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라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증거되어 있는 말씀은..
인간적, 세상적인 힘과 능력들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 인생들의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정말 성령님께서는 능히 행하게 하시고 누리게 하실 수 있는 분인 것임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권능으로 인해 스가랴 선지자 당시에 대적들의 온갖 방해와 현실적인 어려움들, 인간적인 연약함과 불신앙들 등으로 인해 중지된 성전 건축이 온전히 재건케 될 수 있었음을 스가랴와 에스라 등에서의 증거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 등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들을 덧입으면 구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자들에 의해 자신들이 궁지에 몰려 있고 상대적으로 인원들도 많지 않으며 세상적으로 가진 것들도 그리 크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자신들이 언제든 죽을 수도 있는 살벌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반대로 땅 끝까지 주님의 사명을 감당케 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실상 수많은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오늘날의 우리들에 이르기까지도 선한 영향력이 될 수 있게 된 것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마다 그러한 성령님의 충만함을 갈망하고 의지하는 것이고, 사실상 크고 작은 모든 일들에 있어서 날마다 순간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실제로 오늘날에도 그와 같이 성령님께 집중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되고, 그 자체로는 참으로 좋고 다행스러우며 은혜스러운 상황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러한 성령님의 존재와 역사와 실제들에 대해 많이 오해하고 있거나 어떤 면에서는 위험할 정도로 무지한 것도 보게 되는데..
예를 들면 하나님의 세계에 있어 성령님만 분리시키거나 시대적으로 한계를 걸면서 성령님만이 전부인 듯 여기거나, 또는 성령님의 위치와 역할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의 위치와 역할, 또한 구주 예수님의 위치와 역할과 혼동하거나 아예 삼위일체적 개념 자체를 간과하거나, 무엇보다 성령님의 역사에 있어 무조건적으로 구하고 맹목적으로 간구하기만 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 등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면들은 결코 작을 수 없는 실수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완전한 오해인 부분들이기도 한 것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그러한 성령님께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모두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고 나타내시며 생생히 누리게 하시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성령님께서는 단 하나, 단 한 번, 단 한 순간일지라도 그 성령님 단독이실 수는 없다는 것이고, 반드시 크고 작은 모든 일들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또한 동시에 구주 예수님과 함께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되시어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며..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에 있어서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자체부터가 그렇게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고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의미와 실체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성령님께서는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분이고, 실제로 말씀이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기록되어 지게 하신 직접적, 실질적인 힘이신 분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인생들이 알고 깨달으며 믿고 행하며 누리고 증거하는 등에 있어 현실적, 경험적인 힘이신 분인 것으로 그로 인한 실제와 누림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치열하고 절실하며 뜨거운 말씀의 열정과 생각 이상으로 깊이 직결되어 있는 것인데..
만일 반대로 그러한 말씀, 말씀의 신앙이 아닌 죄악과 불신앙의 사람이나 상황이라면 하늘의 힘과 권능의 은혜스럽고 강렬하며 복된 실제와 생생함들, 충만과 강렬함들 등이 아니라 오히려 탄식과 애통들로 함께 하시거나 심지어는 진노와 심판들의 실제와 경험들이 되게 하시는 분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한 온전한 실제와 누림들, 충만함과 불길 같은 역사들 등에 있어서 우선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단절케 되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 버린 것이고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 중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인도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는 자,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더 이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이 모든 우선과 전제, 근본과 시작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렇게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하더라도 믿음의 대선배들인 다윗, 솔로몬, 베드로, 다른 제자들 등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면서 얼마든지 마치 옛 사람과 같이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 등을 자신도 모르게 의지하고 우선하면서 방심하며 시험에 들고 버거워지며 걸려 넘어짐과 함께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미지근해지고 잠자며 병들고 죽은 듯한 신앙이 되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에 허덕이고 광야 40년과 같이 돌고 방황케 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그 누구라도, 진정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자라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 사는 한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날마다 순간마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일차적으로는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서 죄악들, 악한 세력들, 유혹들, 시험들, 문제들, 위기들 등과 싸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게다가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 있어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특히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제대로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인 것일 뿐 아니라 이차적으로 가면 갈수록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더 충만케 될 수 있으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더더욱 될 수 있는 열쇠이자 통로이며 관건이고 기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실제로 아래 본문 당시의 스가랴 선지자 때에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권능을 덧입음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성전 재건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야 말로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스가랴와 학개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들을 인간적, 현실적으로 여전히 힘들고 무거우며 곤란한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최우선으로 여기며 따랐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가랴4:6)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21일(토)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