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사상가 연암 박지원(1737~1805)의 대표적 저서인 ‘열하일기’ 한글
필사본(활자로 찍지 않고 글로 베낀 것)이 처음으로 발굴됐다. 이 책은
명지대 한국학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김태준 동국대교수가 최
근 반년간 학술지 ‘민족문학사연구’(소명출판간)에 ‘열하일기 한글본
출현의 뜻’이라는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학계에 알려졌다.
‘열하긔권지이’(열하일기 두번째 책)라고 시작되는 이 책은 가로 18,
세로 27㎝ 크기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궁체로 썼다. 이 책은 그러나 저자
를 ‘내’가 아닌 ‘박연암’이라는 3인칭으로 기록했으며, 박지원보다
10년 뒤인 1790년, 건륭제의 팔순을 축하하기 위해 열하를 다녀온 사절단
의 여행기 역시 짧게 한글로 기록해 함께 붙여 놓았다는 게 특징이다. 한
글판 ‘연행록 선집’(연행록·청나라 수도 연경<연경·현재 북경> 등에
외교사절로 다녀온 일을 기록한 글)인 셈이다.
한글판 ‘열하일기’에는 박지원의 여행 일정을 적은 ‘일기’ 중 절반
정도만 기록됐으며, ‘허생전’의 모태가 되는 허생의 행적이나, 청나라
의 문물-제도 등에 대해 기록한 ‘열하일기’의 다른 내용(잡록)들은 빠
져 있다.
제작 시기에 대해 김교수는 “구개음화가 완전하지 않은 표현 방식이나,
등장 인물들의 직함 등을 미뤄볼 때 18세기 후반에 쓴 것으로 보인다”
고 추정했다.
김교수는 “당시 근대 문물의 창구 역할을 했던 청 왕조에 대한 관심과
늘어나는 한글 독자층의 요구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같은 한글본 ‘열하일
기 선집’이 간행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는 사대부나 궁중의 부녀
자들을 위해 기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동환 고려대교수(한국한문학)도 “국어문학에서 한글 사용이 확장돼 가
는 일면을 엿보게 하는 귀중한 문헌”이라고 평했다.
명지대 한국학연구소측은 “한글판 ‘열하일기’ 첫째 권도 조만간 찾아
연행록이 어떻게 한글 독자층에 수용됐는가를 살필 수 있기를 바란다”
고 밝혔다. (신형준기자 hjshin@chosun.com)
◆‘열하일기’는?
청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해 1780년 그의 피서지인 열하(熱河·
현재 중국 허베이성 청더·河北省 承德)를 다녀온 것을 기록한 여행기이
다. 열하에는 18세기 초 건립된 청나라 이궁(離宮=별궁)이 있었다. 박지
원(1737~1805)은 팔촌 형님이던 정사(正使) 박명원(1725~1790)을 수행하
는 자격으로 청으로 갔다.
1780년 6월, 압록강 국경을 건너 열하에 도착한 뒤 그 해 8월, 다시 연경
에 돌아오기까지, 여행 기록은 물론 청조 문인 명사들과의 친교나 청나라
의 문물 제도 등에 대한 느낌을 날짜 순으로 기록했다. 수레나 선박의 활
용과 벽돌의 사용, 지동설에 대한 중국 학자들과의 토론 등 청조의 번창
한 문화와 문물을 본받을 것(북학·北學)을 주장,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기념비적 저작중 하나로 꼽히며 파격적 문장으로 국문학적으로는 영-정조
(英-正祖) 연간 문체반정(文體反正)의 중요 저술로도 평가된다
카페 게시글
인문/사회- 상식
열하일기 '한글본' 찾았다
탄소같은남자
추천 0
조회 151
02.01.14 22:43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