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져버리고 말았다. 한창이어야 할 때에. 지구 환경의 급변으로 다들 그러려니 하는 모양이다. ‘이럴 수 있나’ 싶었던 일들이 ‘그럴 수 있지’가 되어버릴 때. 그 쓸쓸함과 그로부터의 무상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뜩하고 섭섭해 속이 아플 지경이다. 벚꽃이 벌써 져버렸다니.
과장하자면 핀 줄도 몰랐다. 백번 양보해 허겁지겁 사느라 바빠서 그랬다. 그러니 내 탓이다 치자. 그렇대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짬을 내어, 진해나 하동 같은 먼 곳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합정 당인리라든가, 하다못해 집 앞 하천길이라도 걸어보지 않았겠는가. 항변하고 싶지만, 벚나무에는 귀가 없다. 예상치 못한 것이 나뿐인가. 각종 꽃 축제를 준비하던 기관들도 울상인가 보다. 가까운 시인 하나는, 한 벚꽃 축제의 무대에 서게 됐는데, 막상 축제 당일에 꽃은 하나도 없더라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깟 벚꽃이 무어라고 이리 소란인가, 혀를 차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 년에 단 한 번 젖어볼 화려한 꽃비이다. 황홀함과 애틋함을 볼 기회가 내게 몇 번이나 더 주어지겠는가 생각하면 호들갑이라 폄하할 일만도 아니지 않겠는가.
지인은 산벚꽃을 찾아가라,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고 더뎌서 아직 볼 만할 것이다, 일러주었다. 아서라. 언덕만 걸어도 숨을 몰아쉬면서 산은 무슨 산이냐. 그러다가도, 북한산이니 인왕산이니 높고 푸릇해져 가는 곳에 시선이 닿게 되면 거기 어디 분홍이 있나, 아직 다 잃지 않은 내 올봄을 찾아보게 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