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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외교'를 이해하기 위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먼로 독트린'에 대한 '오해'와 '세 가지 특징' / 3/21(금) / 현대 비즈니스
◇ 트럼프 대통령으로 주목받는 새로운 먼로 독트린
먼로 독트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취임 이래, 차례차례 독자적인 정책의 방향성을 내세우고 있다. 항간에는 지리멸렬하다는 평판도 있지만 사상적 배경에 대한 관심도 끊이지 않는다.
나 자신은 트럼프 1기 정권 때 미국의 정치외교 사상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먼로 독트린을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논하는 편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1기 정권 때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에 장식한 것은 제7대 미국 대통령 앤드루 잭슨(재직 1829년~1837년)의 초상화였다. 잭소니안 데모크라시로 불린 대중적 인기로 알려진 그는 먼로 독트린의 기원이 된 선언을 한 제임스 먼로 대통령과 그때 국무장관을 지내다가 대통령에 취임한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의 다음 대통령이었다. 먼로 독트린을 특정 대통령의 정책 차원에서 합중국의 확고한 외교 원칙으로 끌어올린 것이 잭슨 대통령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2기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은 집무실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초상화를 장식하고 있다. 군사행동에 관여하지 않고 냉전종언을 이끌어낸 공적을 현재의 국제정세 속에서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잭슨주의에 대한 동경이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19세기 전반에 길러진 미국의 정치 외교 사상을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경모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먼로 독트린에 대해서는 뿌리 깊은 오해가 존재한다. 일본의 학교 교과서가 그것을 '고립주의'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고립주의'라는 개념은 언론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전문적인 연구자층에서 먼로 독트린을 '고립주의'라고 바꾸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수이기 때문이다.
「미국·퍼스트」를 내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강한 자국 제일주의의 사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고립'과 같은 정적인 개념으로 묘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의 화려한 행동·언행을 보면 일목요연할 것 같다. 고립이 아닌 고고의 탁월함을 지향하는 듯한 외교적 자세는 미국 외교사상의 전통에서 먼로 독트린이 표방하고 있는 내용과 중첩된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먼로 독트린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자신의 정책을 이론적 개념 구성으로 설명하는 유형의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달 초 미국에서 참석한 국제관계학회에서도 먼로 독트린의 전통을 참조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많이 들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이 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먼로 독트린의 특징을 정리해보려 한다. 길고 심오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체상의 제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관건은 상호 착종 관계 회피 원칙, 대륙주의, 명백한 운명론의 세 가지 점을 들고 싶다.
◇ 상호 착종관계 회피원칙
먼로 독트린은 1823년 당시 미국 대통령 제임스 먼로의 국정연설 내용에서 유래한 외교원칙이다. 당초는 「먼로 씨의 선언」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다만 그 사상적 연원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유명한 이임연설에 있다. 워싱턴 대통령은 미국이 유럽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은 프랑스 혁명 3개월 전에 대통령에 취임했다. 약 8년간의 재직 기간 동안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해 준 프랑스에 일어난 혁명과 이후 유럽 대륙 전체의 소요에 직면했지만 철저하게 불개입주의를 관철했다. 유럽의 소란에 휘말려 버리면, 미국은 피폐해지고, 혹은 멸망한다. 그렇게 생각한 워싱턴의 확신은 분명 고립주의라고 할 수 있는 사상의 반영이었다.
그렇다면 1823년 먼로 대통령은 무엇을 했을까. 워싱턴의 가르침을 바꾼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견지할 뜻을 표명하였다. 다만 새로운 점을 덧붙인 뒤 체계적인 외교 원칙으로 승화시켰다.
먼로 대통령은 미국은 유럽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유럽 국가들도 서반구의 '신세계'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것은 미합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서반구 세계 국가에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만약 유럽 열강이 중남미 국가들의 일에 개입할 경우에는 미국은 단호히 이를 저지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먼로 대통령에 의해 워싱턴 대통령의 가르침에 상호 요소가 추가되고 다른 나라의 태도에도 영향을 줄 것을 의도한 독트린으로 정식화됐다. 이 상호간의 착종관계를 회피한다는 외교원칙이 먼로 독트린의 가장 기본적인 이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미국의 탁월한 힘을 다른 나라에 과시하여 미국에 대한 간섭에 강한 경고를 하면서 유럽의 일에는 가급적 관여하지 않도록 하는 외교정책을 볼 때, 즉 트럼프 대통령이 표방하는 외교적 자세를 볼 때 먼로 독트린이 생각나게 된다(미국 외교정책사의 연구에는 상당한 축적이 있지만, 일본어로는 나카지마 케이오 『먼로 독트린과 미국 외교의 기반』[미네르바 쇼보, 2002년]을 신뢰할 수 있다).
◇ 대륙주의
또 다른 먼로 독트린의 특징은 유럽 '구세계'와 서반구 '신세계'가 상호 착종관계 회피 원칙을 적용하는 단위로서 설정된 것이다. 이는 당시의 유럽대륙과 아메리카대륙을 대비하는 사고방식에도 의거했기 때문에 '대륙주의'의 사상으로 참조되기도 한다.
18세기에 대영제국의 북미 식민지가 독립 전쟁을 시작했을 때, 13개 식민지가 형성한 연합군의 명칭은 "Continental Army"(직역하면 "대륙군")이었다. 그 연합군으로서의 대륙군의 총사령관이 조지 워싱턴이었다. 독립전쟁은 한 국가의 수립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1776년 독립선언은 13개 주권국가의 선언 형태를 취했고, 독립전쟁 이후에 생겨난 것도 13개 주권국가였다. 1787년 합중국 헌법을 11개 국가가 비준하여 연방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합중국의 틀이 만들어졌지만 그래도 당초에는 「분할 주권론」의 독트린이 채용되었다.
나아가 19세기에 들어서면 중남미 국가들이 차례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배에 반기를 들고 독립해 나가게 된다. 이를 미합중국은 환영할 뿐만 아니라 보호할 것도 선언했다. 그것이 1923년 먼로 씨의 선언이었다.
대륙 개념은 이처럼 여러 주권국가가 하나의 지리적 공간에 병존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유럽도 하나의 '대륙'이지만, 남북 미주대륙도 또 다른 '대륙'이라는 것이 미국의 전통적인 정치사상이었다.
지정학 이론의 시조로 알려진 할포드 매킨더는 1919년 저서 데모크라시의 이념과 현실에서 영국과 미국은 식민지 대륙 섬나라의 세 단계를 통과하는 유사한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식민지'에서 '대륙'이 된 것이 독립전쟁 이후의 상태다. 그것은 하나의 지리적 공간에 복수의 정치체가 병존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대륙'이었다. 남북전쟁을 통해 합중국으로서의 단일성이 높은 정치공동체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통해 미국은 '섬국성'을 갖게 된다. 바다에 낀 하나의 육지 지리적 공간과 하나의 정부를 가진 정치단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바다를 넘어 유럽의 전쟁에까지 개입했을 때, 미국은 마침내 정말로 「섬나라」 혹은 「해양국가」로서 탈피해, 세계적인 외교 안전 보장 전략도 해양국가끼리의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것으로 변화해 갔다고 하는 역사관이다.
하지만 매킨더의 설명에서 비롯된 역사관은 '대륙주의'가 건국 이래 미국 외교사상의 기반이었음을 보여준다. 보수주의가 대두되면 대륙주의가 나타난다. 애초 윌슨 대통령을 보고 국제연맹 가입을 미룬 미국은 1941년 진주만 공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때까지 먼로 독트린 원칙으로 되돌아간 대륙주의를 표방했다. 미국의 외교 자세가 진정으로 변화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적 국력을 배경으로 냉전을 시작하고 세계적인 규모로 공산주의 국가들과 대치하기로 결단했을 때이다. 하지만 냉전기(및 냉전 종식 후의 글로벌주의) 쪽이 오히려 예외이며, '대륙주의'야말로 본래 미국의 외교원칙이라는 사상은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다(예를 들어 찰스 A. 비어드[개미윤] [대륙주의 미국의 외교이념][후지와라 쇼텐, 2019년]을 참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퍼스트를 내세우면서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만들어 그린란드를 병합하고, 파나마 운하를 되찾고 싶다는 소망을 실제 정책 목표로 승화시키고 있다. 강한 대륙주의적 사상을 보여준다. 이는 다른 지역에 대한 불개입주의적 자세와 명백한 대비를 그리는 특징이다.
◇ 명백한 운명론
먼로 독트린이 확립되고 발전해가던 시대의 미국은 북미 대륙 전역을 제압하고 나아가 태평양을 비롯한 지역으로 영토 확장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북미 대륙의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섬멸 행위는 격렬하기 짝이 없었다.
그 확장주의를 지탱하고 있던 것은, 미국은 신에게 선택된 특별한 나라라고 하는 선민 사상이다. 이 사상에 따라 미국의 영토 확장은 신의 은총에 따라 운명지어진 올바른 행위라는 사상이 도출된다. 이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론으로 불리며 19세기 미국의 정치사상을 특징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야마기시 요시오 『미국 팽창주의의 전개 : 매니페스토 데스티니와 대륙제국』[케이소우서방, 1995년])
「명백한 운명」론으로 하고 싶어한 세계관에서는, 미국은 신의 은총에 따른 「신세계」의 충실에는 공헌해야 하겠지만, 더러워진 「구세계」의 일등에 관계할 필요는 없다.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미국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등으로 생각하는 20세기 후반 이후의 국제정치이론에 따른 시점은 상대화된다.
확실히 신세계가 자유주의 세계라든가 민주주의 진영이라는 식으로 번역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20세기 냉전시대의 트루먼 독트린에서 미국은 신세계를 사실상 자유주의 진영으로 바꿔 해석 운용했다. 대테러전쟁에 나섰을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우리의 적이냐, 아군이냐"며 문명세계와 야만적 테러리스트의 세계를 구분하는 세계관을 선보이며 부시 독트린의 '신세계' 운용을 시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 국가 vs 권위주의 국가"의 이원적 세계관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들 시대는 끝났다.
지금의 미국인에게는 국제사회의 지도자로서 행동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희박하다. 국력의 뒷받침이 정말 있는지도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일국주의를 취해서라도 부활을 기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구호를 받을 수 있는 시대 풍조다. 신세계는 미국 퍼스트에 따라 해석되고 운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도저히 종교심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평가받고 있지만 본인은 개의치 않고 자신이 대통령을 맡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의 은총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도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기반 중 하나가 종교우파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눈에 띄게 확인되는 것은 명백한 운명은 불법이민자로 미국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19세기 아메리카 원주민이 치열한 섬멸전쟁의 희생양이 된 것도 상기되지만 명백한 운명론과 배외주의적 순결주의는 당연히 양립할 수 있다.
강렬한 친이스라엘 입장을 취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내정면뿐만 아니라 외교면에서도 종교문화적으로 무관용주의 입장을 취하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를 마다하지 않고, 제3자 조정을 맡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마찬가지로 전쟁의 종결을 호소하는 대상이라도 중동에서는 무력행사를 마다하지 않고 일방적인 태도를 취한다. 가자의 개발에 대한 관심도 가자를 사실상의 이스라엘령으로 하는 전제와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
◇ 새로운 먼로 독트린의 행방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 외교정책의 사상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단순한 착상만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적어도 미국 외교사상사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훌륭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성공을 약속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도 다르다. 냉정하게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오히려 적절한 비판이나 거리두기 방법을 식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말하면, 안이한 우롱이나 경멸은, 올바른 비판도 낳지 않는다.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대응 미비로도 이어질 것이다. 특이한 성격을 가진 대통령이기 때문에 냉정한 분석을 하는 시각이 더 필요하다.
시노다 히데아키(도쿄외국어대 교수·국제관계론, 평화구축)
https://news.yahoo.co.jp/articles/93ec28d356f4696d2d16635509f66998d4b2f309?page=1
「トランプの外交」を理解するために絶対に欠かせない「モンロー・ドクトリン」に対する「誤解」と「三つの特徴」
3/21(金) 7:01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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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ビジネス
トランプ大統領で注目される新しいモンロー・ドクトリ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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モンロー・ドクトリンへの関心が高まっている。理由は、トランプ大統領である。就任以来、次々と独自の政策の方向性を打ち出している。巷では支離滅裂という評判もあるが、思想的な背景への関心も絶え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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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自身は、トランプ第一期政権のときに、アメリカの政治外交思想に根深く存在するモンロー・ドクトリンをふまえた上で、トランプ大統領を論じたほうがいい、といったことをよく述べていた。 第一期政権時に、トランプ大統領が自らの執務室に飾っていたのは、第七代米国大統領アンドリュー・ジャクソン(在職1829年~1837年)の肖像画だった。ジャクソニアン・デモクラシーと呼ばれた大衆的人気で知られる同大統領は、モンロー・ドクトリンの起源となった宣言を出したジェイムズ・モンロー大統領と、その際に国務長官を務めていてから大統領に就任したジョン・クィンシー・アダムズ大統領の次の大統領だった。モンロー・ドクトリンを、特定の大統領の政策レベルから、合衆国の確固たる外交原則に押し上げたのが、ジャクソン大統領だったとも言える。
第二期目では、トランプ大統領は、執務室にロナルド・レーガン大統領の肖像画を飾っている。軍事行動に関与することなく冷戦終焉を導き出した功績を、現在の国際情勢の中で、強く意識しているのだと思われる。ただトランプ大統領のジャクソン主義への憧憬が消えたとは思えない。19世紀前半に培われたアメリカの政治外交思想をふまえたうえで、トランプ大統領のレーガン大統領への敬慕も理解するようにしたほうがいいだろう。
モンロー・ドクトリンについては、根深い誤解が存在している。日本の学校教科書がそれを「孤立主義」と教えているからだ。「孤立主義」という概念は、メディアでもよく用いられる。しかし専門的な研究者層でモンロー・ドクトリンを「孤立主義」と言い換える者は、いないはずである。間違いだからだ。
「アメリカ・ファースト」を掲げるトランプ大統領には、強い自国第一主義の思想がある。しかしそれはおよそ「孤立」といった静的な概念で描写できるものではない。それは彼の派手な行動・言動を見れば、一目瞭然であろうと思う。孤立ではない孤高の卓越を目指すような外交姿勢は、アメリカの外交思想の伝統においてモンロー・ドクトリンが標榜している内容と重なりあう。
トランプ大統領自身がモンロー・ドクトリンについて言及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もともと自分の政策を理論的な概念構成で説明するタイプの人物ではない。だが、私が今月初めにアメリカで出席した国際関係学会でも、モンロー・ドクトリンの伝統を参照することによって、トランプ大統領をよりよく理解したいという趣旨の発言を多く聞いた。
こうした事情をふまえて、本稿では、トランプ大統領の理解に役立つと思われるモンロー・ドクトリンの特徴を整理してみたいと思う。長く奥深い歴史を持つので全体像の提示というわけにはいかないが、カギとなる点として、相互錯綜関係回避原則、大陸主義、明白な運命論、の三点をあげていきたい。
相互錯綜関係回避原則
モンロー・ドクトリンは、1823年当時の米国大統領ジェームズ・モンローの一般教書演説の内容に由来する外交原則である。当初は「モンロー氏の宣言」などと呼ばれていた。ただしその思想的淵源は、初代大統領ジョージ・ワシントンの有名な離任演説にある。ワシントン大統領は、アメリカがヨーロッパの事柄に介入するべきではないことを強調した。ワシントンは、フランス革命の3カ月前に大統領に就任した。約8年間の在職期間中、アメリカ独立戦争を支援してくれたフランスに起こった革命と、その後のヨーロッパ大陸全体の騒乱に直面したが、徹底して不介入主義を貫いた。ヨーロッパの騒乱に巻き込まれてしまっては、アメリカは疲弊し、あるいは滅亡する。そう考えたワシントンの確信は、確かに「孤立主義」とも言える思想の反映であった。
それでは1823年にモンロー大統領は、何を行ったのだろうか。ワシントンの教えを変えたわけではない。むしろ堅持する意思を表明した。ただし新しい点を付け加えたうえで、体系的な外交原則として昇華させた。
モンロー大統領は、アメリカはヨーロッパに介入しない、だからヨーロッパ諸国も西半球の「新世界」の事柄に介入しないでほしい、という点を強調した。そしてそれはアメリカ合衆国だけでなく他の西半球世界の諸国にも適用されると述べた。もしヨーロッパ列強が中南米諸国の事柄に介入する場合には、アメリカは断固としてそれを阻止する、という決意を表明した。
モンロー大統領によって、ワシントン大統領の教えに「相互」の要素が加わり、他国の態度にも影響を与えることを意図したドクトリンとして定式化された。この「相互」の「錯綜関係」を「回避」するという外交原則が、モンロー・ドクトリンの最も基本的な理解である。そのため今日でも、アメリカの卓越した力を他国に見せつけてアメリカへの干渉に強い警告を出しながら、ヨーロッパの事柄にはなるべく関与しないようにする外交政策を見るとき、つまりトランプ大統領が標榜する外交姿勢を見るとき、モンロー・ドクトリンが思い出されることになる(アメリカ外交政策史からの研究には相当な蓄積があるが、邦語では、中嶋啓雄『モンロー・ドクトリンとアメリカ外交の基盤』[ミネルヴァ書房、2002年]が信頼できる)。
大陸主義
もう一つのモンロー・ドクトリンの特徴は、ヨーロッパ「旧世界」と、西半球「新世界」が、相互錯綜関係回避原則を適用する単位として設定されたことである。これは当時のヨーロッパ大陸とアメリカ大陸を対比する考え方にも依拠していたため、「大陸主義」の思想として参照されることもある。
18世紀に大英帝国の北米植民地が独立戦争を開始したとき、13の植民地が形成した連合軍の名称は「Continental Army」(直訳すれば「大陸軍」)であった。その連合軍としての「大陸軍」の総司令官が、ジョージ・ワシントンであった。独立戦争は、一つの国家の樹立を目指すものではなかった。1776年の「独立宣言」は、13の主権国家の宣言の形がとられ、独立戦争後に生まれたのも、13の主権国家であった。1787年合衆国憲法を11の国家が批准して連邦政府を中心とする合衆国の枠組みが作られたが、それでも当初は「分割主権論」のドクトリンが採用された。
さらに19世紀にはいると、中南米諸国が、次々とスペインとポルトガルの植民地支配に反旗を翻して独立していくようになる。これをアメリカ合衆国は歓迎するだけでなく、保護することも宣言した。それが1923年の「モンロー氏の宣言」だった。
「大陸」概念は、このように複数の主権国家が、一つの地理的空間に併存している状態を指す。したがってヨーロッパも一つの「大陸」だが、南北米州大陸もまた別個の「大陸」である、というのが、アメリカの伝統的な政治思想であった。
地政学理論の始祖で知られるハルフォード・マッキンダーは、1919年の著書『デモクラシーの理念と現実』の中で、イギリスとアメリカは、「植民地」「大陸」「島国」の三段階を通過する類似した歴史を持っている、と述べている。アメリカが「植民地」から「大陸」になったのが、独立戦争後の状態である。それは一つの地理的空間に複数の政治体が併存しているという意味で「大陸」であった。南北戦争をへて、合衆国としての単一性の高い政治共同体に発展していく過程をへて、アメリカは「島国性」を持つようになる。海に挟まれた一つの陸地の地理的空間と、一つの政府を持つ政治単位が、一致してきたからである。第一次世界大戦において海を越えて欧州の戦争にまで介入したとき、アメリカは遂に本当に「島国」あるいは「海洋国家」として脱皮し、世界的な外交安全保障戦略も、海洋国家同士のネットワークを重視するものへと変化していった、という歴史観である。
だがマッキンダーの説明に由来する歴史観は、「大陸主義」が建国以来のアメリカの外交思想の基盤であったことも示している。保守主義が台頭すれば、「大陸主義」が現れてくる。そもそもウィルソン大統領を見限って国際連盟加入を見送ったアメリカは、1941年の真珠湾攻撃で第二次世界大戦に参戦するまでの間、モンロー・ドクトリンの原則に立ち返った「大陸主義」を標榜していた。アメリカの外交姿勢が本当に変化したのは、第二次世界大戦後の覇権的な国力を背景にして、冷戦を開始して世界的な規模で共産主義諸国と対峙すること決断したときである。だが冷戦期(及び冷戦終焉後のグローバル主義)のほうがむしろ例外で、「大陸主義」こそが、本来のアメリカの外交原則である、という思想は、根深く存在している(たとえば、チャールズ・A・ビアード[開米潤]『大陸主義アメリカの外交理念』[藤原書店、2019年]を参照)。
トランプ大統領は、「アメリカ・ファースト」を掲げつつ、カナダを51番目の州にし、グリーンランドを併合したい、パナマ運河を取り戻したい、という願望を、実際の政策目標へと昇華させている。強い大陸主義的な思想が見られる。これは他の地域に対する不介入主義的な姿勢と、明白な対比を描く特徴である。
明白な運命論
モンロー・ドクトリンが確立され、発展していった時代のアメリカは、北米大陸全域を制圧し、さらには太平洋をはじめとする地域へ、領土拡張を続けていた。その過程で起こった北米大陸におけるネイティブ・アメリカンに対する殲滅行為は、苛烈を極めるものであった。
その拡張主義を支えていたのは、アメリカは神に選ばれた特別な国だ、という選民思想である。この思想にしたがって、アメリカの領土拡張は、神の恩寵にしたがって運命づけられた正しい行為である、という思想が導き出されてくる。これは「明白な運命(manifest destiny)」論と呼ばれて、19世紀のアメリカの政治思想を特徴づけるものとされている。(たとえば、山岸義夫『アメリカ膨張主義の展開:マニフェスト・デスティニーと大陸帝国』[勁草書房、1995年])
「明白な運命」論にしたがった世界観では、アメリカは神の恩寵にそった「新世界」の充実には貢献するべきだろうが、汚れた「旧世界」のことなどに関わる必要はない。国際秩序を守るためにアメリカは指導力を発揮しなければならない、などと考える20世紀後半以降の国際政治理論にそった視点は、相対化される。
確かに「新世界」が、自由主義世界とか民主主義陣営といった言い方に翻訳される場合も、多々ある。20世紀の冷戦時代のトルーマン・ドクトリンでは、アメリカは「新世界」を事実上「自由主義陣営」と言い換えて、解釈運用した。対テロ戦争に乗り出したとき、ジョージ・W・ブッシュ大統領は、「われわれの敵か味方か」と問いかけて、文明世界と野蛮なテロリストの世界を区分する世界観を披露して、ブッシュ・ドクトリンの「新世界」運用を試みた。バイデン大統領は、「民主主義諸国vs権威主義諸国」の二元的世界観を打ち出していた。しかしこれらの時代は終わった。
今のアメリカ人には、国際社会の指導者として振る舞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使命感は希薄だ。国力の裏付けが本当にあるのかも、疑っているだろう。それが一国主義をとってでも復活を期する「アメリカを再び偉大に(MAGA)」のスローガンが受けられる時代の風潮だ。「新世界」は「アメリカ・ファースト」にそって、解釈され、運用される。
トランプ大統領は、「とても宗教心のある人間には見えない」と多くの人々に評されているが、本人は意に介さず、自分が大統領を務めていること自体が神の恩寵によるものだという趣旨の発言もしている。現実に、トランプ氏の強力な支持基盤の一つが、宗教右派と言われる人々だ。
顕著に確認できるのは、「明白な運命」は、不法移民としてアメリカに入ってきた者などには適用されないということだ。かつて19世紀にネイティブ・アメリカンが苛烈な殲滅戦争の犠牲になったことも想起されてしまうが、明白な運命論と、排外主義的な純潔主義は、当然、両立する。
強烈な親イスラエルの立場をとるトランプ大統領は、内政面のみならず、外交面においても、宗教文化的に不寛容主義の姿勢をとる場面があるだろう。ロシア・ウクライナ戦争ではプーチン大統領との対話を厭わず、第三者調停にあたっているトランプ大統領だが、同じように戦争の終結を訴える対象ではあっても、中東においては武力行使を厭わず一方的な態度をとる。ガザの開発への関心も、ガザを事実上のイスラエル領とする前提と表裏一体の関係にある。
新しいモンロー・ドクトリンの行方
このようにトランプ大統領の外交政策の思想史的な背景を探ることは、トランプ大統領が単なる思い付きだけで行動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ことを示唆する。少なくともアメリカの外交思想史においては、そのように言える。だがそれはトランプ大統領の外交政策が素晴らしいものだと言うことと同じではない。また、トランプ大統領の政策が成功を約束されているものだと考えることとも違う。冷静に分析的に把握することは、むしろ適切な批判や距離の取り方を識別するためでもある。
逆に言えば、安易な愚弄や軽蔑は、正しい批判も生み出さない。それは、結果的には、われわれの対応の不備にもつながるだろう。特異な性格を持つ大統領であるからこそ、冷静な分析をする視点が、いっそう強く求められる。
篠田 英朗(東京外国語大学教授・国際関係論、平和構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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