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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루니통신 6/스위스-프랑스 여행후기(중)/190507]|
3월 24일(일) 제네바. 레만호(Lca Leman)의 140m 높이의 분수(噴水)는 장관 중의 장관(우리나라 한강의 202m 높이 분수가 생기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고 한다). 레만호는 서양의 예술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호수라 한다. 1979년 미니시리즈 <레만호에 지다>의 배경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한국의 외교관(이영하)과 북한의 여간첩(정애리)이 사랑을 속삭이던 곳, 패티김이 주제곡을 불렀다는 것정도만 어렴풋이 알고 있다. 나로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레만호 주변 벤치에서 프로포즈를 했다는 것을 읽은 적 있다. ‘호주댁’으로 불렸지만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사람이 아니고 오스트리아 사람이므로, 대표적인 ‘가짜뉴스’인 셈이다.
그 높은 분수가 뿜을 때마다 생기는 무지개를 찍느라 바쁘다. 1시간여 크루즈를 타다. 크루즈가 분수 옆을 지나갈 때마다 온몸이 소나기를 맞은 듯하다. 기분이 째지다. 이런 豪奢는 대체 얼마만인가. 사진을 찍어 ‘레만호 忙中閑’이라는 제목으로 고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보내다. 캔맥주는 당근, 아무리 당뇨에 시달려도 이 기분을 알아챈 아내가 눈을 감아준다. 벌써 10일이 다 되어가니 아침저녁으로 숙소에서 밥을 해먹거나(반찬은 김치를 빨아 완벽하게 건조해간 것에 꽁치통조림을 넣어 끓인 찌개), 컵라면 등을 먹었지만 한식이 그리워 ‘밥집’이라는 한국식당을 찾았다. 일요일이라고 문이 닫혀 있다. 아쉽다. 스위스를 떠나기 전에 시계를 사려 했으나, 주말이면 모두 문을 닫는다 한다.
3월25일(월). 제네바공항 면세점에서 스위스제 시계를 5개 사다. 아버지와 셋째형 그리고 매제 3명에게 줄 선물이다. 사놓고 보니 흐뭇하다. 프랑스 니스(Nice)行 低價항공. 몇 달 전에 예매하여 한 사람 10만원도 되지 않는다한다. 체크인도 국내에서 휴대전화로 가능하다니, 이해하기가 어렵다. 말로만 듣던 프랑스 니스 도착. 숙소까지 가는 버스가 엄청 막혀 첫인상이 완전히 구겨지다. 니스(Nice)는 영어로도 똑같은 ‘나이스(Nice)’였는데, 나이스하지 못해 기분이 잡치다. 더구나 구글로 숙소를 찾는데, 여러 번 헤매어 짜증이 덕지덕지. 수십 km에 달하는 ‘영국해안(English Coast. 과거 점령지였던 듯)’이라는 자갈해변이 그렇게 유명한 피서지였던가.
아무튼, 며칠 전까지는 萬年雪의 눈 쌓인 알프스 산맥을 헤매고 다녔는데, 이제는 地中海 해변이다. 샤갈미술관과 마티스미술관을 가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며 국내에서도 여러 번 전시회를 가진 마르크 샤갈(Mac Chagall‧1887~1985)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巨匠중의 거장이다. 우리에게는 ‘눈 내리는 마을’ 작품 등으로 유명하지만, 기독교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종교색 짙은 작품이 많다. 아내는 작품 설명을 일일이 읽고 있지만, 미술에 조예가 없는 나는 판판이 건성이다. 인근에 마티스미술관을 찾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는 20세기 프랑스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 그림으로 유명하지만 판화, 조각에도 미술사에 남을 걸작들이 많다. 門外漢인 데도 그들의 작품세계를 이해해 보려고 골몰해 보다. 며칠 후 엑상 프로방스에서 우연히 만난 가수 남궁옥분 자매와 커피를 한잔 마시며 한담하는데, 그들은 니스를 거쳐 오면서 두 미술관을 보지 못했다며 무척 아쉬워 했다. 특히 옥분씨도 그림을 그리는데, 어느 평론가가 자기를 ‘한국의 마티스’라고 했다며, 국내에 가면 마티스畫集이나 구해 봐야겠다고 했다.
3월26일(화). 1946년 5월부터 해마다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깐느(Cannes). 우리로서도 결코 낯설지 않다. ‘취화선’의 임권택 감독이 감독상을 받고, ‘밀양’의 전도연 씨가 여자주연배우상을 받은 세계 3대 국제영화제(베를린, 베니스)가 열리는 곳. 니스역에서 기차로 30여분, 그 유명한 깐느를 가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건물엔 대형 안내판이 걸려 있다. 건물 주변엔 세계적인 배우들의 핸드프린팅(hand printing)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멜 깁슨(Mel Gibson)의 손자국에 내 손을 대고 찰칵. 미국 LA 큰 산에 ‘Hollywood(헐리우드)’라는 큰 글자가 새겨져 있듯이, 이곳도 높은 언덕에 ‘Cannes(깐느)’라고 글자가 새겨진 곳에서 인증샷을 찍고 시내 전체를 조망한다.
해안 포구에 가득한 형형색색의 엄청 화려한 요트들의 행렬이 너무 평화롭고 아름답다. 인근 안티베(Antibes)라는 마을까지 또 하이킹. 지중해 해안을 끼고 걷는데, 바람까지 삽상하여 기분을 좋게 하며 여행의 누적된 피로감을 상쇄시켜 준다. 자전거 하이킹하는 여행객들도 신이 나고, 자동차 드라이브족도 군데군데서 멈추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누군지는 몰라도 되게 멋있게 사는 친구들같다. 그들에게는 우리도 멋진 친구들로 보이겠지? 하루하루가 보람차다.
3월 26일(수). 세계 도박의 ‘메카’라는 모나코(Monaco)라는 작은 나라. 남부 프랑스 망통(Menton)과 니스 사이에 있다. 도박궁전은 입장료가 비싸 들어가지 않고, 궁전의 近衛隊 교대식을 보려고 부랴부랴 언덕을 향했다. 교대식은 별 것없지만, 위에서 쳐다보는데, 이 작은 도읍이 主權國이라고 생각하니 오직 신기할 따름.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라는 아름다운 외모의 왕비를 기억하시리라. 한때 ‘은막의 여왕’이었다. 교통사고로 아깝게 유명을 달리 했지만(1982년 53세. 전세계의 숱한 남성팬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남편인 모나코 국왕 레이에3세는 2005년 죽을 때까지 ‘독수공방’으로 정절을 지킨 純愛譜의 주인공이었다. 모나코 시내 곳곳엔 지금도 그레이스 켈리의 사진을 담은 엽서를 파는 곳이 많이 있다.
다음으로 간 곳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에즈 빌리지(Eze Village)’라는 산꼭대기(해발 427m)의 아기자기한 동화같은 작은 마을. 프랑스 중세의 모습을 골목골목마다 잘 간직하고 있는 분위기에 취하고 만다. 너무 예쁘다. 독특한 상점들과 이색적인 예술가의 아뜰리에들이 즐비하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 있다. 입장료가 비싼 편이지만 꼭 봐야 할 명소이다. 정상에 있는 선인장 등 기화요초가 잘 갖춰진 식물원에서 바라보는 지중해. 어찌 이리 환상적일 수 있을까. 에머럴드빛 바다. 한가이 떠있는 돛단배인가, 요트인가. 하루쯤 이곳에서 자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남부 프랑스의 잘 알려진, 숨겨진 보석같은 곳. 이곳을 본 것만으로도 이번 니스 3박은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고도 남는 것같다.
3월 28일(목). 이제 니스에서 항구도시 마르세이유(Marseille)로 이동이다. 프랑스 제2의 도시라던가. 세계 최초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고 한다. 빽빽이 밀집한 주택가 골목 숙소를 찾는 중, 아뿔싸, 아내가 지갑을 소매치기당했다. 비자카드 2개와 약간의 현금, 신분증(운전면허증). 여권과 큰돈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둘 다 나눠 ‘전대’를 차는 건 여행의 지혜이다. 아, 그런데, 다른 도시와 판이한 풍경 중 하나. 골목에 어찌 그리 개똥과 담배꽁초들이 많을까. 캐리어 바퀴가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세계 수위를 다툰다는 관광대국의 나라에서, 이럴 수가? 소매치기들이 극성이라니? 스페인도, 이탈리아도 그렇다고 들었고,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게 소매치기를 주의하라고 했지만, 이 우중충한 도시에 내리자마자 당한 해프닝이 우리를 한참 동안 씁쓸하게 했다. son of bitchl(개쉐끼들)가 따로 없다.
또 하나, 아프리카 등에서 온 難民들을 많이 받아들여서인지, 식민지 등 오랜 歷史 때문인지, 프랑스는 확실한 多民族 多人種국가였다. 도시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高地에 우뚝 선 마르세이유의 랜드마크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성당’을 찾았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최근 불이 나 전세계인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스트라스부르, 마르세이유 등 여러 도시에도 같은 이름의 성당이 있어 노트르담 성당은 늘 헷갈린다.
3월 29일(금). 마르세이유 이튿날, 절해고도 이프성(Chateau d’If). 알렉산드라 뒤마의 ‘몬테 크리스토 백작(암굴왕)’을 기억하시리라. 그 무대가 된 곳이다. ‘철가면’ 등 수많은 정치범들이 갇힌 섬감옥. 높지는 않지만, 4면이 바다이기에 1972년 작품인 영화 ‘빠삐용’이 떠오른다(최근 리메이크 작품을 보았다). 그들도 自由人의 의지를 불태웠을 것이다. 몇 백 년 전에 벽에 쓴 개발괴발 낙서들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바닷바람이 마냥 선선하다. 이렇게 마음이 한깟질 수가 있다니, 얼마 전까지 아득바득 다니던 회사생활이 까마득히 옛날 일같다. 오후엔 롱샹궁전(Long Shamp Palais)을 구글지도를 보고 한참 헤매다 찾았다.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그렇다고 뭐 별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증샷으로만 남긴다는 게 좀 그렇다. 저녁엔 포구 옆 유명하다는 명소에서 해물모듬에 와인 1병을 비우다. 내일은 또다른 해가 뜨겠지. 심란한 마르세이유 두 번째 잠을 청하다.
3월 30일(토) 우리로 치면 광역버스를 타고 엑상 프로방스를 가다. 세잔느(Cezanne․1839~1906)의 고향.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후기인상파 화가. 세잔느는 에밀 졸라(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불효자? 에미의 목을 조르다니?)와 10대를 이곳에서 같이 보낸 죽마고우였다고 한다. 카페 ‘Les deux Garsons(두 소년이라는 뜻)’에서 미래를 꿈꾸었을 그들은 훗날 졸라가 세잔느의 작품을 비판하는 글을 씀으로써 우정에 금이 갔다고 한다. 1792년 처음 영업을 시작했다는 고색창연한 카페에서 미라보광장에서 우연히 만난 가수 남궁옥분 자매(그들도 3주간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을 자유여행중이었다)와 우리 부부는 ‘에즈 빌리지’는 꼭 다녀와야 한다는 등 한껏 수다를 떨었다.
그 자매와는 다음날 저녁에도 만나 맥주를 마셨는데, 며칠 후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우연히 만날 줄이야. 별스런 인연이 계속되자 서울 방배동 카페골목에서 별난 김치찌개를 같이 먹기로 철석같이 약속을 하다. ‘때로는 당신 생각에’라는 노래로 히트친 남궁옥분은 1958년생, 매니저격인 친언니는 1955년생. 자치동갑이어서 말이 잘 통하는 게 좋았다. 데뷔한 지가 벌써 40년이 되었다 한다. 세잔느의 아틀리에를 찾는 건 이곳에서는 필수. 엑스(ex)는 ‘물’이라는 뜻으로, 이 작은 도시에 분수가 곳곳에 있었다.
프랑스는 4월부터 썸머타임을 실시, 시차가 1시간 줄어들어 시차는 7시간. 이곳은 10시인데, 서울은 새벽 5시. 무심코 카톡을 보내다 깜짝 놀라기를 여러 번. 다음날 오전, 지갑을 분실하여 렌터(비자카드와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한다)를 하지 못한 관계로 시외버스를 타고 아무 곳이든 교외를 나가기로 하였는데, 낭베스라는 종점에 닿자 마을이 너무 예뼜다. 동네의 와이너리(와인 제조장)에 들르니 4대째 경영하고 있다는 주인아주머니의 친절이 남다르다. 떠듬떠듬 영어로 몇 마디 하고 추천하는 와인을 1병 사오다. 덕분에 ‘뚜벅이 여행’을 한 것도 나쁘진 않았다. 오후엔 시내 순회 ‘꼬마열차’가 제법 탈 만했다. 도시의 그 좁은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게 신기했다. 어느 도시에 가든 꼬마열차가 있으면 한번쯤 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도시는 100여년 전 죽은 세잔느를 팔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그래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명언이 있을까. 세잔느 동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찍은 인증샷이 국내 지인들을 약오르게 하다. 그가 다닌 대학, 성당 등을 둘러보느니, 그가 항상 붉은 ‘빅투와르산’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는 전망대를 가보는 게 더 나을 듯했다.
4월 1일(월). 달이 바뀌어 잔인한 계절 4월이 되었다. 어느새 보름이 훌쩍 지났다. 고향, 내집이 벌써 감감하다. 재래시장에서 라벤더(lavender) 비누를 10여개 사다. 이날은 시내버스를 타고 신도시를 구경하는 등 인근지역을 몇 군데 여유있게 트레킹했다. 이것 또한 여행의 맛이리라.
4월 2일(화) 이제 유서깊은 도시 아비뇽(Avignon)이다. 라벤더를 아시리라. 품질 좋은 향수나 화장품, 기름, 비누, 샴푸 등을 만드는 꿀풀과 식물. 남부 프랑스지역은 6~7월만 되면 천지가 라벤더꽃 향기로 진동한다고 한다. 제철에 오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고교시절 세계사에서 ‘아비뇽 유수(幽囚)’사건을 배웠을 것이다. 왜 이런 조그만한 古都에 敎皇廳이 있었을까, 의아스러웠다. 14세기에 교황청이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졌다. 고대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쓰였는데, 1309~1377년, 이 기간의 교황 7명은 프랑스국왕의 꼭두각시로 아무런 실권이 없었다고 한다. 교황청답게 그 규모만큼은 참으로 壯大하다. 이 지역은 해산물로 홍합이 유명한 모양. 교황청 앞 카페에서 역시 홍합 한 접시에 맥주 두어 잔을 마시며 ‘부러진 다리’를 가다. 여러 나라에서 聖堂이 우리의 기를 죽이더니, 이젠 교황청까지 우리를 주눅을 들게 한다. 무슨 사연으로 복원하면 다시 끊어지는 바람에 이젠 복원을 포기했다고 한다. 교황청을 배경으로 다리 위에서 사진 찍기에는 딱이다.
4월 3일(수). 엊그제는 세잔느이더니 오늘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 네덜란드 출신의 후기 인상파 화가. 자신의 귀를 자르고 그렸다는 ‘자화상’은 빠리의 오르세미술관에 있다.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명화는 대부분 기억하리라. 정신분열증으로 끝내 자살을 한 고흐는 동생의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과연 오늘날 이름이라도 전할까. 형제는 나란히 누워 있다. 아를(Arles)의 고흐카페를 찾아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고흐는 그곳에서 명작들을 남겼다. 여행 중 한번도 오지 않았던 비가 내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원형경기장 등을 둘러보고 출출한 차에 베트남 쌀국수를 발견하니 반갑다. 멋드러진 모자 하나를 건졌다고 아내는 좋아한다. 광장 가운데 우뚝 선 오벨리스크도 눈에 담아두어야 한다.
4월 4일(목) 깜깜 새벽녘 고도 아비뇽을 떠난다. 도로에 캐리어 끄는 소리만 유독 크게 들린다. 빙 둘러쌓인 성곽이 무섭다. 테제베로 4시간여를 간다던가. 드디어 빠리 도착. 일주일을 묵을 ‘한인숙소’를 찾았는데 조선족이 운영하는 여인숙이다. 아침저녁으로 한식을 준다는 게 장점이고, 어지간하면 어디든 걸어다닐 수 있는 시내 복판이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샤워조차 공동으로 해야 하니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유일한 숙소이다. 짐을 풀고 물어물어 베르사이유궁전(Chateau de Versailles)을 가다. 파리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歷史가 길다. 13호선까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지하철은 1920년대에 대부분 만들어졌다하니 100년 전이 아닌가. 오래된 지하땅굴을 생각하면 될 터인데, 공중위생 관념이 빵점인지라 곳곳에서 찌린내가 진동을 한다. 간혹 노숙자들도 눈에 띈다. 베르사이유는 파리의 시골 마을 중 하나였으나 이 궁전이 세워진 이후부터 자치권을 가지는 파리 외곽 도시가 되었다.
원래 왕이 사냥할 때 머무르는 여름 별장이었으나, 1682년 ‘태양의 왕’이라는 루이 14세가 파리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1789년 왕가가 수도로 돌아갈 것이 강제될 때까지 프랑스 앙시앵레짐 시기, 권력의 중심지였다. 호화로운 건물과 광대하고 아름다운 정원과 분수 그리고 ‘거울의 방’ 등으로 유명하다. 거울의 방은 벽과 천장이 거울로 된 길이 73m의 방으로, 1차세계대전을 끝내는 베르사이유 조약이 1919년 6월 체결된 곳이다. 궁전은 엄청나게 커다란 안뜰을 둘러싸고 있다. 이 안뜰에서 1783년 세계 최초로 열기구를 띄웠다고 한다. 정문에 루이14세 동상이 우뚝한데, 모두 인증샷 찍기에 바쁘다. 궁전 구경만 해도 반나절은 걸릴 듯하고, 안뜰 소궁전이나 호수 등을 구경하려면 족히 하루는 잡아야 한다. 아무튼 아름다운 곳이다. 교통편이 어지럽다. 툭하면 파업이라는데, 관광객들만 이리저리 헤맬 따름. 파리의 하루가 지나다.
첫댓글 마르세이유 소매치기, 프로방스의 남궁옥분, 기억에 남을 일들이구먼.
방배동에서 인연을 잘 이어가기 바라네.
혹시.....
영화 '러빙 빈센트' 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