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에 대한 最小限의 理解도, 따뜻한 憐憫도 없는
이 차가운 理念의 暴力앞에서
[최보식의 언론=
박주현 객원논설위원]
'부동산정책
國民 對討論會'는
시작부터 끝까지
權力이 演出한 欺瞞的인
三流 演劇이었다.
權力이 입맛대로 고른
俳優들을 舞臺에 올려놓고
對國民 詐欺劇을 벌인
이 優雅한 쇼에서, 나의 가슴을 가장 서늘하게 베어낸 것은
이 끔찍한 詭辯의 合唱속에 등장한 단연코 逆겨운
이 한마디였다.
"實居住라 해도 不動産은 100% 投機다."
人間의 삶과 땀방울을
이토록 차갑고 납작하게
짓밟는 言語가 또 있을까.
資本主義의 민낯을 그토록 冷酷하게 꿰뚫어 보는 者들에게 乾燥하게 묻는다.
眞正한 100%의 投機이자 賭博의 場은 오히려
株式 市場이 아닌가.
국가의 發展이나 企業의 올바른 成長을 道德的으로 念願하며 株式 計座를 여는 聖人君子는 資本市場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時勢 差益이라는
철저한 貪慾으로 움직이는
그 巨大한 投機 資本에는
限없이 寬大하면서,
平凡한 家長이 平生의 굽은 등으로 벽돌을 쌓아 올리고 家族의 溫氣를 지켜낸 작은 콘크리트 空間에는
'100% 投機'라는 殘酷한 주홍글씨를 새겨 넣는다.
하필이면 국가가 벼랑 끝 超高齡化 社會로 접어드는
이 嚴重한 時期에, 理念의 도그마(Dogma)에 갇힌
얼뜨기 左派 政府가 들어선 것은
이 나라의 늙어가는 民草들
에게 巨大한 災殃이다.
대한민국은 팍팍한 生計 때문에 隱退를 猶豫하고 굽은 허리로 일터에 나가야만 하는,
老人 貧困率 OECD 압도적 1위의 국가다.
평범한 庶民이 氣力이 衰하여 차가운 勞動 市場에서 밀려났을때, 남은 수십년의 衰落하는 삶을 支撑해주는
것은 變動性 짙은 株式이나
國家의 알량한 몇십만원 짜리 年金이 아니다.
그것은 젊은 날 입을것 안 입고 먹을것 안 먹으며 간신히 장만한 집 한 채, 그곳에서 나오는 素朴한 賃貸料나
傳貰 保證金의 利子 같은 작고도 切實한 生活 資金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는 庶民의 마지막 生命줄이자 平生의 勳章인 이 資産을
'不勞所得'이라는 이름의 社會惡으로 規定하고
끝없는 詛呪를 퍼붓는다.
불로소득을 剔抉하겠다는 저들의 傲慢한 道德主義
裏面에는 소름 끼치는
無慈悲함이 숨어 있다.
일흔이 넘고 여든이 되어 뼈마디가 닳아 없어져도, 그놈의 '빛나는 勞動의 價値'
를 證明하기 위해 죽는 날까지 새벽 人力市場과 廢紙 줍는 리어카로 向하라는 것인가. 平生을 誠實하게 일한
代價로 老後에 작은
安息을 얻는 것이 投機이자 剔抉해야 할 積弊라면,
이 나라의 늙은 父母들은 길거리에서 過勞로 生을 마감해야만 비로소 저들이
承認하는 '道德的인 市民'
으로 認定받게 되는 셈이다.
政治란 본디 人間의 有限함과 늙음의 슬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存在하는 것이다.
人間에 대한 最小限의 理解도, 따뜻한 憐憫도 없는 이 차가운 理念의 暴力앞에서 우리는 뼈아프게 思惟해야 한다.
老年의 平穩한 安息을
投機로 罵倒하고,
죽을때까지 肉體勞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게 채찍질하는 社會는 국가가 아니라 巨大한
'勞動 收容所'일 뿐이다.
平凡한 이들의 老後를
벼랑 끝으로 밀어넣고,
家族과의 追憶이 서린 집 한채 마저 懲罰的 稅金의 祭物로 삼아 저들이 도달하려는 그 잘난 국가의 實體는 대체 무엇인가.
짜고 친 討論會 舞臺
위에서 늙고 病든 家長의 마지막 安息處마저 嘲弄거리로 轉落시킨 이 끔찍한 디스토피아(Dystopia)를, 우리는 언제까지 '正義'라는 이름의 錯覺속에서 忍耐해야 하는가.
오늘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登記附謄本을 매만질 수많은 庶民들의 주름진 손등 위에,
이 僞善的인 權力은
너무도 苛酷한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