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여름에 인기를 얻은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의 남자 주인공은 능구렁이 담 넘어가 듯 은근 슬쩍 헤어진 연인의 집 앞에서 전화를 건다. 처음에 쌀쌀맞게 대하던 여성은 남자가 '처음엔 그냥 걸었어 / 비도 오고 해서 / 오랜만에 빗속을 걸으니 / 옛 생각도 나데'라고 이야기 하자 결국엔 만나러 나오겠다고 한다. 작전 성공이다.
남자와 여자의 전화 대화를 노래 가사로 풀어낸 '그냥 걸었어'는 김건모의 '핑계'로 시작된 레게 열풍의 중심에 선 대표곡 중 하나지만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벗님들 출신의 김준기는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레게음악에 관심을 가진 대한민국 1세대 레게 아티스트다. 그의 레게에 대한 열정이 '핑계'의 인기를 도화선으로 폭발한 것이다.
“40대가 만들고, 30대가 편곡하고, 20대가 불러서 공감의 폭이 넓었던 것이 인기의 요인이었다”라고 밝힌 임종환의 말대로 노래의 줄거리는 젊은 세대에겐 동변상련을, 기성세대에겐 옛 추억을 자극했다. 리듬은 생경했어도 그 내용은 바로 내 얘기였다.
새침했던 여자 목소리는 원래 성우가 녹음했지만 자연스럽지 못해서 폐기했고, 두 번째로 참여한 후배 가수 윤선정은 사투리가 심해서 스킵, 결국 임종환의 대학 후배의 목소리로 녹음한 버전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냥 걸었어'다. 그래서 어색하지만 임종환과 김준기는 이 풋풋함을 담고 싶었다. 전자음으로 채색된 레게리듬에 어울리는 아마추어리즘을 택한 것이다.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방송됐을 때 방송국 엔지니어가 노래와 전화 연결이 혼선된 줄 알고 소란을 피웠다는 '그냥 걸었어'는 길거리 노점상, 소위 길보드를 통해 인기를 예열했다.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는 1990년대 중반에 김건모의 '핑계',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룰라의 '100일째 만남'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레게 붐을 일군 중요 노래 중 하나다.
고등학생 때 중창단 멤버로 활동하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은 임종환은 1995년과 1996년에도 레게음반을 발표했지만 '그냥 걸었어' 만큼의 히트를 기록하지 못하자 2001년에 뉴질랜드로 건너가 한인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했다. 2008년에는 음악 스타일을 바꿔 '사랑이 간다'라는 트로트 노래를 공개했지만 또 다시 주목 받는데 실패했고, 46살이던 2010년에 직장암으로 사망했다.
https://youtu.be/pHeZNrThteY
live
https://youtu.be/qdLHwDKVPMw
이현우
https://youtu.be/RZw102aBz-k
첫댓글 영상과 해설 고맙습니다
좋아한 노래~추억이 새록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