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나무
함민복
붓 모양 수천개의 꽃눈
후닥닥
꽃 핀 자화상
그려놓을 수도 있으련만
붓에 향이 차오를 때까지
붓이 꽃으로 피어날 때까지
산수유
산림조합에서
산수유 한그루 사놓고
집에 먼저 와
한시간 두시간
나무를 기다린다
처음으로
난생처음으로
나무를 기다린다
점점
점 점 점 점
노란 노란
꽃
점점점
점 점 점 점 점
빨간 빨간 빨간
열매
노란색을 기다린다
빨간색을 기다린다
약속을 꼭 지킬 것 같은 나무를 기다린다
나무가 도착해 이곳에 심기면
나무가 외출한 나를 기다려주리라
나무처럼 서서
팔 들어 나무 흉내를 내보며
내 몸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나무를
내 시간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나무의 시간을
뭉글뭉글 피워본다
산수유
산수유
죽은 나무
베어버리려다 그냥 둔 죽은 나무
죽은 나무에는 죽음이 살아 있다
이파리도 꽃도 열매도 버리고
죽은 나무는 죽음 하나로 서 있다
죽음을 길러본다 죽음은 기를 수 없다
죽음을 만져본다 모든 죽음은 한 몸이다
죽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는다
죽음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비에 젖지 않는다
수분도 양분도 필요 없는 죽은 나무에
거미는 집을 짓고 새는 앉아 쉰다
서 있는 죽음의 누워 있는 그림자
죽은 나무가 사라지면 죽음도 사라진다
잠시 머물러 있음인
삶을 비춰주는 죽음 한그루
냄새 풍기지 않는 점잖은 삭음의 시간
산 나를 버리고 죽은 내가 되어본다
― 함민복 시집, 『물빛인쇄소』(창비 / 2026)
함민복
1988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우울씨의 일일』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 『내 눈에 무지개가 떴다』 등이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권태응문학상, 유심작품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