過香積寺 향적사 그르치다./뉘우치다.
不知香積寺,부지향적사 향적사를 알지 못하고서
數里入雲峰。수리입운봉 수십리 구름 봉우리에 들어가네
古木無人逕,고목무인경 고목사이에 좁다란 길도 없네
深山何處鐘。심산하처종 깊고험한산중에 종소리 거기어딘가
泉聲咽危石,천성열위석 샘물 삼키는 소리에 위태한 돌이고
日色冷青松。일색랭청송 햇빛은 푸른 솔에 차거워지네
薄暮空潭曲,박모공담곡 초저녘 물가에 자세잡아 다 비우고
安禪制毒龍。안선제독룡 편안히 참선하니 용의 독이 사라지네
★香積寺는 陝西省 長安縣 東南쪽 終南山 기슭에 있는 절, 왕유의 輞川莊이 가까이 있다.
★王 維 (699-759) 字는 摩詰, 산서성 太原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詩名을 날려, 12살에 진사에 급제하여 大樂丞이 되었으나, 이내 산동으로 좌천당했다. 얼마후에 벼슬을 버리고 장안의 근교 輞川에서 은둔의 생애를 보냈다.
31살에 아내를 잃고나서는 독신행을 계속하다가, 나중에 불교에 귀의했다.
735년 37살 때 張九齡에 의해 右拾遺에 발탁, 차차 벼슬이 높아져서 752년에는 吏部郎中, 756년에는 給事中에 이르렀고, 詩名도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곧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 그 해 6월 장안이 함락되고 그는 적에게 잡혔다. 난이 평정된 뒤에 복직되어 759년에는 尙書右丞이 되었으나, 그해 61살로 죽었다.
그는 청정한 자연과 불교 사상에 심취해 裵迪·錢起등과 사귀면서, 평범한 그러나 순수한 정신을 시와 그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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