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몸에 살이 불었다고 예전에 간 산을 다시 가자고 한다. 일하는 그가 일의 피로를 회복하는 방법이 침대에서 푹 쉬는 것인지 산에 가는 것인지 나는 권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말만 하고 강요할 순 없다. 비탈을 오르내리며 컸던 나는 평지에 서 있거나 걸으면 허리가 아팠다. 젊은 교사시절에는 잘 몰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방학 후 2학기 수업 때는 서 있기가 어렵기도 했다. 그래서 방학 끝무렵에 지리산에 다녀오고 휴일에도 산을 더 찾았는지 모른다. 바보는 나와 다르지만 나처럼 해보라고 하고 싶기도 하다. 가끔 산골과 평야에 사는 사람들은 생활습관이 다르다고 말하면서도 나의 생활방식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나마 산에 데리고 가달라 하니 좋다. 순천 조계산에 가 보리밥만 먹고 오자고 나서는데 어느 대간길을 걷는 날다람쥐 팀이 새벽에 길을 떠나 걷는 소식을 전해오는 모양이다. 우리의 출발이 늦은 나의 불만이 나오려하지만 참는다. 10시 반에 송광사 주차장에 닿는다. 차가 어느 곳이나 가득 차 있고 길에도 사람이 많다. 계곡의 물은 회색을 지나 암청색으로 흐른다. 공사중일 거라 한다. 성보박물관 앞을 지나는데 금용일섭 대불모의 기획전 안내가 보인다. 바보가 군말없이 따라온다. 등산화를 벗고 들어간다. 안내소 아래 꽂힌 책을 보며 살까 말까 망설인다. 무거우니 내려올 때 보자고 하지만 틀림없이 들르지 않을 것이다. 승려 예술가의 꼼꼼한 기록이 눈에 띈다. 대웅전 마당을 지나 범종루 통로를 지나며 월간 송광사를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 동안 공짜로 가져가기만 했는데 이제 법보시가 끝났나 보다. 아쉽지만 그 동안 고마웠다고 속으로 말한다. 보보담이 보여 손 때가 묻었는데 충주 편이다. 김병태 선생께 받은 남원편을 재미있게 보았는지라 그 책과 해인사 홍류동의 각자를 찍어 찬한 책을 든다. 바보는 무거운데 뭐하러 고르느냐 한다. 대숲과 채마밭을 지나 조계산 안내도 앞에 서니 11시 20분을 지난다.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찍으며 따라간다. 나뭇잎이 대부분 떨어졌는데 더러 끝에 초록과 빨강의 잎을 단 단풍이 서 있고 어떤 단풍은 잎째 말라붙어 있다. 40여분 걸어 작은 돌다리에서 계곡에 앉는다. 이제 가파라져질테니 힘을 내라 말하고 돌계단을 오른다. 송광굴목재까지 오르는 길에서 바보는 몇 번 뒤에서 숨을 고르는데 난 한참 가서야 기다려준다. 굴목재에도 사람들이 많다. 올라오는 이들도 있어 우린 바로 내려간다. 노랑 리본을 같이 단 단체 산객들이 이어진다. 올라오는 산객들이 많아 우리밥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보리밥집에 도착하니 1시가 못 되었다. 둘이 같이 와도 잘 왔다. 간식을 먹은 탓인지 오랜만에 아침을 먹은 탓인지 바보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보리밥을 하나만 주문하겠다 한다. 카드를 주며 알아서 하랬더니 보리밥 막걸리 파전을 각 한나씩 주문했단다. 사람들이 누룽지 끓는 가마솥에 서 있다. 밥을 먹은 바보도 누룽지를 뜨러 가더니 거기에 오래 서 있다 온다. 주인에게 평상에 앉은 저 남자를 아느냐 물었더니 안다고 했단다. 최석두씨를 나는 아는가? 그 분이 날 알까? 얼굴? 돌아오는 길은 걸음이 빠르다. 재부밀양산악회 회원들을 앞지르며 송광사로 오는데 오줌이 마려워 더 빨리 걷는다. 출입금지 폭포 위로 들어갔다 나온다. 송광사에는 들어가지 않고 우화각 앞의 돌다리만 찍고 차로 돌아오니 3시 10분을 지난다. 외서에서 낙안온천으로 가 목욕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