놈들은 절대 이용하면 안된다.
다리 숫자는 꼭 세어봐야한다. 예전에는 말리면서 다리 하나씩 떼어먹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절도로 큰일날 수 있다.
오징어다리는 열개, 문어다리는 여덟개
다리 숫자는 적지만 문어가 훨씬 비싸다.
제주도의 여러 섬 중에서도 그 자태가 빼어난 차귀도는
손에 잡힐 듯 바다에 잠긴 모습이 주는 당당함이 보는 이의 넋을 놓게 하는 곳으로,
옛날 중국 송나라 푸저우(福州) 사람 호종단(胡宗旦)이 이 섬에서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여
섬의 지맥과 수맥을 모조리 끊은 뒤 고산 앞바다로 돌아가는 길에 날쎈 매를 만났는데
매가 돛대 위에 앉자 별안간 돌풍이 일어 배가 가라앉았다.
이 매가 바로 한라산의 수호신이고 지맥을 끊은 호종단이 돌아가는 것(歸, 귀)를 막았다(遮, 차) 하여
차귀도라는 이름이 전해오고 있다.
차귀도는 대섬인 대도[竹島], 지실이섬, 와도 등 세 개의 섬과 장군여, 썩은여, 간출암(干出岩) 등의 여(礖)로 이루어진 섬이다.
[참고] 여(㶛)와 초(礁): 일반적으로 바위가 썰물 때 드러나는 바위를 여(礖), 드러나지 않고 물밑에 잠겨 있으면 초(礁)이다.
가장 가까운 섬인 와도와 그 너머로 본섬인 죽도, 그리고 왼쪽으로 독수리 바위 또는 매바위로 불리는 지실이섬으로 이루어졌다.
차귀도는 섬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특히, 해질 무렵 노을이 지는 순간 바다와 섬과 석양이 연출하는 장관이 더욱 유명해서
그 장엄함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늘 이어진다.
그래서 조금 더 요금이 비싼 노을투어를 진행하는데 제주투어패스는 이용할 수 없다.
또한 전국적인 낚시터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어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차귀도 섬탐방은 본섬인 죽도(竹島)에만 내릴 수 있고... 와도(누운섬)와 지실도(지실이섬)는 배로 유람하면서 설명만 해준다.
오징어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려 꾸덕꾸덕 맛있게 바닷바람에 건조되는 풍경이 정겹다.
제주도에서는 이곳 자구내의 해풍에 꾸덕꾸덕 마른 반건조 오징어를 "준치"라고 한다.
"썩어도 준치" 그 맛있는 물고기 준치가 아니다. 다리 길이가 한치밖에 안된다고 해서 붙여진 작은 오징어 한치가 있는데...
한치와 오징어의 중간쯤 되는 이 화살오징어를 "중치"라고 부르다가 지금의 "준치"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한경면 고산리 자구내 포구에 세워진 이 등대는 속칭 도대불(돛대불: 돛대처럼 높이 켠 불)이라 한다.
1941년 고산-목포간 화물선의 유도등으로 세워졌으나
바다에 나간 고기잡이배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불을 밝히기도 하였다.
사다리를 이용해서 올라 다녔으며 꼭대기의 집모양은 근래에 만든 것으로
처음에는 유리로 된 등집에 석유등을 올려놓았던 굥간이다.
등대라고 하지만 다른 곳에 있는 등대와는 다르다. 제주에만 있는 고유 유산으로 등명대(燈明臺, 일명 도대불)라고 부른다.
희소하기도 하고 제주 현무암을 응용해 독특한 형태로 축조돼 가치가 높아
2021년 7월 28일 제주도 지정 등록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고산리 도대불은 현무암을 직육면체로 다듬어 층 쌓기 방법에 따라 사다리꼴 형태로 축조되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각이고 정면에서 보면 사다리꼴 형태를 띤 것이다.
밑 부분에서 중허리까지는 점점 좁혀 쌓고, 중허리에서 윗부분까지는 같은 폭을 유지하며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게 쌓았다.
시설물 위에는 콘크리트로 점등 도구를 보호할 수 있는 조그만 구조물이 만들어져 있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어 철제, 혹은 목재 사다리를 사용하여 등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는 하단 190cm, 상단 87cm, 높이 285cm 이다.
옛날에 설문대할망이 오백명의 아들을 데리고 한라산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식구가 워낙 많다 보니 그날그날 구걸을 해 와야만 끼니를 마련할 수가 있었다.
하루는 아들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할망은 아들들이 먹을 죽을 큰 가마솥에 끓이며 죽젓개로 휘휘 젓다가 잘못하여 가마솥에 빠져 죽과 함께 끓여지게 되었다.
오백 형제들은 구걸한 쌀을 짊어지고 늦게야 돌아왔다.
그들은 배가 고파 허기부터 채우려고 어머니를 찾을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죽을 떠 먹었다.
그날따라 죽 맛이 좋다 생각하면서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늦게 온 막내아들이 어머니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다가 가마솥을 죽젓개로 젓자 사람 뼈를 발견한 막내는 그것이 어머니의 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막내아들은 크게 서러워하다가 무심하게 어머니가 빠져 죽은 죽을 먹은 형들을 원망하며 떠났다.
막내는 고산 앞바다 차귀섬 앞에 가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다가 그만 바위가 되어 버렸고,
499형제는 그 자리(지금의 영실)에서 그대로 굳어져 바위(차귀도 죽도 장군바위)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당산봉은 한경면 고산포구 옆에 있는 오름으로 올레길 12코스의 끝자락에 있으며 세계지질공원 주요명소이기도 하다.
당산봉이라는 명칭은 오래전부터 뱀을 제사 지내는 신당(차귀당)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산봉은 물과 마그마의 폭발적인 반응에 의해 형성된 수성화산체로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산방산과 용머리와 더불어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 중 하나이다.
당산봉은 15분의 짧은 코스인 A코스와 40분이 소요되는 B코스로 나누어지니 시간에 맞춰 둘러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
당산봉 정상까지 경치를 충분히 감상하면서 오르다보면 정상 바로 밑으로 거북바위와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북쪽으로는 신창 풍차해안도로가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수월봉, 산방산까지의 푸른 해안이 한눈에 펼쳐진다.
푸른 해안과 함께 한경면의 고즈넉한 평야의 풍경을 즐기는 것 또한 일품이다.
좌측으로 지실도(지질이섬)와 본섬(대섬)인 죽도는 멀리있어 흐릿하게 보이고
우측으로 해안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와도(누운섬)는 비교적 선명하게 보인다.
오징어는 8개의 짧은 다리와 2개의 긴 촉완을 가지고 있다.
촉완은 오징어가 탐색할 때 주로 쓰는 다리라 빨판이 가장 더럽다고 한다. 잘 씻어서 먹어야 한다.
그런데 제일 왼쪽에 있는 오징어는 촉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돌연변이인가?
이 배를 타고 차귀도로 간다. 제법 탐방객이 많아서 배의 좌석은 모두 채워졌다.
2016년 1월 9일에 다섯가족이 모두 차귀도 탐방에 나섰었는데... 벌서 7년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배가 출발하고 10분만에 금방 차귀도 본섬인 대도 혹은 죽도(竹島)에 도착했다.
제주도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섬인 차귀도는 섬 자체가 천연보호구역으로 천연기념물 제422호이다. (2000년 7월 18일 지정)
정말 딱 그렇게 보인다. 영롱한 비취색의 바닷물이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감돌게 한다.
천연기념물로 보호해야 할 것 같은 모습이다.
한경면 서쪽에 위치해 있는 섬이기 때문에 수월봉에 오르면 차귀도를 조망할 수 있다.
수월봉에서 보면 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와도(누운섬)가 사람(임산부)이 누워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섬 곳곳에 집터나 연자방아, 빗물 저장시설이 남아 있을 정도로 한 때 사람들이 보리, 콩, 참외, 수박 등의 농사를 짓고 살았으나,
현재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무인도다.
1970년대말까지 7가구가 살았던 기록이 있다.
선착장에서 대나무 숲길을 따라 짧은 오르막 계단을 오르면 집터 건물의 잔해가 보인다. 그리고 바로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으로 출발하여 차귀도 죽도를 한바퀴 쭉 돌아보는 탐방로를 선택했다. 물론 거꾸로 오른쪽으로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른쪽으로 오르면 해발 61.1m의 정상이다.
차귀도는 2010년 수월봉과 더불어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2011년 말부터 30년만에 비밀의 섬 차귀도에 대한 섬탐방이 개방되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차귀도 죽도의 풍광은 온통 은빛이다. 일부 키 작은 대나무 군락을 제외하면 섬 전체가 억새에 뒤덮여 있다.
탐방로도 억새길 사이로 연결된다.
이제 일반인에게 개방한지 1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구석구석 때가 묻지 않은 경이로운 환경을 지니고 있다.
뒤로 멀어서 작게 보이는 등대까지가 반환점이라고 생각하고 차귀도(죽도)를 한바퀴 돌면 딱 40~50여분의 시간이 걸린다.
차귀도 본섬(큰섬) 죽도(竹島)에 예로부터 대나무가 많아서 대도 또는 죽도라고 했다는데 대나무는 어디에?
.
사실 우리가 아는 쭉쭉빵빵 참대나무인 왕대가 아니라
섬 사진의 중간중간 보이는 초록이들 1~2m정도 키의 대나무인 시누대(신우대)와 조릿대(산죽)가 자생하고 있다.
부드러운 언덕이 이어지고 잔잔하게 완만한 곡선의 구릉이 펼쳐져서 탐방길을 걷는 것이 그리 부담스럽지가 않다.
장군바위(장군여)를 조망하는 전망데크가 마련되어 있다.
섬의 중앙은 평지고 동서로 두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서쪽 봉우리에는 하얀등대가 있고 동쪽 정상 봉우리에서는 서쪽에서 제주도를 바라보는 풍경을 얻을 수 있다.
아내와 단둘이 하는 제주도 여행이라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아들 셋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곳곳에서 되살아난다.
그땐 그랬지가 아내와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이다.
그렇게 추억여행이 되어 버리니까... 단 둘이 있지만 다섯이 독수리오형제로 뭉쳐서 다니는 느낌이다.
이 때 사진을 보니 날이 맑아서 저 멀리 수월봉의 모습도 보인다.
쌍둥이바위(낙타바위) 오른쪽에 썰물일 때 나타나는 넓은 바위가 강태공들의 주요 낚시 포인트 중에 하나인 썩은여라는 곳이다.
특히 앞썩은여 낚시포인트가 유명하다.
차귀도 죽도의 동쪽 해안절벽을 따라 갯바위들도 참돔과 돌돔 등 다양한 어종이 잡히는 낚시 포인트로 유명한 곳이 많이 있다.
제주도도 요즘엔 이렇게 시야확보가 잘 안되는 뿌연 날들이 자주 있다.
차귀도의 장군바위는 화산 활동 때 화도(火道, 화산분출물의 통로)에 있던 마그마가 분출되지 않고 굳어져 암석이 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장군바위(시스텍)뿐만 아니라 차귀도 형성 초기에 만들어진 응회암과 이후 분출한 용암과 분석 등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암석을 한 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이 장군바위는 설문대 할망의 아들 5백명 중 막내아들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런데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해안에 엄청난 쓰레기가 모여있어서 옥에 티다.
아마 파도에 휩쓸려서 이곳까지 왔나보다.
쌍둥이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양하게 보인다. 형제바위라고 불리기도 하고 낙타바위라고도 한다.
먼저 출발을 했더니 아내가 불러세운다.
도달해야 할 중간 기착지인 하얀등대가 보이니까 마음만 앞선다.
여유롭게 걸으면 되겠다라는 다짐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조급함이 자리잡았다.
차귀도 죽는 한국 천주교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가 1845년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이후
무동력 목선 "라파엘호"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폭풍을 만나 중간에 표착한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섬 건너편 용수리 해안에 김대건 신부의 제주 표착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2022년 11월 30일 개봉한 영화 "탄생"은 김대건 신부(1821-1846)의 파란만장한 삶이 그린 영화다.
구약성서 토빗기에서 토비아의 여행길을 인도한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을 따서 지은 배인 "라파엘호"를 타고 28일간의 표류 끝에
제주 최서단에 있는 섬속의 섬 차귀도 죽도에 닿았다. (1845년 9월 28일)
배 위에서 망원경으로 한라산을 확인한 김대건 신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진다.
이후 라파엘호는 용수리 포구에 정박해 반파된 배를 수리하고, 삭량을 얻어 충남 강경 황산포구에 도착한다.
"길이 없다고요?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바다라는 게 모르면 공포의 대상이지만, 알면 길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김대건 신부는 한국인 최초로 서양 학문을 배우기 위해 유학한 학생이며,
5개 국어(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를 구사한 언어 천재이자, 서해를 횡단한 모험가였고,
서양의 항해술과 독도법, 측량에 관심 많던 지리학자였다.
신분질서가 엄격했던 유교 사회 조선에서 평등한 나라를 꿈꾸던 선각자였으며,
19세기 열강의 침탈 속에서 한국의 근대를 꿈꾸었던 탐험가이자 국제인이었다.
실제로 김 신부는 옥중에서 정부의 요청으로 세계지리의 개략을 편술했고, 영국이 만든 세계지도를 번역하기도 했다.
2023년 4월 11일 혈액암 투병을 한 안성기 배우가 영화 "탄생"에서 함께 출연한 김대건 신부역 윤시윤 배우와 영화를 관람했다.
안성기는 김대건 일행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많은 부분에서 길잡이가 되어 마카오 유학을 돕는 수석 역관 유진길 역을 맡았다.
이 각도에서 쌍둥이바위를 보니까 왜 낙타바위로 불리워지는 지 알겠다.
쌍봉낙타
탐방길을 제일 앞서서 걷다 보니 뒤로 사람들이 줄지어 따라오는 모습이 목격된다. 탐방길이 하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예전 차귀도 거주민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돌이 있으나 자세한 내용을 알 길이 없다. 궁금하다.
서쪽 언덕 꼭대기의 하얀 등대는 고산리 주민들이 손수 1957년에 세운 무인 등대다.
능선이 부드러운 등대 언덕은 "볼래기 동산 또는 볼래기 언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등대를 "볼래기 등대"라고 부른다.
주민들이 등대를 만들 때 돌과 자재를 들고 언덕을 오르면서 제주어로 "볼락볼락" 가쁘게 숨을 쉬었다 해서 지은 이름이다.
볼락볼락은 숨을 헐떡인다는 제줏말이다.
지금도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차귀도 등대는 관광객의 쉼터이자 인증 사진 배경으로 차귀도 탐방객에게 인기가 많다.
제일 앞장서서 걸으니 아내가 찍은 뒷모습에는 앞서 가는 이가 아무도 없다.
뿌연 시야 탓에 하늘과 바다의 경계도 애매모호해져 버렸다.
이쯤되면 수월봉은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안보이는 것도 아니다.
드디어 탐방길의 중간 기착지인 하얀등대에 도착했다.
뒤에 사람들 오기전에 한장 찍고...
하얀등대까지 선착장에 배가 도착한 시간부터 딱 20분이 걸렸다. 오버페이스였다.
남은 섬트레킹 탐방길은 조금 더 천천히 걷기로...
30여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으면 우리도 이런 자연을 가질 수 있나보다. 그저 감탄할 뿐 말로 설명이 안되는 비경이다.
꼬꼬무에서 70년대말 갑자기 이주시킨 "차귀도 사람들" 어쩌면 이런 거 찍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억울하겠지...
차귀도가 무인도가 된 배경은 1968년 김신조 간첩사건과 1974년 봄 추자도 간첩 침투 등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안보위험에 노출된 외딴 섬 차귀도에 대해 정부가 퇴거 명령을 내렸던거다.
차귀도 등대의 모습은 중세 유럽의 성을 연상시킨다.
등대지기가 없는 차귀도의 무인등대로 근처 해역을 지나는 배들의 안전을 책임진다.
그리고 하얀등대 앞에는 허름한 나무벤치가 놓여있다.
여기서 보이는 차귀도 죽도 주변의 풍광도 가히 역대급이다. 시야확보만 조금 더 좋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에 그냥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진다.
이제는 섬의 반대편 동쪽 정상봉우리로 이동해야 한다.
차귀도는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1977년 10월 4일에 개봉한 영화 "이어도"는 김기영 감독의 청소년관람불가의 영화였다.
이어도를 신성하게 여기는 제주도민과 이어도라는 이름으로 호텔을 지으려 이어도를 찾으려하는 건설업체와의 갈등 이야기다.
이어도 영화속에서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얘기한다.
"요즘 남자가 죽는걸 무서워하는지 알아? 고기잡으러 나갔다가 물에 빠져 죽으면 이어도가 넋을 끌어당겨서 극락에 살게해줘."
제주도민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대사다.
보이지 않는 섬 이어도에 대한 이상향은 "이어도사나"라는 제주도 해녀들의 노동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엿사나 이여도 사나 / 이엿사나 이여도 사나 / 우리 배는 잘도 간다
솔솔 가는 배는 솔남의 배여 / 잘잘 가는 건 잡남의 배여 / 어서가자 어서 가자
목적지에 들여 나가자 / 우리 인생 한 번 죽어지면 다시 전생 못하니라
원의 아들 원자랑 마라 / 신의 아들 신자랑 마라 / 한 베개에 한잠을 자도 원도 신도 저은 데 없다
제주도 해역에서 해녀들이 남해안으로 물질을 하러 오가는 길에 주로 부르던 노동요다.
노래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생활을 책임졌던 제주 여성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
만화가 이현세의 동명의 만화를 이장호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1986년 개봉한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지옥훈련장이 바로 이곳 차귀도 죽도였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나름 성공한 영화였고
주제가 정수라 "난 너에게"도 메가 히트곡이 되어 가요톱10 5주연속 1위 골드컵을 차지했다.
난 너에게 - 정수라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 뭐든지 할 수 있어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 뭐든지 할 수 있어
별보다 예쁘고 꽃보다 / 더 고운 나의 친구야
이 세상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 나의 친구야
네 곁에 있으면 사랑은 내 것 / 네 곁에 있으면 세상도 내 것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 뭐든지 할 수 있어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 뭐든지 할 수 있어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 뭐든지 할 수 있어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 뭐든지 할 수 있어
별보다 예쁘고 꽃보다 / 더 고운 나의 친구야
이 세상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 나의 친구야
네 곁에 있으면 사랑은 내 것 / 네 곁에 있으면 세상도 내 것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 뭐든지 할 수 있어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 뭐든지 할 수 있어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 뭐든지 할 수 있어
주인공 까치 오혜성(최재성)와 최엄지(이보희)가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였다.
하얀등대에서 내려와서 뒤돌아 보니... 이쪽으로 등대를 오르는 것은 만만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힘이 있을 때 먼저 동쪽 정상을 올랐다가 나중에 하얀등대로 오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동쪽 정상을 먼저 올랐던 탐방객들이 다시 하얀등대 쪽으로 오른다는 것은 아마 엄두도 나지 않을 듯 싶다.
여기서 보는 차귀도의 비경도 정말 아름답고 신비스럽다.
또 한 십년쯤 지나서 차귀도 섬탐방을 나설 수 있으면 좋겠다.
여기서도 해안가에 파도에 밀려온 쓰레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안타까웠다.
마치 하늘에서 뾰족한 별이 떨어진 듯한 별모양이 재미있다.
와도(누운섬)와 그 너머로 당산봉이 보인다. 뿌옇게 보여서 안타깝지만... 와도의 뒷모습을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차귀도 유람선+차귀도 섬트레킹이 제주투어패스를 하게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내리막 길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손쉽게 내려갈 수 있다.
아직 돌아가는 배가 오려면 20분 이상 남은 시간인데... 이미 적지않은 사람들이 선착장에 모여있었다.
예상대로 오른쩍 탐방로를 선택했던 사람들은 하얀등대에 오르지 않았다.
내려가다 만난 노부부가 하얀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부탁해서 찍어드렸다.
아~ 그래서 하얀등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거꾸로 올라오는 탐방객들을 만나지 못했었던 거구나!
바다에 떠있는 또 하나의 차귀도인 지질이섬(지질도)과 병풍바위(범바위)가 살짝 연결되어 보이니까
마치 고래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배가 올 때까지 할 일이 없다.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어쩌면 차귀도 부속도서나 바위들이 참 다양한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이런 무료함에서 생긴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주변의 풍광을 보고 있으면 막 이런저런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차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범바위(병풍바위)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호랑이 보다는 곰처럼 보인다.
확대해 보니 호랑이 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곰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박여사 거기는 또 왜 간겨?
박여사도 고래의 모습을 찍어왔다.
그리고 하나 더... 하트를 찍어왔다.
사람들이 정말 심심했던 모양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섬탐방을 좀 천천히 돌아볼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고...
그러다가 멀리서 배가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금방 배에 탑승을 했다.
이제는 배를 타고 유람하면서 차귀도의 이런저런 모습들의 설명을 듣는다.
고래의 꼬리로도 보이고... 호랑이로도 보이고 곰으로도 보였던 그 범바위는 다가가면 이렇게 병풍바위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그리고 고래의 몸통으로 보였던 지질이섬(지질도)는 이렇게 각도를 달리하면 독수리바위(매바위)로 바뀌어 버린다.
배에 탑승객이 가득이어서 사진찍기가 쉽지 않아 예전 방문했을 때의 사진으로 대체했다.
그동안 엄청난 침식이 갑자기 일어났을 리도 없고...
하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주저없이 또다시 방문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