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과 술. 팥빵 안에 앙꼬의 관계라고 정의하고 싶다. 팥빵 안에 앙꼬가 없으면 싱거운 빵이 되듯이 술이 없는 야구 관람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야구장을 찾는 팬들의 대부분은 '야구장과 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한다.
야구 팬들의 술 사랑은 정부의 규제도 막을 수 없었다. 지난 2008년 보건복지부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으로 야구장과 축구장 등의 체육 시설 안에서 음주 행위를 금지토록 했다. 개정안 발표 후 야구팬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보건복지부는 해명자료를 내고, 음주 관련규제를 완화 시키기까지 했다.
뭐든 과유불급이다. 얼마 전 야구장에는 취객이 그라운드에 난입해 심판을 폭행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야구장 내 소주 등 알콜 도수 6도 이상의 주류 반입에 대한 제재조치를 내렸다. 혹시나 모를 사고를 대비해 병류 반입도 금지시켰다. 팬들이 야구장 내에서 판매하는 캔맥주나, 생맥주를 즐길 것을 권고한 셈이다.
그러면서 야구장 내에서는 맥주 주류(酒類)업체의 소리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전쟁은 2파전 양상이다. 오비맥주(카스)와 하이트진로다.
잠실구장 '두산은 카스, LG는 하이트'
두산은 주류 외부 반입을 원칙적으로는 금지하고 있다. 실제로 야구장 입구에서 팬들의 동의하에 가방 검사를 실시한다. 적발된 물품은 압수해뒀다가 귀가시 찾아 갈 수 있다. 그럼에도 몰래 숨겨서 야구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이는 전 구단에서 고민하는 사항이다.
잠실구장은 서울시가 관리를 하고 있다. 서울시 산하의 잠실구장관리본부에서 카스와 정식 예약을 맺고 독점으로 판매하고 있다. 잠실구장 내에 카스 생맥주와 캔맥주가 유독 눈에 많이 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맥주회사와 구단과의 연계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 광고 계약 때문이다. 현재 두산은 카스와 손을 잡고 있고, LG는 하이트를 선호하고 있다.
잠실구장에서는 앉은 자리에서 시원한 생맥주를 구입해 마실 수 있다. 일명 찾아다니는 서비스 '이동식 생맥주'가 있다. 팬들 사이에서 '맥주보이'로 불리는 이들은 이동식 맥주통을 책가방처럼 메고 다니면서 시원한 생맥주를 판매한다. 이들이 메고 다니는 이동식 맥주통의 무게는 무려 15kg에 달한다. '맥주걸'이 없을 수밖에. 맥주보이는 잠실구장 내에 평균 9~10명 정도가 배치된다. 이동식 생맥주는 경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7회 말까지만 판매하고 있다.
목동구장 '생맥주는 카스, 캔맥주는 하이트'
목동구장에서는 종류에 따라 각 기 다른 회사의 맥주를 즐길 수 있다. 생맥주는 카스로, 캔맥주는 하이트다. 이는 넥센에서 각 업체의 특성에 맞게 입찰을 했기 때문이다. 목동구장 내 음식점이나 편의점에서는 구단의 방침을 따라 생맥주와 캔맥주의 브랜드를 맞춰야 한다.
구단 관계자는 "조사 결과 카스는 생맥주가 캔맥주는 하이트의 선호도가 높았다. 두 회사와 함께 계약을 하면서 팬들이 맥주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반응이나 판매도 좋다"면서 "지난해까지 맥주관련 이벤트를 실시했는데, 올해는 계획이 아직까지는 없다. 필요하다면 준비를 할 수는 있다"고 전했다.
마산·광주구장 '카스만 맛 보세요'
마산구장과 광주구장에서는 카스만 맛볼 수 있다. 마산구장은 시에서 편의점을 입찰해서 운영 중이고, 편의점 내에서 카스를 판매하고 있다. 광주구장도 구장 내에 입점한 편의점에서 카스와 독점 계약을 해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는 하이트 등 다른 맥주는 아예 구경도 할 수 없다. 다른 구장과 비교해 카스의 판매량이 유독 높은 이유다.
아쉽게도 두 구장 모두 캔맥주 외에 생맥주를 판매하고 있지는 않다. NC 구단 관계자는 "시에서 일반음식점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생맥주를 팔 수 없다. 잠실구장은 시에서 허가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구장은 구장 내에 위치한 클럽라운지에 식당이 입점하면 그곳에서 생맥주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문학·대구·대전구장 '우린 하이트다'
문학과 대구, 대전구장은 하이트와 전속 계약을 맺고 있다. 전광판 광고는 물론 구장 내에 광고판에도 상표를 노출하고 있다. 세 구장에서 유독 하이트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이 때문일 것이다. 물론 구장 내 맥주 판매 독점권도 하이트가 가지고 있다.
하이트 생맥주는 문학구장과 대전구장에만 맛볼 수 있다. 대구구장은 캔으로 파는 것 외에 생맥주는 판매하지 않는다. 이유는 구장의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생맥주를 만드는 통을 하나 따게 되면 당일에 모두 소진해야하는데, 우리는 구장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팬들의 수도 적어 마진이 남지 않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사직구장 '맥주도 롯데 사랑'
롯데의 홈구장인 사직구장은 지난해까지 카스와 광고 전속계약을 맺었다가 올해 중단했다. 계열사인 롯데 칠성주류에서 생산하고 있는 맥주 클라우드를 홍보하고, 판매하기 위함이다.
롯데 관계자는 "광고를 두 개의 맥주를 한 번에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계열사 맥주의 홍보를 선택한 것이다. 대신 야구장 내에서 카스의 판매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카스와 클라우드의 공존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안타깝게도 사직구장도 부산시의 허가가 나지 않아 생맥주는 판매할 수 없다.
야구 팬심을 사로잡기 위한 맥주의 전쟁
한 업체 관계자는 "가족 단위 관중과 여성 팬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야구장이 맥주업체들에 뺏길 수 없는 마케팅 전쟁터가 됐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오비맥주는 자사의 대표 브랜드 '카스'의 이름을 딴 새로운 개념의 야구 관전포인트 '카스 포인트' 후원을 시작으로, 사회인 야구 대회인 '카스 파이널'을 선보이며 프로야구 마케팅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정동혁 오비맥주 마케팅 팀장은 "한국 프로야구를 한층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카스포인트 운영과 더불어 최고 권위의 사회인 야구대회 개최로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맥주 카스의 명칭을 딴 야구장 내 다양한 프로모션과 이벤트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국내 무대 뿐 아니라 해외 야구시장에도 손을 뻗치고 잇다. 하이트진로는 파트너 계약을 통해 류현진 소속의 LA 다저스의 홈구장에 광고를 게재하고 제품 홍보에 다저스 로고를 활용하고 있다. 곧 LA 다저스의 로고가 새겨진 다저스맥주도 출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