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설
근대국가에 들어 우리나라에는
음력설(구정)과 양력설(신정)로
두 개의 설이 있었다.
이른바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것이다.
음력설은 전통적인 명절,
곧 설을 의미하며
양력설은 현재 일상력으로 사용하는
태양력(양력)에 의한 설이다.
그러나 전통명절은 설날이며
구정(舊正)이란 용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요즘 설날은 추석과 함께 전후하여
3일간 연휴이다.
그러나 구정으로 일컬어졌던 ‘설날’이
오늘날과 같이 본명을 찾기까지는
우리 민족의 수난의 역사와
나란히 할 만큼 진통을 겪었다.
1896년 1월 1일
(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일,
이 기준으로는 고종 32년)에
태양력(양력)이 수용되고도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은
이어졌지만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에 의하여
설날과 같은 세시명절마저 억압했다.
그들은 우리 명절 무렵이면
떡방아간을 폐쇄하고
새 옷을 입고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먹칠을 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반면에 일본의 명절과
그 행사의 의식(儀式)을
한국에 이식하여 강요하기도 하였다.
가령 일본 명절인 천장절(天長節),
명치절(明治節), 기원절(紀元節) 등을
국경일로 정하여
갖가지 행사에 한국인을 참가시켰다.
그런가 하면 신정에는
시메나와(표승=標繩)라 하여
새끼에 귤을 꿰어 대문에 달게 하고
단오절에는
고이노보리(리치=鯉幟)라 하여
헝겊으로 잉어를 만들어
풍선처럼 띄우게 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는
일인들의 방식대로
양력과세를 강요했는데,
이는 광복 후 공화국에 들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설날’과
양력 1월 1일인 신정(新正)을
명절로 여기는
이중과세 풍속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자 국가에서는
이중과세의 낭비성을 들어 금했으며
산업화시대에 와서는
낭비성과 아울러
외국과의 무역통상 관계를 들어
신정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국제적으로 신정이 통용되기 때문에
우리도 그 때에 맞추어서 쉬고
‘구정’ 때에는 외국에서는
모두 일을 하므로
우리 역시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제무역 수지에 차질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역시 음력 기준의 추석은
휴일로 삼았다는 것은
모순되는 논리였다.
오랫동안 공휴일 또는
비공휴일 문제로
몇 차례 오락가락하던
우리의 설날은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되어
1일간 국가적인 공휴일이
되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한국인의 생활 자체가 민속인데,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은
실로 어색하고 궁색했다.
그러다가 1989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본명인 ‘설날’을 찾게 되자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70∼80년만에
설날을 되찾았다며
떠들썩했었다.
한때 신정도 3일간 연휴로 하다가
다시 2일로 했으나
1999년 1월 1일부터
하루의 휴일로 축소되어
3일 연휴인 설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설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설날을 전후하여
성묘하는 세시풍속은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민속놀이를 비롯하여
갖가지 세시풍속은
퇴색되거나 단절되었다.
다행히 근래에는
민속박물관과 민속촌 등
민속과 관련이 있는 기관에서
민속놀이판을 벌이고
이를 찾는 가족들이 날로 늘고 있다.
떡국을 끓일 가래떡을
기계로 빼거나
상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아직 떡국을 명절식으로 하는
세시풍속도 전승되고 있다.
떡을 먹지 않아서
밥으로 차례를 지낸다는
가정도 있지만
설날과 떡국이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특징과 의의
설은 우선 한 해의 첫날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특히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인 의미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설은
신성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오늘날의 설은
국가차원의 공휴일이지만
전통사회에서처럼
대보름까지 설명절이
이어지지는 않는다.
설날은 초하루로서
차례를 지내는 날이다.
그리고 성묘는 설을 전후하여 한다.
근래에는 설 연휴를 이용하여
국내외 여행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반면 민속박물관이나
민속촌과 같이
설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곳을
가족 단위로 찾는 문화가
생성되기도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구정과 신정이라는 신년을
두 번 맞는 문화를 만들었다.
설날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오늘날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와 같은
인사말을 연간 두 번에 걸쳐 한다.
좋은 말이니 많이 할수록 좋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태양력을 기준으로
한 새해에 이미 인사를 하고
다시 설에 똑같은 인사를 한다는 것이
다소 어색하다.
실상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신년 인사말은
전통적인 덕담이 아니라
새로 생긴 현대판 덕담이다.
그렇다면 일상력인 양력으로
새해를 맞았을 때에는
신식 덕담을 나누고
우리 전통명절인 설날에는
“과세 안녕히 하셨습니까”,
“과세 편안히 하셨습니까”와 같은
전통적인 인사말을 하는 것도
무방하리라 본다.
이는 설이라는 전통문화를
소박하게나마 이해하는 길이다.
설과 추석 무렵이면
‘민족대이동’이 화두가 되고 있다.
명절연휴에 고향을 찾는 인파가
물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어른’들이 자녀를 찾는
역류현상도 형성되고 있지만
아직은 고향을 찾는 인구가 많다.
그래서 오늘날 설은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측면과
‘만남’을 갖는 절대적인 시간이 된다는
측면에서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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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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