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농에서 망봉산으로
유월 둘째 월요일이다. 우리 지역은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지속되는 편이다. 텃밭 농작물들은 물 부족을 심하게 겪는 즈음일 테다. 오는 주중에서 주말에 걸쳐 비가 예보되었는데 장마로 이어질 낌새다. 학교에선 주중부터 정기고사 일정이 잡혀졌다. 사월 말 봤어야 할 시험이 코로나로 상당히 늦추어졌고 여름방학은 광복절 직전 들어가 불과 일주일 남짓으로 줄어든다.
일과를 마치고 와실로 들었다. 낮이 길어진 때라 날이 저물려면 시간이 제법 남았다. 장맛비가 내리면 산책이 여의치 못할 듯 해 날씨가 맑은 날만이라도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퇴근하면 저녁을 무엇으로 차려 먹느냐보다 우선해 어디로 산책을 나설까를 정해야 한다. 시내버스를 타면 바다를 볼 수 있고 와실 근처를 맴돌면 산행을 하다시피다. 시내버스를 타기로 했다.
고현을 출발해 연초를 거치는 노선은 몇 갈래 된다. 옥포에서 능포로 가는 10번 11번이 가장 잦다. 덕치 너머 하청에서 칠천도로 들어가는 35번과 장목 구영을 돌아오는 30번 31번이 있다. 장목에서 외포를 둘러 옥포와 아주를 거쳐 능포로 가는 33번도 있다. 22번 23번은 장승포에서 지세포를 거쳐 구조라까지 간다. 이들 버스를 타면 진동만이나 대한해협 바깥바다를 볼 수 있다.
연사 정류소에서 구영으로 가는 31번을 탔다. 장목 북단 예전 영등포성이 있는 포구를 줄여 ‘구영’이라 이른다. 구영 곁 유호리와 함께 진해가 빤히 건너다보이는 거제 최북단이다. 유호리는 상유와 하유로 나뉘는데 갯바위와 낚싯배 낚시터로 알려졌다. 거가대교 연륙교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지난해 구영이나 유호에 가끔 나갔다. 비가 오는 새벽 거기를 둘렀다가 출근하기도 했다.
고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는 구영을 돌아오는 버스였다. 고현 나들이 나간 사람들과 하교하는 학생이 몇몇 보였다. 연초삼거리를 지난 다공리에서 덕치를 넘어 하청에서 장목으로 갔다. 관포고개를 넘어 궁농에서 내렸다. 궁농항은 낚시공원을 잘 꾸며 놓았고 근래 대통령 별장 저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태운 유람선이 뜨는 곳이다. 낚시나 저도 탐방에는 관심이 없었다.
궁농항에서 가까운 망봉산 둘레 길을 걷고 싶었다. 작년 겨울 들머리 퇴근 후 어둠이 내리고 있을 때 한 차례 올랐던 갯가 봉우리다. 간곡에서 농소로 길게 이어진 해안은 몽돌이 펼쳐져 있다. 학동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름이면 해수욕장으로 개장된다. 몽돌 해변이 끝난 농소에는 최근 규모가 큰 리조트가 들어섰다. 바로 가까이 침매터널로 들어서는 거가대교 연륙교가 보였다.
유람선 선착장을 지나 낚시터로 나가는 곳에서 망봉산 둘레길로 올랐다. 몽돌 해변을 뒤로 하고 찬물뜰 전망대에 서니 거가대교 연륙구간과 푸른 바다가 드러났다. 비탈을 올라 대봉 전망대에 이르렀다. 구한말 러일전쟁 때 러시아 측에서 해안을 정찰했던 봉우리였다. 높이 자란 곰솔 가지가 바다의 조망을 일부 가려 아쉬웠다. 쉼터에서 내려와 산허리로 난 하늘 숲길로 향해 걸었다.
하늘 숲길엔 신병 훈련소의 유격장 같은 밧줄 출렁다리가 나왔다. 고소공포가 있어 근처로 가질 않고 산책로를 더 돌아가니 모시밭꼴 전망대가 나왔다. 아까 찬물뜰 전망대보다 바깥바다가 훤히 드러났다. 부산 신항으로 드나드는 육중한 컨테이너 운반선은 천천히 움직였는데 작은 어선은 날렵하게 물살을 가르며 달렸다. 민박을 하면서 어부의 만찬으로 알려진 이수도가 가까웠다.
모시밭꼴 전망대에서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산허리로 돌아가니 궁농마을이었다. 거기도 작은 포구가 있었다. 망봉산이 뻗어간 잘록한 목에 등을 맞대고 두 포구와 한 마을이 형성되었다. 찻길로 나가니 저무는 해는 서녘으로 설핏 기울었다. 몽돌이 펼쳐진 간곡선착장까지 걸었다. 횟집이 서너 군데 보였으나 들릴 처지가 아니었다. 구영에서 상유 하유를 돌아오는 30번 버스를 탔다. 20.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