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일옥
하루(1)
춘분이 지났는데 소매 끝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맵다. 밤과 낮의 길이가
노루 꼬리 만큼 길어져서인지 어제와 같은 시간이건만 더욱 밝아진 빛과
아침의 싱그러움에 발걸음이 가볍다. 높다란 아파트 잎이 없는 마른
가지만 서 있는 길을 지나노라니 찬바람에 안겨 오는 새봄의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배탈 고개 버스 정류장 건너 낡은 집 세 채를 헐고 들어선 2층짜리 빌딩
처음 들어섰던 책방 일 년 만에 문을 닫고 내부 수리를 하더니 일이 층에
전문 커피점이 들어섰는데 찾아드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안 된 생각이
든다.
그런 점포가 어찌 커피 전문점뿐일까? 생각 중에 어느새 들어서는 버스
이른 시간 임에도 항시 만원인 것을 보니 고단한 이들의 삶이 눈앞에
보인다. 토평을 지나 달리는 버스 넓은 밭들에는 비닐하우스가 하얗게
덮여 있고 아차산 터널을 뚫는 현장 한강의 몇 번째 다리인 줄 모르지만,
반원형의 대형 구조물이 설치되었고 다리로부터 터널로 이어지는 고가
도로 공사가 다가오는 봄을 재촉하듯 여기저기 작업준비에 박차를
가하려 운반차들이 분주하다.
한강 둔치 대형 깃대에 펄럭이는 태극기 그의 조용한 함성을 뒤로하고
올라서는 워커힐 커브길 건너 위로 들어선 아차산 기슭의 아파트군 몇
해 전 약수동으로 출근길에 매일 대하던 광나루역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걸려있는 그림 나룻배들 분주한 백 여년 전의 옛날 모습 지상으로
달리는 버스에서 지하의 모습을 연상하며 잠시 그 때를 그린다.
강변역 언제나 이 시간이면 분주한 무가지 배분 대에 올려놓는 사람들
한 부씩 들어가는 손님들 모두가 유성과 같은 사나이의 손길이다. 바쁨
속에 위로 힐끗 쳐다본 전철 현황판에 들어서는 열차로 빨라지는 발걸음
들어오고 나가는 열차의 등장을 알리는 음악 온 역사에 힘차게 울려
퍼지며 쏜살같이 들어서는 열차 4시에 눈을 뜨자 시작한 보리 방편문 1
08독을 넘어 선다. 이어지는 아미타불 염불 객차에는 빈 자석이 없다.
좌석에 앉아 무가지를 펴들고 반 이상이 선전 문구인 지면에서 벌어지는
기사화된 사건들에 빠져버린 노신사, 휴대전화기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사이버 세상에서 타임마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종횡무진 누비는
젊은이들, 눈을 감고 관조에든 이들, 달리는 열차 밑으로 위에서 아래로
그 여운을 남기며 유유히 흐르는 한강 양안으로 서서히 이루는 소용돌이
자애롭게 보듬고 흐르는 강물은 이날을 여는 여의로움을 주는데 강 위로
까만 높이로 나르는 철새 무리 질서정연한 군무 아직은 덜 가셔진 어둠
속에 상상의 나래로 펼쳐 친다.
지하로 들어서는 열차 몇 정류장을 지나 난 빈자리에 앉아 펴든 책 매일의
일과에서 돌아오는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고전을 섭렵하는데 도착한 신도림역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메운 사람들 언제나 붐비는 신도림역사 사람의
물결 흐름에 몸을 맞기고 천안 쪽으로 가는 열차 승차장으로 오른다.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노인석에 앉아있는 할머니 오늘도 새벽 장을 보아
플라스틱 양푼에 채소 과일들을 잔뜩 담아 카트에 올려 문 옆에 세워
두었다.
구로역에서 몰려든 사람들 밀리고 밀리며 터지는 비명 여기저기서
야단이고 디지털 단지 역에서 부대끼며 내리는 사람들 문 옆 둥 그렇게
튀어나온 할머니 장바구니에 걸리어 화들짝 놀라 카트를 피하며 짖는
엷은 미소에 고향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출근 시간에 어김없이 만나는 에스컬레이터와 승차권 점검기를 나서면
역사 계단은 반대편으로 출근하는 사람들과 맛 부딪치는데 툭툭 스치는
어깨의 촉감에 가는 곳이 맛 바뀔 수는 없을까? 하고 드는 어이없는
생각에 피식 혼자 웃음을 터뜨린다.
역 앞 국물이 펄펄 끓는 솥에 소담스레 담긴 어묵 꼬치들 식빵에 버터를
듬뿍 발라 가열된 철판 위로 올려져 지글지글 연기와 냄새를 풍기는
포장마차에서 이른 출근길에 아침을 식빵 한 덩이에, 김밥 한 줄로 때우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면 나타나는 빌딩 앞 휴계 조경 공간 높은 소나무와
원형으로 다듬어진 바닥에서 두 자쯤 올려 만들어진 잔디 위에 늠름하게
앉아 있는 갈기가 야성인 황금 수사자 그 앞 두 마리 새끼 사자의 재롱을
내려다보고 있는 암사자의 큰 눈에 들은 자비로 음에 조각가의 솜씨와
정성이 가감 없이 훈훈하게 전하여 온다.
차길 옆으로 서 있는 수 십 년 된 벚나무 잔가지에 툭 불거지는 꽃눈 뭉툭한
기둥에 잘게 뻗은 가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나 관심을 두고 보면 잘 처진
난을 치는 붓끝의 예리함을 보여주며 노자의 여백에 빠져들게 한다.
첫댓글 복잡한 아침 출근길의 파노라마 영상이,, , !
잡다한 인간군상의 모습속에 삶의 진리가 다가오고♬
그속에서 하루의 활력소를 얻으소서♥☆♤
강장노님의 사랑 크기도 하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