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카페라서 그럴까?
시는 무척이나 많이 뜨는데도 나한테는 때로는 이해가 안 된다.
오늘은 '내 마음의 숲'에 오른 어떤 시를 보았다.
알 수 없기에 아랫처럼 댓글 달았다가는 얼른 지웠다.
인연이 별로 없는 남의 글에 건방지게 댓글 다는 게 무척이나 꺼려진다.
다만... 하나의 글감이기에 여기에 옮긴다. 나중에 더 보완할 예정이다.
'샛소리 풀벌레 합창'
위 문구에서 '샛소리'가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한참이나 헤맸다.
국어사전을 펼치니 '새소리'로 설명하기는 하나.. 의문스럽다.
'샛소리'는 무슨 특별한 뜻을 지녔나 싶기도 하고..
아래 문구의 한자어..
나는 읽지도 못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보충설명이 있으면 싶다.
六根이 빛으로 바뀌면
六識은 광명속에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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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49년 1월 말 생이기에 2020년 9월인 현재 집나이는 일흔셋.
호적신고가 늦는 바람에 1956년 아홉 살부터 학교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껏 60여 년간 책을 읽고, 일기를 쓴다.
소위 책벌레, 글자벌레, 종이벌레인데도 때로는 남의 글을 읽으면서도 도대체 이해가 안 되어서 고개를 사뭇 흔든다.
위 경우에도 그렇다.
한자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전혀 짐작도 못한다.
이런 한자말을 많이 알아도 이게 내 삶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싶다.
고목이 되어서 나날이 허리가 활처럼 휘어져 굽고, 근육살이 빠지는 나한테는 그저 생활에 필요한 작은 것들이 훨씬 소중하다. 예로 든다면 과일나무, 꽃을 피우는 풀들이 훨씬 소중하며, 날마다 먹고 마시는 음식물과 물이 훨씬 실용가치가 있다.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쯤(초가을) 서해안 산골마을에 있는 내 집에서 생활하며, 텃밭을 둘러보고, 무거운 예초기를 등에 짊어지고서는 마을회관에 붙은 마을안길의 억새풀을 깎고, 선산에서 벌초할 궁량이나 댈 게다.
하지만 올해에는 '코로나-19'때문에 시골에 내려가지도 못했기에 산소 벌초행사에 참가하지 못하고는 서울 아파트 안에서만 머문다.
소위 '집콕, 방콕, 아파트콕'이나 하기에, 할 일이 없기에 개인 문학카페에 들락거리면서 남의 글이나 읽고, 이따금 나도 생활글(일기)을 쓴다. 컴퓨터 자판기를 누르면서 그냥 긁적거린다.
어제도 그랬다.
오늘도 그렇다.
지금도 그렇다.
이해가 안 되는 글에 대해서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기에.
도대체 무슨 뜻이여? 어떻게 읽어야 하는데?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기 쉬운 우리글로 올바르게 많이 쓰자'는 생각을 지닌 나.
우리말과 우리글을 더욱 다듬어서 세계어, 국제어로 자리매김하자고 말하는 나.
- 우리말과 글을 세계인한테 가르치면... 교사들이 무척이나 많이 필요로 할 터.. 말과 글을 해외로 수출해야 하고, 우리나라 교사들도 해외에 나가야 하고...
유식한 사람들은 우리말, 우리글보다는 외국말과 외국문자를 쓴다. 남이 알지 못하는 말과 글자를 써야만이 더 유식해 보이는 것일까?
아쉽게도 나한테는 유식한 말과 글은 죽은 송장(시체)일 뿐이다. 내가 읽지도 못하고, 읽었어도 뜻을 모르기에.
일흔세 살인 나는 어린아이라도 알아듣는 말, 그런 말을 쓰고 싶다.
어린아이가 말하는 뜻을 나는 알아듣고는 빙그레 웃는 그런 말을 서로 주고 받고 싶다.
현재 세계는 220여 국가가 있다. 세계 언어(말과 글)은 아마도 6,000개 쯤은 될 것이다.
소수민족이 쓰는 많은 언어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럴 게다. 남북한으로 갈린 지도 벌써 72년이 지났으니 남한/북한 간의 언어가 무척이나 달라졌을 게다.
일흔 세 살인 내가 지금껏 알았고, 또 현재 아는 단어/지식/정보 등은 얼마쯤일까? 세계 인구 78억 명이 쓰는 말 가운데 내가 아는 것은 과연 몇 개나 됄까?
나는 1949년 1월 생이다. 지금껏 내가 아는 우리말은 얼마쯤일까?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옛사람들이 썼던 말을 얼마쯤 알까?
2020년 9월인 현재에도 숱하게 많은 신생어(외래어 등)가 쏟아져 나온다. 이 가운데 내가 아는 단어, 용어, 술어등에 대해서 과연 몇 개나 제대로 알까?
전혀, 전혀이다.
정말로 말과 글의 홍수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게다. 익사 직전일 게다.
짧은 일생 가운데 지금껏 내가 알았던 것, 현재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얼마쯤일까?
내가 꼭 알아야 할 말과 글, 생활용어들은 얼마쯤일까?
나는 그냥 쉽고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고 싶다.
내 노후의 삶에서 필요한 말, 일상적인 생활에서 남과 이야기할 때 실용성 있는 그런 말과 글을 주고 받고 싶다. 글자를 전혀 모르는 어린아이, 글자를 읽지도 못하는 사람도 이해를 하고,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말을 하고 싶다. 어린아이라도 읽을 수 있는 말을 우리 한글로 쓰고 싶다.
하나의 예다.
2020년 현재 전 세계인은 78억 명.
이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물의 종류는 숫자로 얼마쯤일까?
나는 감히 말한다. 78억 개 쯤이라고.
이 가운데 자네는 과연 몇 종류의 음식물을 먹어 봤어?
대한민국 남한만 해도 숱한 동식물이 있다.
이 가운데 자네가 아는 식물 종류는 몇 개일까?
이 가운데 자네가 아는 동물 종류는 몇 개일까?
'그거 다 알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겠지?
나도 그래. 자네가 말하는 거 다 알 필요가 없어.
내 삶에는 가치가 없는 것들이니까.
그냥 쉽게, 편하게 살아가자고. 이해하기 쉽도록 말일세.
나도 成語를 나열한다.
아래 문구를 아는가?
무명유실 :
7자 :
'내 마음의 숲'에 수록 예정으로 전송된 어떤 시를 보았다.
아래 문구를 보고는 한참이나 헷갈렸다.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벌써 수해가 흘렀다'
국어대사전으로 '수해'를 확인하니 한자말 여러 개가 뜬다.
그런데도 모르겠다.
'수해'가 무슨 뜻일까?
혹시 '數+해(年, year)'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자인 '수(數)'와 우리말인 '해'로 합성한 '수해'라는 단어. 즉 '여러 해'일까 싶다.
만약에 '여러 해'의 뜻이라면 나는 이렇게 고치고 싶다.
'많은 해가 흘렀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라고.
1.
어제 오후에 가랑비가 조금씩 내리는데도 나는 우산을 들고는 송파구 삼전사거리를 지나 탄천1교를 건너서 강남구 대치동으로 나갔고, '대치교'를 지난 뒤에 양재천으로 내려섰고, 천변을 따라서 '양재6대교'까지 걸었다.
양재6교를 건넌 뒤 다시 양재천을 따라서 귀가했다.
삼전사거리 도로변에 위치한 꽃가에서 상추(쌈) 모종 세 개를 샀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아침부터 하늘이 맑다. 송파구 잠실4단지 아파트 벽 사이에 햇볕이 났다.
고층아파트 건물 위로는 푸른 하늘이 밝다. 싯퍼런 바다물인 양 하늘빛깔이 정말로 맑고 투명하다.
베란다에 나가서 어제 사 온 상추모종을 화분에 옮겨 심어야 했다.
비좁은 아파트 베란다 위에 화분 110개 쯤을 올려놨으니 작은 화분 한 개라도 추가로 올려놓기가 어렵다.
빈 화분이 하나 있기에 꽃삽으로 흙을 퍼내려고 하는데 이게 잘 안 된다. 죽은 식물의 뿌리가 흙속에 남아 있다는 증거. 힘들여서 뿌리를 캐서 보니... 세상에나 도라지같은 굵은 뿌리가 여러 개 달리고, 뇌두가 살아 있었다.
지금껏 흙속에 파묻혀 있기에 나는 화초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뇌두 부위를 잘라서 포기 나눈 뒤에 다시 흙속에 심었다.
나는 또 하나를 배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모든 진실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진실일 수도 있다'는 이치를 배운다.
내다버리려고 구석에 쳐박아 두었던 화분 두 개를 꺼내서 쌈 모종을 심었다.
화분 흙을 매만지면 당연히 흙과 자갈을 마구 흘릴 터. 세수대야에 화분을 담아서 흙을 조심스럽게 다뤘는데도 여전히 흙이 떨어졌다. 수도물로 세수대야를 깨끗이 닦아낸 뒤에 그 흙탕물은 화분에 조심스럽게 부어주었다.
나한테는 모든 물자가 다 소중하다.
나는 어쩌면 저장강박증에 걸린 환자일런지도 모른다.
하나의 예다.
어제 저녁무렵이다.
산책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았다.
길거리에 프랭카드를 설치했다가 철거한 현장에 하얀 줄이 조금 있었다. 철거현장을 말끔히 정리해야 하는데도 건성건성으로 정리한 탓일 게다. 짧은 비닐줄 몇 가닥을 주워서 화분이 든 비닐봉투 안에 넣고는 집에 돌아왔다.
수도가에서 폐비닐-줄을 씻어서 말렸다. 나중에 화분 속의 지주대를 묶는 데에 재사용하려고 한다.
이런 나를 보면 아내는 기겁을 하면서 지청구를 퍼붓는다.
'그런 거 왜 주워와요? 당신 나이를 생각해 봐요. 이제는 모우는 것보다는 내다버려야 할 때여요.'
어제 상추 모종을 심었던 작은 비닐봉지. 수돗물로 씻어서 물기를 말린 뒤에는 꽃가게한테 도로 반납해야겠다.
정말로 작은 모종그릇일지라도 혹시라도 꽃가게에서 식물 모종을 심는 때에 재활용했으면 싶다.
올해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가게(업소)에 사람의 출입이 줄어들었고, 대신 일회용 배달용품이 무척이나 많이 증가했다고 한다. 상품을 담아서 배달되었던 일회용 폐비닐, 플라스틱 그릇들이 넘쳐난다.
우리 집에서도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이 넘쳐난다. 나는 쓸 만한 것을 골라서 화분용 밑받침 그릇으로 활용한다.
이런 것도 내가 저장강박증에 걸렸다는 증거일 게다.
아무려면 어떠랴 싶다. 나는 모든 물자는 다 소중하다고 여긴다. 모든 물자는 끝까지 재활용해서.. 쓰레기 발생을 최소한으로 줄이자라는 생각을 지녔다.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들.
수거한 뒤에는 어디에다가 버릴 것인데?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대두된다.
쓰레기를 버릴 공간이 과연 남아 있는가?
비좁은 우리나라 땅에서는 쓰레기 보관장소가 별로 없을 게다.
몰래 몰래 내다버리는 지자체, 업체들도 문제이지만 본질은 소비자이다.
일회용품을 담는 용기를 덜 사용해야 되는데도... 이를 소비하는 국민을 먼저 탓해야 한다.
소비하는 자가 있으니 생산자, 판매자도 있을 터. 소비자가 소비하지 않으면 생산자와 판매자는 더 이상 일회용 용기를 생산하지도 팔지도 않을 게다. 그런데도 일반 소비자가 구입하기에 수익을 원하는 생산자와 판매자는며 일회용품을 더욱 다양하게, 대량으로 만들어서, 대량으로 판매할 게다.
그런데 그 쓰레기는 어디에 버릴 것인데?에 대해서는 이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을 게다.
물건 저장강박증에 걸린 나는 '덜 생산하고, 생산되었으면 끝까지 다 사용하고, 재사용하는 방법도 다양하게 모색해서 실천하자'라고 말하고 싶다.
본래의 목적 이외도 다른 용도로 재활용하자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지녔기에 내가 키우는 식물의 화분 받침대는 일회용 그릇이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