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은 가질 못해도
유월 첫째 금요일은 24절기 가운데 소만과 하지 사이 망종이다. 요즘이야 겉보리를 많이 재배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주곡이다시피 심었다. 망종이면 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가 시작되는 농번기였다. 내 어릴 적 근검절약 교육으로 하교 후 보리이삭 줍기도 있었다. 주운 보리이삭을 탈곡해 학교로 가져갔다. 교실 입구 신발장 부근에서 모았는데 어디 쓰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주말을 앞두고 창원으로 돌아가면 일정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 온천장이 떠올랐다. 코로나가 오지 않았으면 몇 차례 찾았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지난 설 쇠고 입춘 무렵 마금산 온천에 들린 이후 발길을 끊었다. 나는 머리숱이 적어 이발은 드물게 한다. 일 년에 고작 두세 번으로 끝낸다. 대신 대중탕은 한 달 한 번 정도 찾는데 동네 목욕탕은 가지 않고 길을 멀리 떠난다.
대머리라도 남을 의식하지 않아서인지 외양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남들은 염색하느라 돈을 들이고 시간을 빼앗기는데 그럴 일이 없어 좋다. 주기적으로 목욕탕을 찾음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많이 걸어 무리가 와서인지 무릎이 시큰거려왔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최면효과인지 좀 나아지는 듯했다. 발바닥에 붙는 굳은살도 목욕탕에 가야 깨끗하게 깎아낼 수 있다.
운전을 하지 않아 온천장을 찾으려면 매번 시내버스 첫차를 타고 북면 마금산 온천을 간다. 겨울엔 온천장에 닿으면 날이 새지 않아 캄캄했다. 손님이 적게 찾은 시간대 깨끗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기 위해서다. 목욕을 한 시간 남짓 하고 나오면 동이 트기 시작했다. 목욕 이후 백월산이나 마금산을 올랐다. 북면 들녘을 걸어 본포에서 낙동강 둑길을 걷거나 지인 농장을 찾기도 했다.
마금산 온천만 가지 않고 가끔 부곡 온천을 찾아가기도 한다. 승용차를 몰아가면 금방 닿을 부곡이지만 운전을 하지 않아 남들과 다른 길로 간다. 새벽에 본포로 가는 첫차 시내버스를 탄다. 낙동강을 가로지른 본포다리를 걸어 지나면 부곡 학포다. 학포에서 부곡 온천 가는 길을 세 갈래다. 노리를 거쳐 임해진 강변 벼랑길을 따라 가다 청암에서 온정을 거쳐 부곡 온천에 이른다.
학포에서 구산을 거쳐 인교로 가도 된다. 의령 남씨 집성촌 학포를 지나 구산인데 용인에 있던 정순공주 묘를 70년대 부마 남휘 문중에서 현재 자리로 옮겨왔다. 정순공주는 태종 딸이니 세종과 남매지간이다. 유명한 남이 장군의 할머니가 정순공주다. 남씨 문중에서는 정순공주 묘역 주변 남이 장군 동상을 세우고 사당도 지어 놓았다. 인교에서 국도 따라 수다를 지나면 부곡이다.
구산을 지난 비봉리는 선사유적 전시관이 있다. 홍수로 무너진 배수장을 고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배가 나왔다. 빗살무니 토기를 비롯한 다수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동구 밖에서 마을 안길을 지나 고개를 넘으면 청암에서 온정으로 가는 지방도와 합류해 부곡 온천에 이른다. 유황 온천수에 몸을 담근 뒤 문구용 가위 날을 펼쳐 발바닥의 굳은살을 벗겨냈다.
봄날에 이 산 저 산 올라 산나물을 뜯어왔고 여기저기 갯가로 산책을 다녔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다. 코로나가 오지 않았으면 그새 서너 차례 다녀왔을 온천장인데 몸을 사리고 있다. 목욕탕은 대중 이용 시설이라 코로나 감염원이 있을까봐 들리기가 께름칙하다. 동네 목욕탕도 그렇고 마금산이나 부곡 온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졌을 때 길을 나서볼까 한다.
주말에 온천장 걸음은 못해도 강변 트레킹은 나서 보련다. 본포에서 임해진 벼랑을 지나 길곡을 거쳐 도천 우강리에서 남지로 올라가도 된다. 북면 상천에서 고개를 넘은 내봉촌 광심정에서 함안창녕보를 거쳐 소우정에서 본포로 건너와도 된다. 함안 칠북 이령에서 밀포를 지나 강둑 따라 걸어 칠서로 가 능가사 뒤 노아의 무덤에 들린 후 남지철교를 건너 남지에서 되돌아와도 된다. 20.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