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하느님의 작품
내 무의식 안에는 무질서하고 원초적인 욕구들과 왜곡된 지식으로 차 있을 거다. 식욕, 물욕, 성욕과 잘못 알고 있는 생존지식들이 나를 지배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 같다. 지금은 사회와 윤리교육으로 그런 것들이 통제되고 있어서 안전(?)하지만 만일 내 뇌가 망가지면 그것들이 내 안에서 마구 튀어나와 나와 이웃을 더럽힐(마르 7,21-23) 것 같아 걱정스럽다.
교육과 훈련으로는 무질서한 무의식을 정돈하고 정화할 수는 없는 거 같다. 많이 배운 사람도 뇌에 병이 들면 배운 대로 행동하지 않고 원초적인 욕구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고 그에 따라 행동해서 그에게 배운 이들이 무척 실망하고 슬퍼한다. 뇌도 육체니까 병들면 그렇게 되는 줄 알면서도 마음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러면 가면을 쓰고 살았다는 말인가.
교육으로는 안 되지만 신앙으로는 가능하다. 신앙은 들음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라서 뇌의 일이지만 그 최종 목적지는 마음이고 영이다. 믿음의 지식이 우리를 세상에서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살게 인도한다. 하지만 윤리적인 삶이 믿음의 끝이 아니다. 믿음은 이 세상 너머에 있는 곳과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에게 가 닿는다. 그분은 내 생명의 주인이시기도 하고, 나는 생명의 관리자일 뿐이다. 이를 물리적으로 증명할 길은 없다. 믿음이고 또 은총이다. 믿게 된 거, 사실이고 당연한 거로 여기게 된 거, 이게 은총의 선물이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다(에페 2,8).’
하느님의 심판이 두려워서 착하고 윤리적으로 사는 게 아니다. 하느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겪으셨기 때문이다. 지옥 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슬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예수님과의 복음적인 우정 때문이다. 나는 죄인이다. 악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그렇고, 언제든지 그 무질서한 욕구들이 나를 지배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 사정인 이런데도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희망하는 건 뇌가 아니라 마음의 일이고 영의 바람이다. 믿음의 일이다. 내가 무슨 수로 나를 이렇게 만들거나 바꾸어 놓았겠는가. 이게 다 하느님이 하신 일이다. 이런 나는 ‘하느님의 작품이다(에페 2,10).’
예수님, 원초적인 욕구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제 무의식을 진리로 비추어주십시오. 제 마음을 활짝 열어드립니다. 제 영혼을 주님 손에 맡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시험에 들지 않고 시련 속에서도 제가 받은 믿음이라는 선물을 빼앗기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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