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뚝에 찬 ‘완장’은 결국 목에 채워져 숨통을 막을 것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의 주변에는 권력에 기생하면서 狐假虎威하는 자들이 있다. 인간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면서부터 있어 왔던 일이다.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외형상 보이도록 하는 표식이 ‘완장’이다. 완장을 차게 됨으로써 권력자를 대리하여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 권력자에게 아무도 대항하지 못한다. 대항을 하면 폭력과 불이익을 당하기에 아무도 대항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불의라고 할지라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슬슬 피하거나 굴종을 한다.
대개의 인간은 완장 차기를 원한다. 완장은 그만큼의 위력을 보여줄 수 있는 신분증과 같은 것이다. 윤흥길의 ‘완장’이라는 소설에서 완장의 위력을 볼 수 있다. 주인공 임종술의 모습은, 6.25 북한의 침략 전쟁에서 북한에 부역하던 자들이 팔에 찬 붉은 완장을 떠올리게 한다. 침략자들은 무지하고 폭력적인 인간들의 팔뚝에 완장을 채워주고 완장을 찬 인간들은 같은 마을의 지주나 경찰 가족들을 끌고 가서는 인민재판에 세우고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죽창으로 죽이는 짓을 했다.
붉은 완장을 차고서 반동분자 등의 낙인을 찍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가서는 주민들을 모아 죽이도록 선동을 하던 자들의 악행은 오래가지 않아 끝이 났다. 연합군의 인천상륙으로 북한군이 후퇴하자 급히 북한군을 따라 가서나 북한군을 따라 가지 못하고 남은 붉은 완장은 찬 부역자들의 일부는 마을사람들에 의해 처단되거나 타 지역으로 도망을 갔고, 마을에 남은 부역자들은 주민들이 처단하지는 않았지만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아 죄인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다. 이들의 모습은 소설 완장의 주인공 임종술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북한의 침략 때 부역자들에 의해 온갖 악행이 저질러졌고, 과거로 되돌아가보면, 몽고가 침략하였을 때 봉고에 부역했던 자들이 있었고, 임진왜란 때에는 왜국에 부역한 자들이 있었다.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에 부역한 자들이 있고 일제로부터 우리의 국권이 침탈되어 식민국으로 있을 당시에는 얼마나 많은 부역자들이 있었던가. 어쩌면 우리 민족 중 일부의 사람들 핏속에는 권력자로부터 채워진 완장에 미쳐 배신을 하고 동족에게 피를 흘리게 하는 짓을 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다를 것이 없다. 좌파 정권이 채워준 완장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법치를 무너뜨린 자들이 있고, 그 자들이 권력을 잡고서 또 누군가에게 완장을 채워주고 그 완장을 찬자들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국민을 억압하고 있다. 권력자가 권력을 잃거나 완장을 권력자가 빼앗아 버리면 완장을 찬 많은 임종술이 미쳐버리거나 목숨을 버릴 것이다. 완장은 어쩌면 차는 순간 작은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지만 권력을 오래 가지 않고 그 완장은 팔뚝에서 목으로 이동하여 그 목을 조여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이다.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koreapower35&logNo=221238853077
첫댓글 인간이 700만년 전 인간이 인간의 유전자와 99%같다는 침펜지로 돌아가 암수로 구별 먹고 그리고 육접하며 번식만 하는 동물이 아닌 것이라면 그리고 조선의 송자라 일컫는 송시열의 “양심자 인생지 기초야(良心者 人生之 基礎也)”로 양심 가진 인간으로서 생각이 멈춘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고 양심이란게 시대나 나라를 따라 그리고 고향을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것울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생사람을 헌법을 무시하고 엉터리 헌재 재판으로 감옥에 5년간 쳐박아버리는 무지막지한 사람을 "한국의 쳐칠났네" 하며 좋아 정신을 잃고 발광할 수는 없는 것이었었다라고 반성을 하는 인간이라면 윤통의 통치행위를 고치게 하던가 멈추게 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