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경영권 승계용 삼성물산 합병 적법"
재벌 총수들 지배력 강화 ‘롤 모델’ 삼을 듯
“주주 자본주의 걷어차면서 기업 밸류업?”
재벌 봐주기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초래
금융위원회는 6일 ‘자본시장 정책과제 추진 방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놨다. 여기에는 국내 상장사의 자산가치와 수익성 등이 외국 증시에 상장된 유사 기업보다 저평가돼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실제로 한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난 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 정책의 최대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기업들이 저평가된 결정적 원인 중 하나는 일반 주주보다 재벌기업 총수인 대주주에 유리한 경영 판단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법원은 이 행위를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참여연대, 경실련, 금융정의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부당합병 1심 선고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2024.1.22. 연합뉴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누가 봐도 삼성물산에 불리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비율은 1주 대 0.35주였다. 당시 삼성물산 주가가 낮았으나 제일모직이 삼성물산보다 3배가량 높은 가치로 평가했던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었다. 합병 당시 삼성물산은 제일모직 대비 자산 규모가 3배 이상이었고 매출액도 5~6배에 달했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 가치만 따져도 합병가액을 크게 초과했다. 삼성물산 일반 주주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합병 조건이었다.
더욱이 합병 전 삼성물산 경영 방식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합병이 결정됐던 2015년 7월 이전 삼성물산은 분양 사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의도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리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에 비해 제일모직은 어떻게든 기업 가치를 높이려는 경영 활동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허위 공시와 분식 회계 등 자본시장 질서를 위반한 의혹들이 불거졌다. 그 당시 두 회사 경영진이 내린 결정과 공시, 주가 흐름 등을 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서스틴베스트 등 국내 거버넌스 자문회사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체로 반대의견을 냈다. 합병비율 등 불합리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를 비롯해 글래스 루이스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등도 삼성물산 일반 주주들이 불리하다는 이유로 ‘합병안 반대’를 권고했다.
삼성그룹은 언론과 증권사 등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총동원해 합병안 반대 여론을 무마하려고 했다. 언론들은 최대 광고주인 삼성을 무시할 수 없었고 증권사도 큰손이었던 삼성에 반대할 수 없었다. 삼성이 발표한 자료는 억지스러워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반면 엘리엇과 ISS 등 반대 논리를 펼쳤던 측 주장은 무시하거나 비판적 논평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삼성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무리하게 합병을 추진한다고 의심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검찰 수사 관련 주요 의혹. 연합뉴스
이는 검찰 공소사실에 명기됐고 1심 재판부도 일부 인정했다. 기업지배구조원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삼성그룹이 명분으로 내건 두 회사의 시너지 창출보다는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목적이라고 봤다.
그 근거도 명확했다. 이 회장은 당시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율이 0.6%에 그쳤다. 반면 삼성물산은 4%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이 회장이 약 23%의 지분을 보유했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면 이 회장은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물산 전체 지분의 30% 이상을 차지했던 외국인 투자자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합병이 성사되려면 당시 삼성물산 지분의 11.2%를 가지고 있던 국민연금의 찬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실제로 그때 국민연금이 반대했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무산됐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연결하는 고리가 됐다. 이 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은 대법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그럼에도 이 회장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1심 재판부는 이런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대법원과 1심 재판부의 판단이 다른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주요국 주가순자산비율(PBR) 비교. 연합뉴스
결국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삼성물산 주주들은 손해를 봤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물산 주주 손실액이 최소 114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삼성물산의 주주였던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S) 소송에서도 약 690억 원의 손해를 인정받았다. 결과적으로 삼성물산 경영진과 이사회가 소액 주주의 손실을 아랑곳하지 않고 대주주만을 위한 결정을 내린 셈이 됐다.
이번 판결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사건이 될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심 재판부가 국정농단 사건에서 대법원이 확립한 삼성 세습을 위한 일련의 과정과 사건을 부인했고,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와 국민연금 전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 국내 재판 결과, 그리고 엘리엇과의 ISDS 판정에서 확립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비율의 문제점과 소액 주주 피해를 부인했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최대 수혜를 본 장본인인 이재용이 무죄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이번 판결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으로 향후 재벌에 온정적인 사법부의 관행이 되살아나는 게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 회장의 부당승계 의혹은 그야말로 총체적인 금융 적폐 그 자체였다”며 “(재벌 총수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주주 자본주의를 걷어차도 된다는 신호를 주식시장에 주는 상황에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했다.
출처 : 소액 주주 울리고 재벌 총수 웃게 한 ‘이재용 무죄’ 판결 < 경제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첫댓글 한국식 벨류업, 재벌을 보호한다... 그게 한국식 밸류업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