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기록한 이스라엘의 히브리어는 고대 한국어라고 필자는 누누히 강조했다. 이전 글에서 몇가지 예를 들었지만, 그러한 고대의 언어가 현재에 오기까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무슨 의미인가? 지금 현대의 한국인이 고대 삼국 시대로 시간 여행을 하더라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람들과 일상 대화를 나눌 때 조금 불편하더라도, 대화가 통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어에 능통한 필자의 판단으로는, 성경의 언어가 지금의 한국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중동의 이스라엘 국가가 사용하는 현대 히브리어는,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 단어를 본 떠서 새롭게 만들었다고 한다. 근대 조선(朝鮮)이 해체되고 세계가 혼란한 그 때, 바로 20세기 초반 즈음에, 벤 예후다 라는 한 유대인이 성경의 히브리어 모든 단어를 조합해서 <발음>을 만들었고, 지금의 중동 팔레스타인 땅에 UN의 허가를 받고 1948년 5월에,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창설했고, 그럼으로써 유대인의 2천년간의 방황의 역사인 디아스포라가 끝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의 역사라고 한다. 아니 이스라엘의 역사라고 한다. 이런 코메디가 없다. 세계 역사 속의 이런 코메디는 이후의 역사에도 없을 것으로 본다.
벤 예후다, 그가 옛 히브리어를 연구해서 만들었고 지금 이스라엘 국가의 공용어로서 사용하는 현대 히브리어로 인해서, 애꿉게 진실이 외면되고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 사람들이다. 바로 한국 사람들이 히브리(시리아)어를 아직까지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이스라엘 나라의 사람들이 히브리어 라고 지칭된 그것을 사용하고 있기에, 한국어는 그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한국어는 우랄 알타이어...... 퉁구스 계통...... 일절(一切)하고, 이번 글에서는 <말과 말씀>에 대한 주제로 하여 훈민정음에 나타난 중국(中國)이 어느 나라인지에 대한 생각을 독자(讀者)님들과 나누어 보자. 먼저 <말>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를 보자.
위의 히브리어는 <말>이라는 뜻의 명사형 히브리어다. 발음 또한 <말>로써 한국말과 동일하게 소리를 낸다. 이것을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히브리어는 <밀>이라고 발음한다. 어째서 이것이 <밀>로 발음이 되는가? 확실히 이것은 <말>이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간단하게 예를들면, 이것의 동사형 <말하다>의 뜻의 동사형이 <마래> 라고 <아> 발음을 내는데, 이것은 너무나 확실하여, 현대 히브리어 조차 발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라는 명사형 단어의 현대 히브리어는 <밀>로 발음한다. 조작된 발음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이 글자는 명사형으로 복수(複數)형은 어떻게 쓰고 발음하는지 보자.
이것이 <말>이라는 명사의 복수형이다. 독자들도 보면 아시겠지만, 뒤에 <점>과 <미음>처럼 생긴 네모가 붙었다. 이것을 히브리어는 어떻게 발음하는가? 바로 <말쌈> 또는 <말씀>이다. 현대 히브리어는 <밀흠>과 <밀큼>의 중간 발음인 <밀씀>으로 발음한다.
필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이렇게 히브리어를 예를 들고 있는가? 히브리어의 복수형은 뒤에 <점>과 <미음>처럼 생긴 글자를 붙여서 만든다는 것이고, 이것은 전체 히브리어가 동일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즉, 고대 한국어가 바로 히브리어와 동일한 것이기에, 현재에 왜곡으로 인해서 뜻이 변한 것과 달리, 옛날의 당시의 한국어로 <말>의 복수형이 바로 <말씀>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그렇다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훈민정음 해례에 나타난 표현을 통해 그것의 기록을 어떻게 잘못 해석했고, 그로 인해서 역사가 전체적으로 완전 180도 반대의 의미로 나타나게 된 그것을 살펴 보자.
이것은 필자가 훈민정음 서문의 시작부 만을 발췌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어학회에서 발행한 훈민정음을 복사해 온 것이다. 그 해석을 보자. 앞에 (우리) 라고 가로를 치고 의역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설명하기를, <말쌈>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말 즉, 조선의 말을 높이고 존대하기 위해서 <말>을 <말쌈>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단어의 의미와 문장의 뜻은 180도 완전히 왜곡시키고 이를 좀더 완고히 이해시키고자 <조선을 높이고 존대하기 위해>라는 떡고물 하나 주는 격인 것이다. 그리고 아래 쪽에는 분명히 <문자>라고 기록되는 데도 불구하고, 문자를 쓰지 않고 번역하기를, <한자와는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해석하길, <우리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번역하는 것이다. 즉, 그대로 읽는다면, 어린 아이라도 알 수 있는 의미를 억지로 (우리) 또는 (한자)라는 단어로 추가하고 교체하면서 그 훈민정음 서문의 내용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의 처음 부분을 돌아가보자. <말>이라는 단어의 복수형이 <말쌈>이다. 히브리어가 한국어 이므로 당연히 세종대왕 당시에 그 때도 그러했다는 것이다. 즉, 위의 구절은 <나라의 말들이 중국과 다르다>라고 그대로 읽고 이해해야 정확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필자가 나라와 중국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의 글를 따로 올리겠지만, 위 문장은 있는 그대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독자의 이해를 위해 좀더 길게 표현하면, 조선 세계에는, 즉, 조선이라는 온 세상에는, 나라의 말들(언어들, 단수가 아닌 복수)이 많다. 그 말들(말씀)이 중국과 다르고 문자가 서로 달라 통하지 않는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즉, <나라의 많은 말들이 세종대왕께서 통치하시는 중국과 다르고 문자가 통하지 않는다> 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세종대왕께서 옛 소리 글자인 히브리(시리아)어를 개량해서 한글을 만들었고 이것을 온 세상, 즉 조선 세계에 반포해서, 온 나라의 많은 소리들을 모두 표현할 수 있게 함으로 해서 백성들의 고충을 덜게 해 주려고 하신 뜻이 바로 훈민정음 반포의 목적이라는 것을 나타낸 서문이라는 것이다.
<말>의 복수형이 <말쌈>이었고, 이것은 '말들', '언어들' 이라는 뜻이고, 이것을 그대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의 해석의 왜곡이 한국사 전체를 왜곡시키는데 일조하였고, 이런 종류의 왜곡된 해석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서 전체를 뒤바꿔 버렸다는 의미이다. 즉, 결론적으로 위의 서문에서 나타난 중국(中國)이 바로 세종대왕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였다는 뜻이고,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잘못 해석하는 국어학자들에 덧붙혀서 <고대 한국은 늘 중국에 사대를 했던 나라였다>는 의미로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결과를 낸 것이다. 고대 문장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작은 잘못 또는 왜곡들이 모여서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내었고, 이것은 중국의 역사 전체가 뒤바뀌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경의 이스라엘 역사가 한국 역사라는 것이 진실이고, 그것을 통하여, 후손(後孫)들이 잘못 해석한 훈민정음의 서문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서문에 나오는 <나라의 언어들>이 바로 조선 세계의 온 세상의 언어들 나타내는 의미였고, 그 서문에 나오는 중국(中國)이 바로 세종대왕이 통치하시는 나라인 것으로 드러났다. 성경 역사가 한국사이므로, 성경 히브리어(시리아)어는 바로 고대 한국 언어라는 것을 한번 더 주장하며 이번 주제의 글을 마친다.
혹시 이전 필자의 관련 글을 읽지 않으셨다면 독자들의 쉬운 참조를 위해 링크를 걸어놓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의 기자방고전(其字倣古篆) http://blog.daum.net/biblekoreahistory/32 단군세기(檀君世紀)에 실린 가림토 38자 http://blog.daum.net/biblekoreahistory/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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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경으로 보는 한국 역사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밤이슬
첫댓글 새롭게 생각해 볼수 있는 글을 올려 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