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초롱과 꿈을 찍는 사진관
호박꽃 초롱 / 강소천
호박꽃을 따서는
무얼 만드나.
무얼 만드나.
우리 애기 조그만
초롱 만들지.
초롱 만들지.
반딧불을 잡아선
무엇에 쓰나.
무엇에 쓰나.
우리 애기 초롱에
촛불 켜 주지.
촛불 켜 주지.
- 『호박꽃 초롱』 박문서관, 1941 (재미마주, 2015)
강소천의 첫 동시집에든 시 한 편이다. 강소천은 함경남도 고원 출신으로 1937년 영생고보를 졸업했다. 그 전해, 이 학교로 백석이 영어교사로 부임해 온다. 나이 차는 서너 살 밖에 안 났지만 이미 문인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던 백석은 문학에 빠진 강소천의 롤모델로 부족함이 없었겠다. 이후 백석은 서울을 거쳐 만주로 가고, 1941년 시집 원고를 쥐고 강소천은 만주로 향하고 백석을 그예 만났다. 백석은 강소천을 격려하며, 글의 서문 격인 「호박꽃 초롱」 서시를 쓴다.
(전략) 그리고 또
아늑하고 고요한 시골 거리에서 쟁글쟁글
햇볕만 바래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이러한 시인이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데
이러한 시인이 누군인 것을 세상은 몰라도 좋으나
그 이름이 강소천인 것을 송아지와 꿀벌은 알을 것이다
만주를 방문한 친구 허준을 위해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 사람”(「허준」,1940)이라며 인정스런 시를 썼던 백석의 마음을 한번 더 보는 듯 따사로운 정이 가득하다. ‘햇볕 바래기’를 좋아했던 것은 백석 본인이기도 하니 시를 통해 백석과 강소천이 저릿하게 이어지는 느낌이다.
시집 표지 그림은 백석의 또 한 명의 절친이었던 정현웅이 맡아 그렸고, 속지에 있는 강소천의 사진(초간본에 없다가 나중에 새로 들어간 걸로 보임)은 영생고보 시절 백석처럼 머리카락을 뒤로 한껏 젖힌 머리를 자랑하고 있다.
위의 「호박꽃 초롱」을 다시 보자. 짓궂은 아이에겐 호박꽃에 든 벌을 포획해서 빙빙 돌리기도 하고 내동댕이치기도 하면서 벌을 혼쭐내던 기억이 있겠지만, 벌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시인에게 호박꽃은 벌 대신 반딧불이를 잡아넣는 도구로 쓸모를 다하고 있다. 산과 들에 반딧불이가 떼 지어 무시로 다니던 시절이긴 하지만 실제 반딧불이가 갇혀서도 꽁무니에 불을 내어 호박꽃 초롱 역할을 순순히 할 거 같지는 않다. 동화적 상상력에 가까운 동심의 세계를 노래한 것이고 그 세계에서는 호박꽃도 반딧불이도 애기도 천진난만하게 어울리는 평등한 존재다. 애기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잃어가는 동심이 있는 줄 알기에, 세상 사람들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송아지와 꿀벌”만은 시인의 세계를 지지해줄 것이라고 백석이 응원을 보내는 것이다.
전쟁 이후, 백석은 북에 남았고, 청진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강소천은 1951년 흥남 철수 때 부모 형제를 두고 단신으로 월남한다. 이때 나이 37세니 북쪽에서도 가정을 이루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직접 말한 적이 없는 걸로 보인다. 반공주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데다 북쪽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이에 대한 언급이 어려웠을 걸로 짐작이 된다. 『강소천 평전』(2015)에 언급되어 있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전쟁 직후 간행된 강소천의 동화집 『꿈을 찍는 사진관』(김영주 그림) 전편에 북쪽에 대한 그리움이 유난하다.
“요행히 우리에겐 ‘꿈’이란 게 있습니다.
이미 저 세상에 가 버리고 없는 그리운 얼굴들도 꿈에서는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남북으로 갈리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사이라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꿈길에는 38선이 없습니다.
정말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러나 이 꿈이란 사람의 마음대로 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이 있어 꿈에 보려 애를 써도 뜻대로 잘 안 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잠깐 꿈을 꾸게 된다 해도, 그 꿈이 곧 깨면 한층 더 안타까운 것뿐입니다.
여기에 생각을 둔 나는, 이번에 꿈을 찍는 사진기를 하나 발명했습니다. 이는 결코 거리의 사진사들처럼 영업을 목적한 건 아닙니다.
내게는 안타깝게도 그리운 아기가 있습니다. 나는 그 아기의 사진까지를 송두리째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이 사진기를 만들게 된 게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꿈을 찍는 사진관』, 홍익사, 1954 (재미마주, 2015)
동화 내용은 판타지 요소가 다분하다. 북쪽에 남은 ‘순이’를 그리워하다가, 꿈을 찍는 사진관에서 순이와 함께 꿈 사진을 찍게 되고 그 사진을 간직해왔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노란 민들레꽃 카드’였다는 이야기다. 백석의 ‘나타샤’가 누군인지 수수께끼로 남겨져 있듯 강소천의 ‘순이’도 그런 느낌이다. ‘나타샤’가 연애 감정을 주는 뭇 인연의 대명사일 수 있듯이 ‘순이’도 북에 두고 온 모든 인연의 대명사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2018년 가을, 북으로 가고 남으로 오는 길이 열릴 거라는 기대감을 갖는 지금이다. 부지런히 오가다 보면 될 일은 더 잘 되고, 안 될 일도 될 것이다. 행여, 꿈을 찍는 사진기를 발견하는 게 더 낫다는 슬픈 동화로 귀착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끝으로 강소천의 「달리아」를 읽는다. 고개 든 달리아가 보고 싶다.
보슬비에 얼굴이 간지럽다고
우리 집 달리아 고개 숙였네
- 「달리아」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