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과 끝나는 시간을 묻는 강씨 아자씨.
출장 가기전 당신 차를 점검 한다며 내 차를 쓰자고 합니다.
내참, 하필 비오는 날 ....
궁시렁 거려야 뭐 합니까.본전도 못 찾는데.....
출장길 생명과 관계되는 차를 먼저 손 본다는게 도리어 고마운 일이지요.
마침 이모의 출근시간이라 동승을 청했더니 기꺼이 들어줍니다.
아침 오분은 낮의 한시간과 맞먹는 줄 아는데.....
저야 늘 웬수같은 조카인줄 알지요...ㅎㅎㅎ
이모 사무실 앞에서 내려 학교까지 걷습니다.
말바우 시장을 지나 20여분 ....오늘이 장날인가 ...비가 오지만 활기 넘치는 풍경입니다.
비오는날 참으로 오랫만에 걸어봅니다.
이마와 콧등엔 땀이 송송 맺히고 안경엔 성애가 끼어 뿌옇지만 그 기분이 싫지만은 않았지요.
유능한 교수님.... 1시간 빨리 끝내주시네요.
점심시간까지 2시간의 공백....
평소처럼 차가 있다면 학생식당에서 식사하고
차에서 음악 듣거나 도서관에서 도서 검색이나 하며 시간 보내겠지만
빗길에 식당 가는것도 도서관까지 걷는 것도 귀찮습니다.
어차피 식사도 해야 오후 세시간을 버티는데....
시간 보내기도 좋고 혼자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는 말바우 시장의 팥죽이 떠오릅니다.
건물에 덧이은 파란색 천막으로 들어서며 1천원짜리 팥죽을 주문합니다.
그럴싸한 좌석도 없습니다.
일행도 필요 없지요.
누군가 앉아있는 테이블의 빈 의자 차지하여 엉덩이를 걸쳐야만 하는 골목안 팥죽집....
직접 농사 지어 몇가지 팔러오신 할머니들
싱싱한 무공해 농산물을 사러오신 살뜰한 주부들
그틈에 비집고 앉아 팥죽을 먹으려니
천막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싱그럽고
여름날 더위 피하려 걸어 놓은 발사이로 넘어오는 바람소리
아주머니들의 웃음 담긴 수다,
주문받는 힘찬소리
팥죽 그릇을 넘나드는 수저소리, 젓가락소리
순박한 노인네들의 자식 이야기
천막밖의 흥정소리
이보다 더 감미롭고 아름다운 즉흥 교향곡이 또 있을까요?
건너편의 중년을 넘긴 아저씨는 이 빗속에 혼자서 산엘 다녀 오셨나 보네요.
괜히 말 걸어보고 싶은 맘을 꾸욱 눌러두고 그사람에 대해 상상을 합니다. ㅎㅎㅎ
그리고 이순간 같이 팥죽 먹고 싶은 좋은님들께 날리는 스팸성 문자.
게으름 부리며 팥죽을 비우고도 한참 시간이 남습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시장 구경에 나섭니다.
처음 눈에 들어오는건 싱싱하고 매끄러운 수세미들이네요.
늘 마른 기침에 시달리는 강씨 아저씨 때문에 날 좋은날 사려고 맘먹었던 거라서요.
비가 와서 일까요?
커다란것 여러개를 쌓아두고서 참으로 가격이 싸네요.
시간도 많겠다 더 좋은 수세미를 구경하러 다닙니다.
어쩜 여기저기 많이도 나왔네요.
도라지,배 ,생강도 둘러보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니 눈에 잡히는 수세미가 발길도 잡습니다.
작고,연하고,색깔고운 ...
다시 학교로 가야하는데,비는 좀처럼 멎지를 않는데 ,
하교때까지 욕심나는 수세미는 날 기다려줄것 같지않고....
걱정할때는 걱정 접어둘 심장이 하나 더 생기는 걸까요?
어느새 흥정을 하고 있습니다.
오천원이면 몇개 주실것이냐 물으니 대충 다른분들이 쌓아놓은 수만큼 주신다 합니다.
1만 오천원에 다가져가라 하시는데....저야 욕심나는 수세미지만 어림짐작으로 그가격이 못됩니다.
일만 이천원에 주실거냐 물으니
비도 오는데 집에서 빨리 팔고 가는게 좋다시며 선뜻 그러마시며 두봉지 가득 ...
욕심부려 샀지만 큰일 입니다.
이걸 학교까지 가져갈 수도 없는데.....덜컹 일부터 저질렀으니....
말바우 올때마다 주차하는 주차장 관리자분께 부탁하고서 다시 시장을 돕니다.
배,도라지,생강을 가져오신 할머니들께 다음장날을 예약합니다.
직접 농사 지으신 분들께서 가져오시니 약재로 쓰기엔 안심이지요.
아직도 1시간여가 남네요.
이젠 사람구경을 합니다.
바짓단은 무릎까지 젖어 발길이 무겁지만 시장구경 재미를 빼앗지 못하네요.
학교에 물 가져가는 아이를 위해 영지 버섯을 사고
버섯을 좋아하는 강씨아저씨를 위해 싸리버섯을 삽니다.
가을철에 말바우시장에 오면 가끔 이렇게 직접 채취해오신 야생 버섯을 구할 수 있는 행운도 생깁니다
호박도 한덩이, 즙용 더덕 몇뿌리, 우산도 없이 비닐을 쓰시고 장사중인 할머니께 풋고추도 샀지요.
콧노래 흥얼거리며 오후 수업 들으러 가는길 운동장의 잔디가 너무도 싱그럽습니다.
으흐흐 ....팥죽 먹으며 보낸 스팸성 문자에 답들이 홍수를 이루네요.
각기 다른 반응들.....압권은 ....꼬시지마. (이몹니다) 하교길 책임지라 할까봐 지레 .....ㅎㅎㅎ
바보, 이미 운전기사는 포섭해두었는데....
하교길
주차관리실 아저씨들께 드릴 상납용 옥수수를 사들고 수세미를 찾으러 갑니다.
주차장 한켠에 예쁘게 한자리 차지한 내 수세미들....
즙도 내고, 설탕에도 재우고.연한건 갈아서 딸멩이와 팩할 생각에 참으로 행복합니다.
비오는날의 두시간
가끔은 예상치 않는 부족함이 또 다른 기쁨을 선물 하네요.
아침에 차가 있었다면 맛보지 못했을 행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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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우 시장 소묘
까만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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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1
07.09.05 08:04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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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말바우~~~ 이름처럼 거친 듯, 그림 잘 보았습니다.
수세미 용도가 그리 다양한줄은 처음 알았네요. 그야말로 수세미나 하는줄 알았는데...^^ 서울에서 보지 못하는 풍경같으네요.
찾아볼수록 옛 어르신들 상식이 참으로 놀라운게 많더라구요.
말바우시장의 풍경이 그려지네요.
ㅎㅎㅎ 이쁜 감성!~~~~학기의 시작이군요~배움이 곧 행복입니다.~~
말바우 이름이 특이하여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시골의 장터처럼 포근 합니다.
행복과 기쁨이 안경알에 성애처럼 ^^* ....이번 학기가 마즈막 학기 맞나요~
이제 절반 왔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맞다면 다 끝났구요. ㅎㅎㅎ
알뜰살뜰함이 글 곳곳에 묻어나네요... 처음엔 웬수세미(3M수세미)... 글을 읽다보니 아~~하 수세미~~~ 열심히 사시는 모습 보기좋습니다...^^*
그게 아니라요 .때 놓치면 구하기 힘든거라서 어쩔 수 없이.....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