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임재는해가되자
사60;1-3
보름도 못사는 매미는 어른 매미가 되기까지 3번의 변신(變身)을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알,
두 번째는 애벌레굼뱅이,
세 번째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매미의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모습도 늘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더욱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만드셨을 때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사람이 되어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잘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거듭나는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교회와 사회에서 무슨 일을 맡게 된다면
그런 사람은 그가 소속한 교회나 사회에 유익을 끼치기는커녕
오히려 해독을 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이 아직 덜 성숙한 사람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직무를 맡기는 바람에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에게까지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큰 사명을 맡기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얼마나 크고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일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우리 스스로가 말씀과 기도로 거듭나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매미처럼 몇 번이고 변신하는 과정을 거쳐서 주님께서 쓰시기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리모델링 시대입니다. 기존의 것을 헐지 않고
새로 단장하는 것을 리모델링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사람들도 리모델링을 합니다.
피부 관리와 머리 염색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며 살아갑니다.
여성들은 아예 얼굴을 뜯어고치는 리모델링까지도 합니다.
이제는 신앙도 리모델링해야 합니다.
신앙도 오래 그냥 놔두면 구태의연해집니다.
말씀을 회복하고 예배를 회복하고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감동없는 예배는 형식입니다.
죽은 예배입니다.
감동없는 찬송은 소리에 불과합니다.
오늘 교회는 찬송할 때 애국가 부르듯 부동자세를 취합니다.
그래야 경건한 것처럼 오해합니다.
신앙이 굳어서 그렇습니다.
교회당은 천막으로 지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 안에 감동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이 많습니다.
변질이 아닌 변화해야 삽니다.
바벨론 포로의 노예 민족에게 해방과 번영과 새 질서가 주어진 것은 기적입니다.
가망없이 심판 받았던 이스라엘처럼 전적으로 타락한 우리들은
천국의 최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신천신지의 종말론적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된 빛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빛된 성도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마5:14).
여호와의 영광의 능력을 받아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며
빛나는 성도와 가정과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임재는 일어날 때 임하십니다
본문 1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예루살렘의 영광은 이사야 40장 5절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게 보리라”에서 이미 보여 주었습니다.
본문에서는 구체적으로 여호와께서 임재하시고 만민이 예루살렘에 집결하며
이방인까지도 예루살렘을 섬기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새 예루살렘을 한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그곳에 여호와께서 영광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지금까지 어두운 땅에 엎드려 지내 왔으나
이제는 당당히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곧 그녀의 구원이 도래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빛은 그녀 자신의 빛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임재는 언제나 영광으로 표현되었고(출24:16)
그 영광은 빛으로 표시되고 있습니다. 빛은 영광을 표시하고
영광은 곧 여호와의 영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교회는 빛이신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를 맞아 같이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자신이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쓰셨지만 그가 엄청난 지식을 가졌다고 해서
그를 율법 박사로 높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알 수 없는 고난을 허락하셔서
스스로 고난을 이길 수 없음을 겸손히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만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에 머물지 않고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붙잡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을 의지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기 원하십니다.
동시에 주님만 의지하며 나아가기를 기다리십니다.
내 의지와 결심과 열심과 노력으로는 한순간도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 수 없음을 날마다 고백하십시오.
매 순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간구하십시오.
죄악에 따른 심판으로 말미암아 티끌과 폐허 위에 앉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집니다.
포로에서 귀환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으로부터 나오는 치유의 빛입니다.
이 구원의 빛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음으로 새롭게 거듭나게 됩니다.
빛은 말씀이고 구원의 소식입니다.
오늘의 여러 가지 어두움이 있습니다.
내 마음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일생에 가득합니다.
이제 구원의 빛되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므로
모든 어두움이 물러가고 밝은 빛이 찬란하게 비추기를 바랍니다.
이제 죄악과 우상과 어두움의 자리에서 일어나
광명의 빛 가운데서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하나님의 임재는 영광으로 임합니다
본문 2절“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이스라엘과 이방세계는 교회와 불신 세상을 대조하는 것입니다.
애굽에 내린 아홉째 흑암 재앙으로 애굽은 어둠이었으나
이스라엘이 거주한 고센 땅에는 빛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 빛은 하나님이고 영광이고 구원인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하나님의 어둠과 빛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어두움이란 죄로인한 어둠을 말하고
빛이란 여호와의 임재하심으로 나타나는 그의 영광인 것입니다.
어둠과 빛은 공존할 수 없듯이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모든 성도는 어떠한 상황에서나
빛과 구원과 영광이신 하나님만 선택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육이나 경험을 통해 이론과 원칙을 세웁니다.
그런데 종종 이것이 하나님과 그분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는 견고한 진으로 자리 잡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든 상관없이···.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만 내 생각에는···.”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호불호와 상황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
하나님이라면 저렇게 하셔야 한다.”라며 하나님을 좌지우지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언제나 옳으신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옳다. 내가 맞다.”라고 고집하는 태도는
어느 순간 ‘나 자신이 곧 하나님이다.’라는 교만의 극치에 빠지게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올라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틀릴 수가 없으니 남을 탓합니다.
이처럼 반복적이고 치명적인 실수를 거듭하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온전하고 궁극적인 진리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훼방하고 자신을 하나님으로 여기며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게 하는 모든 이론을 사로잡아 복종시키는 것은 말씀의 능력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 앞에 나아가
묵상하고 씨름하며 전적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본문은 죄악과 우상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온 땅이 캄캄할 때 하나님의 구원이 빛이 예루살렘에 비춰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에
이스라엘 외의 세상 나라와 이스라엘 자체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
세상 다른 곳은 여전히 어두운 상태에 있을 것입니다.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에도
이스라엘과 백성들은 그 빛을 깨닫지 못하고 어둠에 있었습니다(요1:9-10).
구약의 예언에 따라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임하시고
그 이후 온 땅은 이스라엘을 통해 그 빛을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
아무리 빛이 있어도 자신과 죄악과 세상 안에만 있으면 어둠입니다.
이제 모든 죄와 우상과 교만을 다 버리고 빛되신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영광이 온 성도와 가정과 교회와
세상에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셋째로;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임합니다
본문 3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오직 예루살렘에만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의 빛이 비칠 때 전세계의 열방과 열왕들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어 그 빛의 혜택을 입을 것입니다(사49:23).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하여 구원이 성취될 말씀을 예언한 것입니다.
종말에 가서 전세계 모든 백성은 교회로 모여 들어 복음을 통해
구원에 동참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구원과 영광의 빛이 없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외에는 결코
영광과 구원의 빛은 없습니다.
예수 외에 빛은 다 거짓되고 가짜이고 속이는 것입니다.
결코 거기에는 생명과 영생이 없습니다(요14:6).
본절은 이스라엘에 임한 빛이 먼 이방에게로 확장되며 따라서
그들이 이 복음의 축복에 참여케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과 축복의 확장은 하나님 나라의 주제이며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과 영광의 성도가 된 백성들은
이 축복의 유통자가 되어야 하고 복이 되고
더 많은 백성들을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결론으로;
빛의 사명의 완성은 자신의 몸을 태움으로써 어둠을 몰아내는데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고난과 심판에서 구원 받아 많은 이방인들에게 구원과 영광이 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해야만 했었으나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우리 자신은 구원의 영광이나 빛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선포하는 것 뿐입니다.
자신이 빛이라고 월권을 해도 안 됩니다.
입을 다물고 있는 직무유기를 해도 안 됩니다.
말씀 그대로 영광의
하나님을 선포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역사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오늘 우상과 죄악과 사탄의 어둠 속에서 불행하게 방황하며
지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에게 여호와만 구원의 영광이라고
담대하게 선포하는 모든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우리 가운데 임하신 여호와의 백성이기에 일어나고
영광이 임하고 영광을 선포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