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주의와 육체주의 ................................. 마광수
『맹자』에 보면 인간의 본성 문제에 관한 고자(告子)와의 논쟁이 실려 있다. 고자가 ‘식색성야(食色性也)’라고 하여 식욕과 성욕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 데 대하여, 맹자는 ‘군자소성 인의예지근어심(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이라고 하여 인, 의, 예, 지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고자는 ‘생지위성(生之謂性)’이라고 말하여 타고난 본능이 바로 본성이라고 주장하고 ‘(성무선무불선론性無善無不善論)’을 주장한다. 성(性)이란 선(善)도 아니고 불선(不善〔惡〕)도 아니라는 얘기다. 즉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은 모두 정신적 판단에서 나오는 상대적인 가치이므로, 인간의 본성이 선하냐 악하냐 하고 논쟁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고자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맹자는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원래 선하다는 성선(性善說)을 펼친다. 즉, 인간은 누구나 측은해하는 마음, 수치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시비를 가릴 줄 아는 마음,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본성이 착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자와 맹자의 인간관을 각각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고자는 일종의 ‘육체주의’ 또는 ‘본능주의’를 주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맹자는 ‘정신주의’를 주장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는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할 때가 있는데, 고자로서는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본 셈이고 맹자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본 셈이다. 물론 육체와 정신이 아울러 서로를 지배한다고 보는 절충설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러한 견해는 너무 흐리멍덩하여 적당주의적 생활태도를 낳기 쉬우므로, 우리는 정신주의와 육체주의 중의 하나를 택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정직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고자와 맹자 중 어느 쪽인가 하면 역시 고자 쪽이다. 특히 고자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보았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 같이 식욕과 성욕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고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조한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점점 좋아지는 역사’가 아니라 ‘점점 나빠지는 역사’였다고 생각하게 되는 수가 많은데, 인류의 비극은 모두 다 정신주의적 생활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소위 자연을 정복한다고 하여 생태계의 질서를 허물어뜨린 것은 모두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고, 그 우월성은 인간의 정신 (또는 이성)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오만한 태도에서 나왔다. 수많은 종교전쟁, 중세기 암흑시대의 비극, 이데올로기간의 피나는 싸움에서 비롯된 끔찍한 희생 등이 모두 다 정신주의에 기인한다.
요즘도 우리들은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무언가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곧 정신적 업적에 의한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명예욕이야말로 식욕과 성욕보다 더 추악하고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실질적인 인생관, 육체적 본성을 은폐시키지 않는 솔직한 생활태도가 아쉽다.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