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마
— 이사야 43장에 부쳐
이삭빛시인
길을 묻지 마라
길은 네가 발을 내디딜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
낡은 지도 따위는 태워버려라
지나간 계절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는
단 한 발자국도 새 땅을 밟을 수 없으니
너는 본래 묶여 있지 않은 존재
네 등 뒤에서 불어오는 것은
단지 바람이 아니라
너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길이다
두려워 마라
눈앞에 펼쳐진 것이
끝도 없는 모래 사막이라 해도
네가 멈추지 않고 숨을 몰아쉴 때
그 뜨거운 호흡이 닿는 곳마다
갈라진 땅 틈으로 투명한 물길이 솟아오를 것이니
기억하라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듯
네 삶이 눈부신 것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네 안에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훈장처럼 달고
침묵 속을 달리는 고독한 영혼아
너는 멈춰 있는 호수가 아니라
바다를 향해 흐르는 물이며
길 없는 곳을 기어이 길로 만드는
거침없는 강물이어라.
[시평] 길 없는 사막에서 '나'라는 길을 내는
실존의 질주
— 이삭빛의 시 〈야생마〉에 부쳐
시평 윤정시인
시인은 본래 언어로 집을 짓는 자가 아니라, 언어로 길을 내는 자다. 이삭빛의〈야생마〉는 성경 이사야 43장의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라는 신탁(神託)을 인간의 능동적인 실존 의지로 치환하여, 거침없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이 시의 가장 독창적인 지점은 '야생마'라는 시적 대상을 텍스트 안에서 지워버렸다는 점이다. 제목은 〈야생마〉이나, 본문 어디에도 말(馬)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본래 묶여 있지 않은 존재', '고독한 영혼'이라는 추상적 지칭을 통해, 야생마를 육체를 가진 동물이 아닌 '자유로운 정신(Spirit)' 그 자체로 형상화했다. 이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더 강렬한 상징적 효과를 거둔다.
첫째, 지도의 폐기와 길의 창조다.
화자는 '낡은 지도 따위는 태워버려라'고 일갈한다. 지도는 이미 누군가 지나간 길의 기록일 뿐이다. 시인은 과거(낡은 지도, 흙먼지)와 과감히 결별하고, '네가 발을 내디딜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 참된 길임을 역설한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기투(Entwurf), 즉 스스로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던져 길을 만드는 실존적 결단과 맞닿아 있다.
둘째, 바람의 영성(Spirituality)과 숨의 생명력이다.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단순히 자연현상이 아닌, '너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길'로 해석한 대목은 이 시의 백미다.
신의 섭리(Providence)가 나를 밀어주고 있다는 믿음은, 사막이라는 극한의 공간을 절망이 아닌 기회의 땅으로 바꾼다. 또한, 화자가 내뱉는 '뜨거운 호흡'이 닿는 곳마다 물길이 솟는다는 표현은, 인간의 치열한 삶의 의지가 곧 구원의 생명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동적인 은유다.
셋째, 문학적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을 통한 깊이의 확장이다.
시인은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텍쥐페리의 문장을 차용하여, 이를 인간 내면으로 끌어들인다. 외부의 사막(고난)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내면의 '아직 가보지 않은 길(가능성)'때문이다. 상처를 부끄러움이 아닌 훈장으로 치환하는 긍정의 시선은 독자에게 깊은 위로를 건넨다.
결국 이 시는 멈춰 있는 호수가 되기를 거부하고,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흐르는 거침없는 강물이 되겠다는 선언으로 끝을 맺는다. 1연의 먼지에서 시작해 마지막 연의 강물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전이는, 메마른 영혼이 어떻게 풍요로운 구원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시적 연금술이라 할 만하다.
이삭빛의 〈야생마〉는 길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나침반을 쥐여주는 대신, '네 발자국이 곧 길이다'라고 말해주는 뜨거운 격려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독자는 누구나 가슴 속에 잠들어 있던 야생마 한 마리를 깨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