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람
정태익
바람은 늘 이야기를 품고 다닌다. 선거바람, 신바람, 치마바람,
춤바람, 늦바람, 봄바람, 가을바람, 강한 바람, 약한 바람....들. 종류
도 많다. 그 중에서도 계절바람은 색이 있다. 나는 지금 그 알록
달록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바람하나씩을 불러서 사연을 들
으려 한다.
봄바람은 연록색 이야기를 할 것 같다. 겨울내내 침묵하다 기지
개를 켜면서 화사한 웃음을 머금고 종알거린다. 뽀루뚱하게 입을
내밀고 여린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멋나게 몸치장을
한 새내기모습을 한다. 봄바람은 이렇게 대지를 깨운다. 때로는
신경질난 듯 꽃샘바람으로 봄이야기에 취해있는 사람들에게 감기로
움추리게도 한다.
기상학적으로 보면 이동성 고기압에서부터 불어내는 기류의 흐름
을 말한다. 지형에 따라서는 다소 강한 바람이 불기도 하지만 평
지에서는 비교적 약한 바람이다. 이 바람을 타고 꽃과 풀들은 여
름을 채비한다.
여인들의 하늘 하늘한 옷가에 스미는 봄바람은 사랑을 실은 유람
선이다. 그래서 봄은 여인의 계절이라고 하나보다. 온통 봄바람에
취한 여인들의 가슴은 여러 가지 봄색깔로 물들어 있다. 이슬방울
먹고 사는 이름모를 꽃들이 누군가가 찾아 주기를 사모하는 마음으
로 수줍음을 머금고 기다리듯 봄바람이 불면 여인들의 가슴은 그리
움으로 가득해진다. 그러다 어느새 자신 만만한 녹색의 축제가 우
리 곁에 오면 그렇게 봄은 서서히 우리를 떠난다.
초여름은 계절의 여왕 5월과 함께 온다. 가는 곳마다 보이는 것
마다 신록이 가득하다. 초록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나무들
이 날마다 푸르러간다. 신록의 달콤한 내음을 실어오는 훈풍이 만
든 작품들이다. 아카시아 꽃들이 면사포처럼 빛을 발할 때 훈풍은
축포를 터뜨리듯 꽃잎들을 흔든다. 바람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향기, 향기들! 이렇게 여름바람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향기를
실어 나를땐 모두가 여름바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뿐인가 더위를
느껴 짜증날 때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세상에서 가장 큰 환영
을 받는 것 같다.
이런 바람은 공기를 여러 갈래로 운동을 시키면서 흘러간다. 공
기의 강제상승에 따라 생기는 태백산맥의 지형적인 바람을 녹색풍
이라고 한다. 봄과 가을에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발달하여 그 세력
의 일부가 우리 동해까지 확장하면 태백산맥에서 공기의 강제상승
이 생기고 평균 800m의 고원지대에서 다시 하강하는 기류를 말한
다. 녹색풍은 아주 건조하다. 그리고 공기가 100m하강할때마다
1.0c의 기온상승을 일으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바람은 추수
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때때로 들녁의 무법자
처럼 추수를 기다리는 벼이삭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가을바람은 금방 사랑고백을 받은 아가씨 얼굴처럼 온통 붉게 물
들어 있다. 그 정열이 남정네들 가슴에 사랑을 일으키나 보다. 우
주를 품은 눈망울들이 어느새 한 여인에게 집착하고 만다. 그리고
그 속에서 또다른 우주를 개척하는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사랑의
행진만큼이나 씩씩했다가도 바바리 깃을 세운채 뿜어대는 긴 담배
연기와 함께 사랑의 종말처럼 흐느적거리기도 한다. 따끔하게 후
려치는 바람을 맞으며 풀어 제져진 옷깃을 여밀 땐 사람들의 겨울
이야기는 시작된다.
겨울바람은 대륙성 고기압에서 시작한다. 시베리아 바이칼호에
서 형성되는 고기압이다. 이 고기압으로부터 발생하는 매섭고도
차가운 겨울 바람을 북서계절풍이라고 부른다.
겨울바람은 하얗다. 천사처럼 나풀거리며 내리는 눈바람을 보며
사람들은 하얀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하늘에서부터 리듬을 타고
춤을 추듯 내리는 눈바람이 앙상한 가지를 덮을 땐 나무들이 간지
러워 웃는 듯하다. 잠자려 하는 아이에게 포근한 이불을 덮어주면
키득거리며 웃는 아이를 닮았다. 이런 현상을 취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는 바람은 폭풍이나 태
풍이 아닐까 싶다. 바람의 속도가 13.9m/s이상이다. 그 위력은 풍
속과 정비례하지만 50m/s 이상일때는 도끼가 날아가서 나무에 박
는 현상까지 가능하다. 하기야 바람의 위력을 말한다면 회오리
바람에 비할 수 있을까. ‘토내이도’라고 부르는 이 바람은 일정한
범위내의 도시전체를 파괴시키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런 강풍들이
가져다주는 피해는 지형에 따라서 다르다. 해상을 항해하는 선박
은 운항 중지해야 한다. 미처 피하지 못한 선박들은 좌초되어서
사람의 목숨까지 잃는다. 농작물 피해도 엄청나다. 수확을 앞둔
논밭을 휩쓸고 갈 땐 농부들의 한숨소리와 근심이 하늘에 사무친
다. 이 바람들이 휘젖고 간 그 황폐함이란... 이런 바람들은 온통
검정색으로 세상을 칠해놓은 악의 신들의 입김같다. 그러나 이렇
게 막대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가져다주는 바람도 사람에게 이익
을 주는 부분은 있다.
바람을 이용해서 꽃씨들은 신혼여행을 한다. 돗배가 망망대해를
거닐 땐 바람의 고마움을 실감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풍속을 이용
하여 생산되는 전력은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중요한 것이
다. 한 여름에 땀흘리며 일하는 사람에겐 땀을 씻어주는 한줄기
바람으로 온 세상을 얻은 듯 다시 을 내지 않는가. 바람은 이렇
게 방향과 속도에 따라 그 이용가치가 매우 크다.
바람의 방향은 360도를 기준으로 22.5도마다 한 풍계를 설정하며
16방향으로 분류된다. 이것은 지상에서 지형과 고저기압의 배치에
의해 결정된다. 북반구에서는 공기가 흐르는 방향이 고도 3000m
이상에서 불 때 주로 서풍계통의 바람이 부는데 이 바람을 편서풍
이라고 한다.
이보다 더 높은 약 10,000m이상의 고공에서는 무섭고 강한 바람
이 분다. 풍속 60m/s이상의 강풍이 쉬지 않고 분다. 2차 세계대
전 당시 미조종사들이 10,000m 이상의 고공을 비행하다가 발견한
바람이다. 그후부터 이 바람을 제트기류하고 불렀다. 이렇게 발견
된 제트기류는 장마전선의 진폭, 한파와 기온범람의 시기, 고저기압
의 이동방향과 속도, 성쇠등 여러 가지 기상변화의 절대적인 단서
와 영향을 가져다 준다. 제트기류가 제공하는 자료로 인해 기상은
고도로 발전했고, 일기예보 적중률을 향상하는데 획기적인 기초를
마련하여 인간 생활향상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면 바람을 어떻게 생길까. 바람의 형성은 공기의 압력차와
기온차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공기의 압력차나 기온의 변화가
없으면 바람은 일어나지 않고 정지상태가 된다. 바람의 속도
0.2m/s 이하를 정은이라고 한다. 여러 명칭은 바람의 속도에 따라
정해진다.
바람은 사람이 감지하든 하지 못하든 늘 불고 있다. 자신에게
충실할뿐이다. 그런 바람을 나는 좋아한다. 세차게 소리를 낼땐
삶의 용기를 느끼게 한다. 살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나에게 맡겨
진 그 일을 즐기면서 나도 살아야 한다고 외치게 한다. 그래서 바
람이 불 때 나는 늘 글을 썼다. 편지도 쓰고, 낙서도 하고, 일기도
쓰고, 시를 토해내려고 애쓰기도 했다. 때로는 내 삶을 멍들게 하
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파괴시키는 듯한 그 강한 바람을 밤새도록
들으며 뜬 눈으로 보내기도 했다. 바람이 좋은 것은 내가 살아 있
다는 힘찬 외침이 있어서이다.
1999. 5집
첫댓글 바람이 불 때 나는 늘 글을 썼다. 편지도 쓰고, 낙서도 하고, 일기도 쓰고, 시를 토해내려고 애쓰기도 했다. 때로는 내 삶을 멍들게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파괴시키는 듯한 그 강한 바람을 밤새도록 들으며 뜬 눈으로 보내기도 했다. 바람이 좋은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힘찬 외침이 있어서이다.
바람은 사람이 감지하든 하지 못하든 늘 불고 있다. 자신에게
충실할뿐이다. 그런 바람을 나는 좋아한다. 세차게 소리를 낼땐
삶의 용기를 느끼게 한다. 살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나에게 맡겨
진 그 일을 즐기면서 나도 살아야 한다고 외치게 한다. 그래서 바
람이 불 때 나는 늘 글을 썼다. 편지도 쓰고, 낙서도 하고, 일기도
쓰고, 시를 토해내려고 애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