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받은 달란트 얼마런가 나 힘써 그것을 남기어서”
찬송가 597장 2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달란트 비유를 배경으로 한 가사입니다.
지금도 교회학교에서 달란트 잔치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이고 1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일당입니다.
노동자 하루 일당이 10만 원이면 1달란트는 6억에 해당합니다.
교회학교 아이들이 그런 것을 알 턱이 없습니다.
1달란트를 내고 떡볶이도 사먹고 5달란트를 내고 색연필을 사는 것을 보면서 혼자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화폐 단위인 이 달란트(ταλαντον)에서 영어 단어 talent가 나왔습니다.
재능, 소질, 인재, 연예인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는 화폐 단위인데,
여기에서 파생된 영어 단어 talent에 재능이라는 뜻이 있다 보니 달란트를 재능, 은사라는 뜻으로 쓰는 예가 왕왕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로 시작합니다.
주인이 종들한테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달란트를 재능이라는 뜻으로 쓰면 재능대로 재능을 맡긴 것이 됩니다.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저는 달란트를 화폐 단위로만 씁니다만 재능이나 은사라는 뜻으로 쓰는 사람한테 일일이 그렇게 쓰지 말라고 할 마음은 없습니다.
언어는 일단 뜻이 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전도에 달란트가 없어요.”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전도를 하는 사람은 전부 달란트가 있는 사람들이니 달란트가 없는 사람은 안 해도 된다는 뜻일까요?
화폐 단위인 달란트를 재능이나 은사의 뜻으로 쓰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있습니다만 그런 식으로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쓴 책 중에 <쉽게 보는 어려운 레위기>가 있는데 얼마 전에 재판이 나왔습니다.
바뀐 것은 없습니다.
표지와 가격만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나온 책 표지에 “어려운 성경을 쉽게 풀어주는 달란트가 있는 저자가 전하는 쉽게 보는 어려운 레위기”라고 쓰인 것입니다.
저한테 어려운 성경을 쉽게 풀어주는 재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달란트는 절대 없습니다.
제가 아는 달란트는 어디까지나 화폐 단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