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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다음 주 월요일(9/16)~목요일(9/19)은 추석 명절 및 관련 일정으로 인해 '21세기 두란노서원' 등을 중심으로 한 페이스북과 홈페이지와 유튜브 상의 게시 및 공유가 어려운 상황이기에 참 죄송스럽고 미리 양해를 구하며..
혹 여러 이유로 그와 유사한 내용들이 필요한 분들은 페이스북('양범주' 검색), 홈페이지(Daum검색에서 '행복카페교회' 들어가서 '리바이벌 센터' 게시판), 유튜브('양범주목사의 두란노서원' 검색)에 대략 2년 정도 분량이 잘 보관되어 있고 그 누구든, 그 어디서든, 그 어느 부분이든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게 되어 있으니 활용 및 참조해 주시길 원하고 부탁드리며,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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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라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듯이 다윗이 제사장 아비아달을 통해 가져오게 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께로 기도하면서 나아갔으며 실제로 그와 함께 하나님 아버지께 생생한 응답도 받을 수 있게 쓰였던 에봇은 어떤 우상이나 미신 같은 것이라든지, 또는 세상적인 도구나 관습적인 수단 같은 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에봇은 출애굽기 28장 6~10절에서 "그들이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에봇을 짓되 그것에 어깨받이 둘을 달아 그 두 끝을 이어지게 하고 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에 정교하게 붙여 짤지며 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라고 증거되어 있고, 또한 26~30절에서 “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아래 양쪽 가 안쪽 곧 에봇에 닿은 곳에 달고 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어깨받이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쪽 곧 정교하게 짠 띠 위쪽에 달고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정교하게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떨어지지 않게 하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지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제사장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때 겉옷 위에 마치 조끼와 유사한 모양과 방식으로 착용하는 것으로 하나는 가슴 쪽에, 하나는 등 쪽으로 해서 띠로 연결하는 것이며 우림과 둠밈이 있는 판결 흉패와 결합된 것인데..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왕으로서 그 에봇을 활용하고 의지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간 것은 오늘날의 우리들로 치면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만을 의지하면서 기도하는 것과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었고 단절케 되었으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고,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으로..
그 어떤 인생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었고 기도하면서 응답을 받을 수도 없었으며 하늘의 신령한 힘과 역사들을 온전히 누릴 수도 없는 현실과 존재가 된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가면 갈수록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불신앙들 등이 쌓이고 또 쌓임으로 인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마치 지옥의 그림자와 같은 무거운 짐과 파괴들, 저주와 비참들 속에서 살게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일 뿐 아니라 세상 끝 날에는 영원한 심판과 형벌과 저주와 지옥을 피할 수 없는 실제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인생들을 위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세상이 주지 못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것이고..
실제로 그를 위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에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고, 정말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게 하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시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그 누구든 그 예수님을 어떤 식으로든 믿기만 하면, 곧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유월절 어린 양,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회막, 지성소, 제사장, 선지자, 사사,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과 같은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들이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값없이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으며,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임은 물론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순간순간 사도 바울과 같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과 싸울 수 있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참회하며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면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도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함으로 인해 근본적으로는 동일하게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임은 물론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도 될 수 있게 해 주신 것이며, 그와 함께 세상이 주지 못할 온갖 응답과 승리들, 이적과 열매들 등도 강렬하고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실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에 있어서의 구주 예수님에 대한 그와 같은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중에 하나가 바로 아래 본문에서 증거되어 있는 에봇이라 할 수 있고, 참으로 구약 성경 곳곳에는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인 때로 모든 것들이 희미할 수 있고 믿음 자체가 구조적으로 더욱 힘들 수 있는 시기였던 만큼 그때의 연약한 인생들이 한 사람이라도, 한 번이라도 더 오실 메시야를 믿고 지할 수 있도록 구주 예수님에 대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고 다양하게 드러나 있고 증거되어 것을 볼 수 있는 것인데..
다만 어쨌거나 다윗을 위시해서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고, 참이나 원형이라기보다는 임시적이거나 모형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며, 실상 피 제사나 희생 제물들, 제사장이나 선지자 등의 형식과 방법들, 절차와 위치들, 공간과 상황들 등과 함께 동반될 수밖에 없는 다양하면서도 적지 않은 한계와 제한들이 없을 수는 없는 현실과 실상인 것이었고, 따지고 보면 구주 예수님의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지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는 정도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대비적으로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어디서나, 그 어떠한 때에도, 실상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 누구라도, 게다가 크고 작은 모든 부분들에 있어서 그 있는 자리에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바로 그 이름과 함께 원론적으로는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만큼의 구원과 응답이, 또한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가, 뿐만 아니라 온 세상 천지만물과 전 인류, 모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들과 함께 하는 창세 전부터의 뜻과 계획과 섭리가 약속되고 예비되어 있으며 구약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명료하게 통찰할 수 있는 여건인 것이기에 모든 것들로 더욱 더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 어떠한 문제와 위기들에서도 더더욱 치열하고 또 치열할 수 있는 이유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아래 본문에서의 다윗부터야 말로 그때 당시와 같이 다른 그 어느 누구보다도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이었을 때는 그 어떤 시련과 위기들 속에서도 더 크고 강력한 하늘의 힘과 은혜들로 능히 잘 감당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더 약이 되고 큰 그릇이 되며 단련이 되고 연단이 되며 훗날을 위한 준비가 되고 그러면서 실제로 머지않아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의 역전과 흥왕과 열매들 등이 넘치게 되었으나 반대로 후에 순간순간 깨어 있지 못하고 한 순간 방심함으로 인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을 죽게 했을 때는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시간과 계획에 따라, 그리고 그러한 다윗의 영성과 그릇과 준비 등에 따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심히 곤고하고도 처참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의 징계들이 심각하게 되었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사실상 우리 인생들이 근원적으로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래 본문 당시의 다윗과 같이 그러한 기도 한 번, 그로 인한 실질적이고 생생한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어느 정도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인가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고 결정적이며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사무엘상30:7~8)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14일(토)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