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7일(주)
* 시작 기도
주님...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와 같고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과 같으며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와 같아서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잠 25:11-13).
오늘 주일입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말을 조심하여 경우에 합당한 말로 대하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 충성된 사자가 되어 나를 보내신 우리 주님께 얼음 냉수와 같이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종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공동체로 모여 함께 예배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은혜가 소낙비 같이 부어지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창세전 언약을 알고 주님의 뜻에 합당한 주의 자녀들이 되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옛 사람으로 행하려는 나의 의는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동행하는 순간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상 2:26-35
제목 :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28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그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으니 이는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이더라.
29 어떤 사람이 솔로몬 왕에게 아뢰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이르되 너는 가서 그를 치라.
30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그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아뢰어 이르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31 왕이 이르되 그의 말과 같이 하여 그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32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33 그들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의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집과 그의 왕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3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그를 쳐 죽이매 그가 광야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35 왕이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요압을 대신하여 군사령관으로 삼고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 나의 묵상
아도니야는 첫 번째 모반이 실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후에도 교묘한 궤계를 꾸며서 다시 왕권에 도전하려 한다.
하지만 솔로몬의 지혜와 왕의 명령으로 그는 브나야에 의해서 죽임당한다.
한편 솔로몬 왕은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고향 아나돗으로 갈 것을 명한다.
그 역시 요압과 함께 아도니야의 모반에 동조했지만 솔로몬은 그의 목숨을 살려준다.
그 이유는 아버지 다윗 앞에서 언약궤를 메었고 또한 아버지가 당하는 모든 환난에 그 역시 환난을 함께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왕의 명령으로 너를 죽이지 않겠다고 선포한다.
그런데 솔로몬이 아비아달의 직분을 파면한 일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증언한다.
(27절)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이러하다.
(삼상 3:12-14) 내가(여호와 하나님)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이면서도 제사를 하러 실로의 성소에 오는 백성들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자기들이 먼저 먹어버리는 악을 행하였다.
그뿐 아니라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도 동침하는 등 온갖 불법을 자행하였다.
그럼에도 엘리는 이러한 불법적인 사실을 듣고도 그 아들들을 나무라지 않은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기로 결정하신다(삼상 2:25).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런저런 사건들을 통하여 엘리의 가문을 정리해 나가신다.
먼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두 아들이 죽고(삼상 4:11), 아들들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언약궤를 블레셋에 빼앗겼다는 소식에 엘리 역시 놀라 자빠져서 목이 부러져 죽는다(삼상 4:18).
그 후에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면서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피신하여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도엑이 그 사실을 사울에게 알리면서 사울은 놉에 있는 제사장 85명과 함께 놉의 남녀와 어린 아이들 그리고 모든 짐승들까지 다 죽이는 피의 숙청을 한다.
그런 와중에 제사장 아히멜렉의 아들 하나가 이를 피하여 도망하여 엘리 가문의 계보를 근근이 잇는다.
그가 다윗 편에서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자로 서지만 결국 아도니야의 모반에 요압과 함께 동조하는 일로 솔로몬의 눈 밖에 난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진 모든 일은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예언한 말씀과 딱 맞아 떨어진다(삼상 2:27-36).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킬 것인데 그 사람을 위하여 주께서 ‘견고한 집’을 세우실 것이며 그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바든 자 앞에서 영원히 행할 것이라고 하신다.
(삼상 2:36)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여기서 말씀하신 견고한 집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지어주시겠다고 하신 집이며 그 집은 건물이 아니라 다윗을 통하여 날 씨(자손)을 뜻한다.
(삼하 7:11b-13)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성과 구속사적 의미를 가진다.
역사성의 의미로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지어주실 집이 다윗의 가문을 말하며 ‘네 씨’는 그의 아들 솔로몬을 말한다.
하지만 구속사적 의미로는 솔로몬을 넘어 다윗의 혈통을 통하여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롬 1:3-4)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따라서 제사장인 엘리의 가문을 파멸시키고 새로운 제사장을 세우신다.
그가 바로 아비아달 대신에 제사장이 되는 사독이다(본문 35절).
엘리와 아비아달은 아론의 네 아들 중 막내인 이다말의 후손이고, 사독은 아론의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의 후손이다.
아론의 첫째와 둘째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 드리는 불 곧 잘못된 분향사건으로 인하여 후손을 두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그래서 셋째 엘르아살이 전통적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가나안 정착 후 사사시대를 거치는 동안 엘르아살과 그의 아들 비느하스로 이어지는 대제사장의 후손이 단절되었다.
그리고 이다말의 후손들이 대제사장직을 수행한 것이다.
그러다가 다윗 시대에 이르러 엘르아살의 후손인 사독이 대제사장직을 다시 이어받은 것이다.
이로 인하여 혼란스러웠던 대제사장직의 가문이 사독 계열로 일원화가 되었다.
이와 같은 하나님 백성의 구속사에서 제사장직의 일원화는 영원히 갈리지 않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전히 성취되었다.
(히 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이렇게 다윗을 통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속사를 일컬어 ‘나단신탁’이라 한다.
나는 나단신탁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 과정도 알지 못하였다.
단지 예수 믿고 구원 얻어 천국에 가는 것이 능사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기에 예수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도 몰랐고, 복음이 무엇인지는 더더욱 알지 못하였다.
예수를 잘 믿으면 이 땅에서 형통의 복을 받고 후에는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그냥 두지 않으셨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며 목회를 하던 것이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분명히 알려주기 위해서 공의의 심판을 내리셨다.
그 심판이 바로 ‘나의 목회’를 그만 두게 하시는 것이었다.
그 심판으로 나는 더 이상 목회를 지속할 수 없어서 사임을 하였다.
무엇보다 그런 심판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내게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복음을 알게 하셨다.
그 복음을 통하여 이 땅에 사는 동안 날마다 주님과의 영적 교제를 이어나가게 하신 것이다.
복음은 그 자체가 생명이 아니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그 또한 또 하나의 야곱의 우물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 복음을 알고 날마다 말씀의 교제를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간다.
그 생명은 비록 육신은 이 땅에 있지만 현재로 누리는 영생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소유로 정하여 택한 이들은 어떠한 경우도 버리지 않으신다.
그것이 바로 창세전 언약이다.
이방인으로 상징되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외국에 나가 허랑방탕하여 어긋날 길을 갈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돌이키시고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
그 회개는 결코 아들 스스로 행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주신 마음이다.
그 마음을 받아 아버지께로 돌아온 그 둘째 아들을 아버지는 최고로 환대하며 맞아주신다.
내가 바로 이 둘째 아들이 아니던가?
주님의 뜻도 모르고 내 맘대로 살던 나를 주님께서는 복음의 길로 인도하시고 그 뜻을 알게 하셨다.
이제 우리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장사되어 영원한 생명을 현재로 누리는 자로 날마다 살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아비아달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시는 것으로 엘리 가문은 끝이 납니다.
하지만 그를 이어 제사장이 된 사독을 통하여 제사장 직분은 다시 이어지는데 그 가문이 바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견고한 집이며 충실한 제사장임을 압니다.
이제 그 충실한 제사장이요 더 이상 갈리지 않는 제사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온전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분 안에 생명이 있사오니 그 생명으로 날마다 살게 하소서.
나의 모든 것이 그 분의 것입니다.
나를 받으소서.
어떤 베트남 사람이 나에게, 사는 게 힘드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였지요.
그러자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저는 지금 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객기가 아니라 나의 소망입니다.
그 나라를 향한 나의 소망입니다.
이 땅에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빨리 그 나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주신 목숨이기에 그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주님이 주신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원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