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의 입장
당신의 산책은 아직 소음입니다
나는 쉽게 소리를 허락하지 않아요
국경을 넘는 사람은 노래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걸음이 시작된 곳에 흰 돌을 놓아주세요
나는 내 몸의 폐허를 탐구하겠습니다
단조는 부재를 고백한 목소리입니다
미간에 잡힌 주름들은 무엇을 증명하는 걸까요
명찰 없는 이름들이 마디를 나눕니다
문신은 몸으로 부는 휘파람
내 노래는 국경의 검은 개들처럼 변방을 떠돕니다
검은 돌을 놓는 자리에 꽃이 피었어요
개들을 따라 걷는다고 아름다운 보행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꽃을 좋아한다고 꽃의 감정을 베낄 수 없듯
나는 함부로 음표의 감정을 다치게 하지 않습니다
희박한 상상력으로 유기된 개들의 울음을 달래는 건 무리인가 봅니다
여기 뾰족한 새들이 노을을 횡단하는 시간
고운 뺨이 후렴을 중얼거립니다
후렴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배려입니다
저녁이 끝나면 저 개들은 어둠으로 돌아갈까요
낯선 걸음을 경계하며 쉼표를 줍고 있어요
여음이 슬퍼 좋았던 날
나만 듣는 뜨거운 너울이 있습니다
여전히 당신의 아름다운 산책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도돌이표를 따라 개들을 몰고 있어요
개들의 콧방울에 물기가 맺힙니다
개들의 검은 혀가 당신의 손을 핥아줍니다
맴돌다 곡조마저 잃은 레치타티보
아직 당신의 대사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결
빈 도시락 통이 다리를 퉁퉁 칠 때면 무릎 근처에서 달그락 물결이 일었다
학교 마른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길은 흐르고 나는 고인다
이름 모를 꽃들이 내 이야기를 엿듣곤 했다
결이란 말은 혼자서도 혼자가 아닌 마음
늘 골목 끝에 서 있던 엄마가 없다
세상의 숨결이 겉잎을 버리는 시간
혼자라는 속잎이 있다
시시한 놀이가 거친 숨결을 달랜다
견뎌야 하는 목록이 늘어갈수록 숨은 여러 결로 쌓였고 숨을 내쉬기 힘든 무게가 있었다
소실된 곳에 가면 세상은
나를 설득하고 싶은 모양이다
떠난 마음들이 사는 도래지가 있다고,
노을의 손을 잡고 뛰었다
엄마의 살에서도 물결이 인다
살의 결이 말을 걸어올 때 길은 생이 아닌 다른 힘으로 걷게 된다
엄마와 살이 닿으면 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알았다
나는 혼자가 아닌 것 같아 응결된 마음이 눈물처럼 흘렀다
세상의 길이 붉게 일렁거렸다
빈 도시락 통이 달그락달그락 계속 흘러갔다
사다함
- 한 번밖에 생을 받지 않은 자
쉬는 날 놀이공원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난 광대가 되었습니다
물고기 보러 바다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난 어부가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 보러 납골당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난 시인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무너진 구중에 버리지 그랬어
그럼 난 폐족이 되었을텐데
나는 오래전에 버려진 아이입니다. 만년 전에는 땅을 기던 용족이었고, 천년 전에는 싱그러운 배추였으며, 백년 전에는 스콜을 뒤집어 쓴 비옷이었습니다. 십년 전에는 순장된 구겨진 옷이었고 오늘은 당신이 잃어버린 우산입니다.
미아는 잘 아는 사람에게서 시작되는 길입니다
어제의 장소에 우두커니 꽂힌 채 나는 봄이 되겠습니다. 혼자 뒤집힌 구두처럼 겨울로 와서 여름으로 갑니다. 적당한 곳에서 당신의 물색으로 이격된 갈림길이 되겠습니다.
뒤집힌 구두의 불편함이 당신을 자꾸 뒤돌아보게 합니다
내일도 몸입기를 시작할테죠
살짝 올라간 입꼬리로 한 문장이 됩니다
「 세계의 고아」 , 송용탁, 2024,3, 아시아
심훈문학상 수상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