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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불은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한다
2023년 가해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 12,49-5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는 ‘불’을 주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있다면 세 사람이 두 사람과 갈라지고 두 사람이 세 사람과 갈라지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불’은 성령님이고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세례를 받으실 때 내려주실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혼자 서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체제와 맞서는 새로운 체제를 갇춘 공동체가 형성될 것이란 뜻입니다.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는 사막의 교부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그리스도교 수도회의 창시자로 기억됩니다. 많은 은수자와 수도자들이 있었지만, 그가 수도회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이유는 자신의 카리스마를 실현할 수도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젊은 안토니오는 약 251년에 이집트에서 태어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일찍 부모를 여의었습니다. 어느 날 성당에 들어갔을 때 부자 청년의 복음이 낭독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당신을 따르려거든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알아듣고는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친척들과 문제가 없었을까요?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다 팔고 사막으로 들어갔고 20여 년을 수련한 후에 거기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교 은둔 수도회의 초창기 형태가 형성된 것입니다.
안토니오에게 떨어졌던 것은 성령의 불입니다. 이는 혼자만 타라는 말이 아니라 많은 이들과 함께 불타도록 만들라는 명령과 같았습니다. 불은 붙어 있는 것들을 함께 태우는 본성이 있습니다. 성령도 그러하십니다. 혼자만 타게 만드는 불은 없는 것입니다.
동방의 수도회 시초가 성 안토니오라면 서방은 성 베네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분은 연대상으로 2백 년 정도 차이가 납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청년 때 로마에서 교육받다 도시의 부도덕한 생활에 실망하여 수비아코라는 곳의 바위 동굴에서 약 3년 동안 은둔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것을 전파하기 위해 수도회를 창설하고 “일하고 기도하라”라는 깨달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체제는 진실보다 강합니다. 공동체는 진리보다 강합니다. 전에도 설명했듯이 바보 마을에서 해시계는 박물관의 전시품으로 전락할 뿐입니다. 진리도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의 공동체에게 합당합니다. 성령은 진리이십니다. 성령의 불이 붙으면 그 불을 유지하기 위해 그 진리에 합당한 체계가 필요합니다. 체제를 변혁시키지 않고서는 성령의 감도가 숨을 쉴 수 없고 실현될 수 없습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 pylori)라는 박테리아가 소화성 궤양과 위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발견은 의학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발견 중 하나였습니다. 이 발견은 궤양이 주로 스트레스, 매운 음식 또는 과도한 위산에 의해 발생한다는 오랜 믿음에 도전했습니다. 이 발견을 한 호주의 두 과학자인 배리 마샬과 로빈 워렌 박사는 수년 동안 의료계에서 거부당해왔습니다.
이에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마샬 박사는 헬리코박터균 배양액을 마셨습니다. 며칠 내에 그는 위염이 발생하여 박테리아가 위염을 유발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자체 실험은 위험했지만, 가설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제공했습니다. 그렇다고 경직화된 의학계가 바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연구하는 집단을 세우고 끊임없는 반복 실험과 결과를 제공하자 어쩔 수 없이 의학계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노력이 10년 뒤에 결실을 거둬 둘은 노벨 의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도 가난을 기본 정신으로 하는 수도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쫓겨났고 교회에서도 쫓겨났습니다. 나중에야 교황이 회개하여 탁발수도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자신만 타는 게 아니라 체제의 변화를 이끄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이전의 공동체와 분열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혼자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쇄신을 일으킬 생각을 해야 성령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나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성령을 어떻게 나의 공동체에 시스템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성령을 받기에 더 합당한 사람이 됩니다.
- 전삼용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