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은 장편으로 잡았는데 제 필력이 따라줄런지.....여하튼 시작은 했습니다만.....^^*
ㅡ 프롤로그 ㅡ
호흡은 가빠지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마우스피스를 물고있는 이빨사이로 튀어나올 듯
대흉근으로 잘보호되어있는 가슴속에서 미친 듯이 춤을추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검은색바지 와 눈처럼 하얀 티셔츠를 입은 레프리 의 과장스런몸짓과
관중들의 엄청난 함성속에 간간히 섞여 나오는 목소리도
눈과 귀로는,보이고 들리는듯하지만
긴장으로 인한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데 모든 용량을 다 써버린듯한 뇌에선
전혀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땡~!
신기하다....어째서 저소리는 이렇게 선명하게도 잘 들릴까?
시작을 알리는 레프리의 몸짓과 고함소리는 보이지도 들리지도않는데
이상하게도 종소리는 기진맥진한 뇌속을 마구 헤집는 듯 크게들린다.
시합을 시작도 하기전에 벌써 호흡이 가빠온다....
상대를 잡을수있도록 손바닥과 손가락이 노출되게끔 설계된 오픈핑거글러브 는
손등부분에 패드를 대어 얼핏보면 선수보호를 위한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히려 공격자의 손을 보호하여 더 강한 타격을 할수있게 도와주는
이를테면 거의 흉기에 가깝다.....
순진한 관중들만이 그리고 일부 개념없는 정치가들만이 글러브를 인도주의적인측면에서
바라보아줄 뿐이다.....
하얀겨울바람에 몸을 맡기고 하늘에 둥실떠올라 한눈에 대지를 흝어보다가
먹이감을 발견하고 내려꽃히는 송골매처럼
공소리와 동시에 상대를 향해 달려들던 탄력이
갑자기 같은 전극을 만난자석인양 멈칫거린다.....
두손을 가볍게 말아서 반쯤쥔형태로 앞손인 왼손을 약간 길게 뻗고
오른손은 반정도 구부린상태로 상대를 향한다.
역시 앞발인 왼발은 언제라도 들어올릴수 있도록 힘을빼서 발뒤꿈치를 살짝들어올리고
시선은 상대의 눈 과 어깨 전체를 볼수있도록 한곳에 집중하지 않는다......
호흡은 짧으면서도 얕게 들여마시고 뱉으며 리듬을타고 턱은끌어당겨서 가슴에 뭍는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상대와 거리를 맞추어 나간다....
간합......
상대와의 가장적합한 타격거리를 말함이다....
이것을 모르면 절대로 상대와의 싸움에서 이길수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대를 내 간합에 두고 싸우면 이기는거고 내가 상대에게 말려들어
상대의 간합에서 시합을 하게되면
질질끌려만 다니다가 결국은 패하게 된다.
1:1 로 상대와 겨루는 시합중에서
탁구 나 배드민턴 같으면 지고나서 땀한번 쓱 닦고
“에이~ 졌네” 하고 경기장을 나서면 그만이지만
이른바 ‘투기’종목에 포함된 모든 운동시합에서는
그럴수가 없다....
심할경우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얼마전 충주세계무술축제에서
한 선수가 상대의 공격에 목숨을 잃은경우도 발생했다....
하물며
가장 제한된 룰 만을 가지고 경기하는 종합격투기 시합에서는
정말 목숨을 걸 각오를 해야만 링위에 오를수가 있는 것이다......
가장 안전한 길은 역시 상대를 이기는 것이고
그러자면 당연히 상대와의 간합을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조금씩 조여들어간다 싶은순간 영준의 내뱉는 호흡에 맞추어
상대의 오른발하이킥이 턱과목을 한꺼번에
덮을 수 있는 각도와 높이로 날카롭게 날아 들었다....
“후~욱”
내뱉던 숨을 조금더 길게 내쉬며 왼팔을 들어올려 가드를 했지만 묵직한 충격이
상체를 쩌르르 울리게 만든다....
연이어 들어오는 레프트 롱훅을 가볍게 위빙으로 머리위로 흘려보내고
영준이 상대의 허리어림을 단단하게 끌어안았다...
이마를 상대의 턱선에 붙이고 상체를 밀며서 두손으로 맞잡은 그립을 힘껏끌어당기자
왼손롱훅뒤에 오른손연타를 준비하였던 상대가 급격히 중심을 잃었고
그틈을 잃지 않고 상대의 다리까지 왼발로 뒤축에걸어넣어 무난히 매트위에 같이
뒤엉켜 쓰러졌다.....
교과서적인 테이크다운.......
‘그다음은?’
‘그다음은.........?’
‘뭘해야 하지....?’
‘내가 뭘 해야 하는거야 이제....?’
순식간에 수없이 많은 기술들이 영준의 머릿속을 뒤흔들었고
혹독한 훈련으로 얻어진 그의육체는
머릿속에서 계산을 채 마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상대의 옆으로 몸을 가로 눞혀서
사이드마운트 라는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 주었다.....
왼손을 상대목밑으로 넣어서 왼쪽겨드랑이 밑으로 파고든 오른손과 맞잡고
가슴을 밀착한채 오른쪽 다리를 구부려 무릎을 상대의 오른쪽골반에 붙이고
왼발을 뒤로뻗어 베이스를 잡아 체중을 온 가슴에 싣는다.....
그리곤 아주 잠깐의 소강상태....
뒤로 뻗었던 다리를 하늘로 들어올려 무릎으로 상대의 턱부위를 가격하려고
손의 그립을 푸는순간
상대가 새우처럼 몸을 굽히며 영준을 밀어내고 탈출을 시도했다.
무릎공격을 계속고집했다간 상대에게 탈출할 기회를 줄뿐......
즉시 다시 자세를 낮추고 상대를 따라붙으며 밀쳐내느라 뻗은 한쪽손을 잡아 몸에
바짝 당겨서 붙였다..
몸으로 팔을 누르며 밀어서 턱과 가로지르게 붙인후 한팔을 뒤로 돌릴수만 있으면
이긴다.....암트라이앵글...암트라이앵글...암트라이앵글...(팔로하는 삼각조르기:상대의 팔을이용하여 공간을 없애 목의 경동맥을 누르는 기술)
오직 그생각만이 뇌리를 가득채우는순간
이쪽의 기세를 읽은상대가 팔을빼려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서 완전히
힘만으로 팔을뽑아 내었다...
팔이 빠짐과 동시에 상대가 영준의 가슴과 어깨를 두팔로 밀면서 몸을 빼냈다.
몸을 두팔로 밀며 새우모양으로 몸을 굽혀서 탈출하는 ..흔히 ‘우빠’ 라고 불리는 기술이다.
힘과 탄력이 넘치는 상대다...
국내에 이종격투기 가 처음 소개된 후 바로 그해에 열린대회에서 였다면
이정도상태에서 끝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투기종목에 대한 적응력은 정말이지 놀라울만하다.
불과 몇 년사이에 개념조차 잡혀있지 않던 그라운드와 서브미션에 대한
이해와 대비가 철저해져서
이젠 웬만한 그라운드기술로는 도저히 승부를 결정지을수 없을만큼 모두의
기술이 평균적으로 발전했다.
힘과 탄력에 그라운드방어기술까지 골고루 갖춘 타격전문선수는
정말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갑자기 마주선 상대가 무척 크게 느껴졌다....
5분이라는 시간.....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링위에 서면 마치 수억겁처럼 길게느껴진다....
그 5분이라는 시간동안 머릿속에선 온갖경우의 수를 모두 연산하여야 하고
머리에서 연산이 채 끝나기도전에 날아드는 상대의 펀치와 킥 과 태클을
거듭되는 훈련으로 이미 인간한계를 초월한 반사신경 만으로 피하고 막고
방어해야만 한다...
보고난후 생각해서 피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뇌에서 전달된 명령체계 가 신경을통하여 근육에 전달되는 시간보다
훨씬빠른속도로 다가오는 펀치나 킥은 아쉽게도 그걸 불가능하게 만든다...
극도의 긴장을 유지한채 싸워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과다한 호흡으로 폐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다리는 마치 링바닥에 발뒤꿈치를 볼트 로 고정시켜놓은 듯 바닥에 붙어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문득...날아드는 펀치를 피하지말고 맞아서 매트위에 누워버리고 싶다는유혹이 강하게
머리를 채웠다.
그래.....누워버리면 끝나잖아...?
더 싸우다간 죽을것같애.....그냥 맞고 누워버릴까?
머릿속에선 강하게 그만 하자는 유혹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리지만
이 망할놈의 몸은 자신도모르게 상대를 향해 주먹을 뻗고 킥을 날린다.
승부를 결정지은건.........어이없게도
순전히 재수 였다.....!
약 4분여에 걸친공방에 체력이 저하되기 시작한 영준이
무리한 하이킥을시도하려다 무릎의 힘이 풀리며
중심을 잃어 주저앉을때
공교롭게도 상대가 백스핀펀치(몸을 한바퀴돌리며 등주먹으로 상대를 가격하는기술)를
시도하였고 펀치는 중심을 잃고 주저앉는 영준의 머리위를
터무니없이 빗나가 버렸다.
눈앞에 보이는 상대의 하반신을 보고 물러앉을 그래플러 는 이 세상에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너무도 당연히 영준은 상대의
두무릎을 가슴에 밀착시켜 끌어안으며
투렉테이크다운(두다리를 동시에잡아 넘어 뜨리는 기술)을 시도하였다.
당황한 상대가 넘어진상태에서 초반과 같은 우빠기술을 사용하려고
두팔을 영준의 몸에 밀착시키는 타이밍에 맞추어서
몸을 비틀어 밀 수 있는 면적을 최대한 줄이고 머리와 다리가 남,북으로 교차되는
이른바 69 자세를 만든후 상대를 체중으로 눌러 고정시켰다.
힐끗 세컨쪽을 쳐다보니 세컨을 보고있는 수용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50초 정도
남았음을 목소리와 제스츄어를 썩어서 알려준다....
서른하고도 두살......
격투가로서는 환갑,진갑 다 지난 나이......
한참 어린 막내동생같은 상대와 싸우면서 그들보다 우위에 있는건
그래도 한두살이라도 더 살아오면서 쌓인 세월의 연륜같은 것 때문인가?
체력,힘,기술, 무었하나라도 앞서는게 없지만
종종그들을 꺽을수 있는건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인생의 무게가
그들보다 조금더 무거운 탓일게다......
위기에몰려도 당황하지 않고 기회를 잡았을때 허둥거리지 않는 것은
실력이라기 보다는 세월이 가져다준 연륜이라는 선물이며
나이가 들수록 저하되는 체력의 반대급부 였다.....
결정적 기회를 잡은 영준은
그 짧은순간 심판의 기색을 살필정도로 여유를 잃지 않았고
그 여유는 무난하게도 상대의 팔을 뽑아들어올려서
마치 닭의 날개를 올려잡는 모양으로 팔을 등뒤로 꺽어서 들어올리는
기무라록을 성공시켰다.....
‘이겼다......!‘
선수의 어깨가 부스러지는 부상을 염려한 레프리 가 경기를 재빨리 종료시키며
영준을 뜯어말리고
바로 그 순간!
비로소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함성이 갑자기 귓가에서 폭탄이 터진 듯
들리기 시작했다.....
“와~”
“와~~~”
‘그래....지금 이순간....죽어도 좋아.......‘
그랬다......정말 죽을만큼 좋았다....
세컨을 봐주던 수용이 뛰어올라와서 영준의 허리아래를 감싸안아 힘껏 들어올렸다....
언제나 이기는건 기쁜일이다....
하물며 가장 원초적인 힘겨루기에서 이겼을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정도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이세상 그 어떤것도
순간적이나마 이렇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주지는 못할거라는걸 알기에....
이미 그맛에 중독되어 버린 이 영혼은
마치 아편쟁이처럼
힘들어 그만둬야해....이젠 그만해야해 를 외치면서도
끈임없이 자꾸만 링위로 몸을 밀어 넣는다.....
가을이면 홍엽으로 물들어
남단 최고의 절경으로 불리는 내장산자락에 위치한 정읍 이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가을단풍처럼 화사하면서도 다부진 성격의 은비는
요즘 들어 하루하루가 흥분의 연속이었다.
서른을 훌쩍넘긴 나이에 배우기 시작한 컴퓨터 는 또다른 세상을 만나고
접할 수 있는 새로운창구 였고 TV 나 신문과는 달리 스스로 참여할 수 있다는 자체가
하나하나 모두 신기하고 신나는일 투성이 였기에
요즘은 거의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일과중 가장 재미있는
시간으로 여겨졌다.
그에따라 오랫동안 함께 하며 손을 떠나지 않았던 뜨게바늘 이 한쪽구석에서
뽀얕게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는 것조차도 은비는 인식하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새로운 사람 들 을 만나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살면서 알지못했던
새로운세상 을 옅본다는건 은비처럼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
어쩌면 고립되었다고 볼수있을만큼 폐쇠된생활 이 당연시 여겨지는
절대 대다수의 한국여성들에겐 신선하다고 느껴질만큼 의 문화충격 이었고
이은비 라는 이름의 서른두살의 나이를 가진 그녀역시
이시대 가장 보편적인 그 범주를 넘어서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