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진
IMAGINE
강 문 석
뉴욕의 도심공원 센트럴파크를 돌다가 길바닥에 박힌 모자이크 비석을 만났다.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그곳에서 부산을 떨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평범한 비석이었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마차와 인력거가 오가는 큰길에서 약간 비켜난 뒷길 삼거리였다. 도시의 도로바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맨홀뚜껑처럼 원형으로 만든 비석이지만 디자인은 세련미가 돋보였다. 비석 중앙에 박은 IMAGINE이란 일곱 글자에서 피아노 건반을 형상화한 막대가 36개나 사방으로 뻗고 있었다. 화려하지 않은 흰색계통 바탕에다 서체도 평범했지만 눈길을 끄는 마력이 있었다.
‘이매진’은 생전의 존 레넌이 만들어서 불러 크게 히트한 곡이다. 비틀즈의 멤버 존 레넌이 1971년 발표한 솔로 앨범에 수록되어 있으며 잔잔한 멜로디와 이상적인 사회관을 가사에 담아 전 세계 팬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7월, 미국 뉴스전문채널 CNN은 ‘이매진’ 작곡에 존 레논의 아내인 오노 요코 여사가 공동작가로 인정되었다는 전미음악발행사협회장의 발표를 보도했다. 오노 요코는 ‘이매진’의 전체적인 콘셉트와 가사에 영감을 주었기에 기록을 바로 잡아 그를 공동작가로 인정했던 것. 존 레넌은 ‘이매진’을 작업할 때 오노 요코의 책 ‘Grape Fruit’를 참고해서 만들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도 우리나라 가수 4명이 이 노래를 무대에서 합창했다. 존 레넌은 떠나고 없지만 오노 요코가 이곳 땅을 매입해서 33년 전 고인의 생일에 맞추어 센트럴파크에 비석을 설치했다. 1940년부터 딱 40년을 살고 간 존 레넌이지만 그는 지금도 세계인들 가슴 속에 이처럼 살아있는 것이다. 생전의 그는 비틀즈의 멤버이자 최고의 싱어 송 라이터로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수많은 음악인들의 영웅이자 대중의 슈퍼스타로 사랑받고 있다.
만약 그가 이 세상에 오지 않았다면 대중음악의 모습도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1960년대 그룹 비틀즈에서 선보인 음악과 1970년대 아내인 오노 요코와 함께 만든 음악은 다양한 스타일과 진중한 메시지를 통해 대중음악의 변화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그의 과감한 행보는 언제나 대중을 자극했다. 1970년 비틀즈 해체 후 존 레넌은 솔로 앨범을 제작하기 시작했지만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를 원망한 첫 곡 'Mother'만 빛을 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창작욕은 식을 줄 몰랐다.
1971년 9월 모습을 드러낸 그의 두 번째 앨범 ‘이매진’은 전작보다 더 대중적인 멜로디와 풍성한 사운드를 드러냈다. ‘이매진’은 강렬한 아우라를 발한 곡으로 다사다난한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반전과 평화를 대변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고전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 곡을 내세운 앨범 ‘이매진’이 영미를 비롯한 여러 나라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면서 그는 완벽하게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이매진’이 나올 무렵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 이들 부부는 사회정치적 이슈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1972년 6월에 공개된 이들 부부의 앨범 ‘Someti me in New York City’는 흥겨운 록 음악과 어우러진 직설적인 노랫말로 화제를 모았다. 여성 인권신장을 다룬 싱글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가 제목과 가사에 쓰인 비속어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앨범 전반에 스며든 사회적 평등의식은 부부의 시선과 입장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만큼 두 아티스트가 가진 사회운동가라는 타이틀은 공고했다. 그러한 연유로 그의 미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 정부는 눈엣가시인 그에게 영주권 발급을 불허했고 부부관계마저 삐거덕거렸다.
결국 존 레넌은 혼자 곡을 만들어 일사천리로 녹음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타이틀곡과 닉슨 정부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은 'Bring on the Lucie'를 통해 그는 자신이 여전히 세상을 직시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크게 흥행한 월남전을 다룬 영화 <굿모닝 베트남>에서도 주제곡 '이매진'이 1971년 크게 히트하면서 존 레넌은 솔로로서 최고의 인기를 얻게 된다. 그의 노래는 부드러우면서도 아련한 사랑의 곡들로 그 중에서도 특히 ‘Love’는 수많은 노래를 만들고 불러서 비틀즈 멤버들 중에선 폴 메카트니와 함께 돈도 많이 벌었다.
비틀즈 멤버 폴 메카트니가 작사 작곡한 ‘Yesterd ay’를 두고 존 레넌은 1980년 한 인터뷰에서 “예스터데이는 아름다운 곡이긴 하지만 가사가 말이 안 된다. 그녀가 떠나갔고 어제가 오늘이길 바라고 그러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노래는 좋지만 내가 쓴 곡이고 싶지는 않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Yesterday’는 1964년 만들었지만 피디와 마찰로 발표가 늦어졌던 곡이다. ‘이매진’ 비석을 발로 밟고 서서 존 레넌을 느끼는 감정도 손으로 동상을 어루만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38년 전 떠난 사람이지만 추모하는 팬들의 발길이 지금까지 이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세계 대중음악사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 존 레넌. 그를 기억하기 위한 이곳 ‘스트로베리 필드’는 부부가 함께 거주했던 다코타 아파트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위치란다. 이곳 이름도 생전의 존 레넌이 작곡한 ‘스트로베리 필드 포에버’에서 따다 붙였다지만 실제론 그의 어린 시절 놀이터였던 한 고아원의 이름이란다. 존 레넌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다보니 비석 옆에는 '이매진'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도 있었다. 옷이나 모자에 부착할 수 있도록 만든 기념품은 색깔별로 판매대에 진열되어 있었다. 기념품을 파는 하얀 꽁지머리 노인도 뮤지션 멤버처럼 느껴졌다.
때마침 세계 속의 한국이란 자긍심을 느껴도 좋을 기쁜 소식이 있다. 며칠 후인 12월 6일부터 서울에서 존 레넌 전시회가 열리는 것이다. ‘이매진 존 레넌’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명곡 ‘이매진’ 작곡에 쓰였던 피아노를 비롯해 음악 그림 유품 사진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회다. 포스터엔 사랑과 평화의 전도사 존 레넌으로 시작하여 로큰롤 스타, 투쟁에 앞장서다 등 그에게 바치는 헌사로 가득하다. 우리에게 달달한 사랑 노래로 널리 알려졌지만 존 레넌은 사실 매우 투쟁적인 사회운동가였다. 노동계급 출신인 그는 'Working class hero', 'Power to the people' 등의 과격한 곡들로 계급혁명을 부르짖기도 했다.
특히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드높인 사건으로는 오노 요코와 함께 호텔 침대에 누워 베트남전 종전과 평화를 촉구한 'BED-IN' 침대시위가 유명하다. 그러나 백미는 그가 '이매진'을 작곡한 피아노다. '이매진'이 어떤 노래인가. 전설의 명곡들 중 가장 앞자리에 오른 대표곡이자 그의 삶과 사상 그리고 이상이 집약된 영혼의 분신과도 같은 곡이다. 그러한 피아노를 직접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가슴 뛰는 경험이 될 것이다. 여기에다 최고급 오디오 장비로 '이매진'을 감상하는 감상실도 마련했다니 서울 전시회가 기다려진다.
[글쓴이] 수필가 / 사진가 / 여행작가 / 비디오 아티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