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나
유리의 서늘한 거울처럼 팽팽하게 엎드려 있는 바다의 지평
그 칠흑의 수면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외딴배 한 척
그 좁은 늑골의 방 안에는
시인이 손수 지어 품은 단 하나의 뜨거운 사랑과
시간의 빗장을 뚫고 흘러내린 거룩한 시의 뼈들이 잠들어 있다
사방으로 흘러가는 덧없는 시간의 궤도 속에서
오직 우리만이 멈춰 선 채 서로의 체온을 가늠하고
그분이 불어넣은 서늘한 바람의 숨결은
지금도 이 썩어가는 육신의 바닥을 온전하게 적신다
보라, 시인이 수면 위로 툭툭 던져 넣는 그 영원의 문장들은
잔잔한 물결의 결을 따라 맹렬하게 번져나가며
지상의 모든 상처를 씻어내리는 거룩한 언약이 되고
그댈 향해 굽이치는 나의 시와
나를 품기 위해 찢긴 그분의 시가 마침내 맞닿는 그 아득한 지점
우리의 항해는 결코 헛되지 않으리니
시간의 바깥에서 기어이 마주하게 될 그 눈부신 재회의 순간을 위하여
다시 눈을 뜨고 벼랑 끝을 건너올 그분의 마지막 음성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이 좁은 배의 돛대를 붙잡고
낮아진 마음으로 고요히 뼛속까지 기다린다
첫댓글 화자와 시인의 시가 만나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향해, 화자는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겠다는 마음가짐을 담고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네. 모두의 가슴속 시가 영원히 찬란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