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한 것을 본받으라
요한삼서 1:11-12 2026/5/31 성령강림 후 제1주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12 데메드리오는 뭇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고난 받는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최고 의결기구가 총회입니다.
총회가 제정한 기념주일 중에
감리교회의 색이 가장 짙은 기념 주일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주에 있었던 ‘웨슬리회심 기념주일’입니다.
감리교회의 정체성과 감리 교인이 추구하는 신앙의 핵심 가치를
웨슬리의 회심에서 되새겨 보자는 취지에서 정해진 기념주일입니다.
그러면 우리 감리교회는
왜 해 마다 웨슬리의 회심을 기념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회심이 주는 신앙의 가치
바로 성화와 성결을 소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적 성화와 외적 성결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의 말씀을 빌려 설명을 드리자면,
하나님이 복을 베푸셨던 사람, 하나님 형상으로의 회복입니다.
창1: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히, 아담)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회심이 주는 신앙의 가치는 또 있습니다.
구약 시대 마지막 선지자로 활동 했던 말라기의 예언에서
회심이 주는 신앙의 두 번째 가치를 찾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것입니다.
말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세례자 요한)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4: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여기에 예언 된 ‘돌이킴’
즉 ‘회심’의 가치는 거룩한 관계의 회복, 거룩한 사귐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자비의 회복:은혜)’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여(순종의 회복:믿음)’
이루어지는 거룩함의 교제
즉 ‘엔크리스토’(ἐν Χριστῷ)’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기쁨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감리교 신학의 핵심 가치와 가르침이 있는
에베소서 5장의 말씀을 꼭 여러분의 마음판과 몸판에 새기십시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①모든 일에 착하십시오.
여기서 말하는 착함이란?
도덕적 착함 성품의 착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품(온유와 겸손)을 따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착한 행실을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황금 율
(새)마7:12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새)눅6:31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②모든 일에 의로우십시오.
가정이나 교회나 일터나
사람들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의, 그 올바름을 드러내라는 말입니다.
③모든 일에 진실하십시오.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진실함과 순결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회심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라고 가르쳐준 분이 사도 바울, 마르틴 루터, 요한 웨슬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마다 이 거룩한 명령을 기억하고, 이어가자는 의미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가 웨슬리회심 기념 주일을 제정한 것입니다.
다음 주에 드리는 ‘평신도 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리가 ‘평신도 주일’을 기념주일로 지키는 것일까요?
내가 거룩한 교회라는 자각
내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이요 거룩한 지체라는 깨달음을
이어가기 위함입니다.
(새)고전3:16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새)고전6:18 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자기 몸 밖에 있는 것이지만, 음행을 하는 자는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6:19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새)고전2: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든 일에 착함, 모든 일에 의로움, 모든 일에 진실함을 보이는 거룩한 평신도, 거룩한 감리 교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8세기 하면 떠오르는 아주 혁명적인 사건 하나가 있습니다.
‘산업혁명’입니다.
문제는 산업혁명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넘쳐나는 실업자와 도시의 빈민화였습니다.
가난과 질병과 범죄가 도시의 상징이 되었지요.
이것이 18세기 산업혁명의 유익 부의 위험 속에 감추어진 그림자였습니다. 이 때 사회적 성화의 관심을 두고 시작한 신앙 운동이 존(요한) 웨슬리가 이끈 감리교 운동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웨슬리는 사회적 성화에까지 관심을 두게 된 것일까요?
그 역시 그의 회심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한 영 곧 성령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회심이지요.
웨슬리의 첫 번째 회심은 1725년에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흠 없이 거룩하게 살겠다.’고 결심한 회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정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에 정진하며, 경건 서적을 읽고, 어려운 이들 특히 감옥에 갇힌 이들을 정기적으로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 때 얻은 별명이 ①메도디스트(규칙쟁이)입니다.
②바이블 벅스(성경벌레) ③홀리클럽(거룩한 척하는 사람들)
④새크라먼테리언즈(성찬에 집착하는 사람들)⑤엔수지애스트(열광주의자)
하지만 웨슬리에게는 두 번째 회심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두려움, 그 연약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근심과 염려이지요.
성경에 대한 박식한 지식, 성공회 신부로서의 권위(교회의 전통성)
고전과 논리와 신학을 가르치는 이성
다시 말해 성경과 전통과 이성의 균형을 가진 사람이 웨슬리입니다.
그런데요.
요한복음 14장 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이 말씀의 능력이 자신에게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미국 조지아 선교사로 향하는 풍랑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풍랑이 일자, 모라비안 형제단(독일어로는 ‘헤른후트 공동체’라고 불림)들은 침착하게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였지만 웨슬리 자신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큰 충격이었지요.
그래서 그날 일을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평온함에 깊이 감동했다. 나는 죽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니 미국 조지아 선교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실패합니다.
그렇게 실패자 웨슬리가 영국으로 돌아와 낙심의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영국 런던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모라비안 형제단의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참석합니다.
그런데 한 집회 인도자가 마르틴 루터가 쓴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을 때,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뜨거움을 체험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이지요. 이것이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에 일어난 웨슬리의 두 번째 회심이었습니다. 그 날 웨슬리는 두려움과 염려보다 더 큰 그리스도의 평화, 그 평안의 뜨거움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그리스도의 평화이지요.
그 날 이후 웨슬리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말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예수는 나의 주님이시다’
그렇게 웨슬리의 신앙은 ‘예수에 대하여 아는 것’에서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믿는 것‘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찬송가 288장입니다.
1)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하리로다
3)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하리로다 아멘
결국 구속한 주 만 바라보는 이 순결한 믿음이 영국을 변화시키고 살리는 성령의 권능(뒤나미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제2의 산업혁명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AI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AI의 시대가 주는 부의 혜택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부로 말미암은 그늘도 반듯이 존재하겠지요.
바로 인간의 가치 상실입니다.
어떻게 이 시대를
가치를 잃지 않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기도문이 하나 있습니다.
영국 감리교회 공동예식서에 수록된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①오늘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마음을 거처로 삼아주시고, ②종일토록 우리 안에 머무시어 잘못과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③오늘 하루 우리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해주시고, 선한 일을 행하게 해주십시오.
④우리를 도우시어 주님과 더불어, 그리고 이웃들과 더불어 깊은 사랑의 친교 속에 머물게 해주십시오. ⑤오늘 우리가 다른 이들이 주님께 바치는 기도의 응답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⑥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이 세상에 희망의 징표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간구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오늘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마음을 거처로 삼아주소서.
②종일토록 우리 안에 머무시어 잘못과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③오늘 하루 우리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해주시고, 선한 일을 행하게 해주십시오.
④우리를 도우시어 주님과 더불어, 그리고 이웃들과 더불어 깊은 사랑의 친교 속에 머물게 해주십시오.
⑤오늘 우리가 다른 이들이 주님께 바치는 기도의 응답이 되게 해주십시오.
⑥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이 세상에 희망의 징표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과연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런 사람이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새)요삼1:11 사랑하는 이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십시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뵙지 못한 사람입니다.
1:12 데메드리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고, 또 바로 그 진실한 삶으로 그러한 평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또한 그렇게 평합니다. 그대는 우리의 증언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우리 장정교회 모든 교우들이
회심의 표본이자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던 데메드리오처럼
선한 것을 본받는
착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데메드리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농경과 풍요의 여신이 ‘데메테르’입니다. 그 ‘데메테르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아주 흔한 이름이 데메드리오입니다. 이교도이지요.)의 어떤 행실 어떤 삶의 태도를 본받아야할까요?
(새)요삼1:11 사랑하는 이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십시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뵙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회심)
그 회심으로 선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웨슬리의 가르침인데 이렇게 하십시오.
할 수 있는 한 모든 선한 일을 하라.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할 수 있는 한 모든 곳에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때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모든 선한 일을 하라.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나는 신령과 진정으로 회심하였는가?’
‘나는 회심하여 선한 것을 본받는가?
이것을 가늠할 수 있는 행실이 세 가지가 있다고 웨슬리는 말합니다.
①해를 끼치지 않는 삶
②선을 행하는 삶
③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삶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다시 이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새)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