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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가을스케치
이천구년 시월 삼십일, 영업점 월말은 목표실적을 챙기느라 항상 분주하지만 무르익은 가을 정취를 만끽코자
모두들 부지런히 업무를 마감하고 버스에 올랐다. 이번 원천동지점 1박2일 행선지는 원주와 영월. 은행현직에
머물며 마지막으로 치루는 가을행사이지만 여행길은 늘 설렘이 있어서인지 떠들썩한 직원들의 소란 속에서도
정겨움이 느껴지는데, 달리는 어둑한 차창 밖을 무심히 내다보다 이내 졸음 속에 묻혀 버린다...
어느새 버스는 중앙고속도로 신림IC를 지나 주천방향의 치악산공원 상원사 입구에 들어선다. 칠흑같이 어두운
비포장 산길을 따라 10여 분간 오르니 흘러가는 구름소리조차 들릴 것 같은 부지점장의 고요한 山家에 이른다.
(山家 :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929-3)
앞서 도착한 일행이 널찍한 잔디 한쪽에 장작불을 지피고 또 한쪽에선 고기를 굽고 있다. 모두들 잔디에 둘러
앉아 등심과 세발낙지에 가을전어까지 푸짐한 안주와 모처럼의 여유로움에 취해드는데, 자연 속 어둠에 묻혀
있는 서늘한 밤공기와 희미한 산자락 위로 치켜서있는 둥그런 달무리에 2009년의 가을 숲은 곱다랗게 물들어
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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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롯길
입동을 한주 남긴 시월의 마지막 날을 맞으며 신림면
국립공원 치악산 상원사로 오르는 길, 조그만 개울을
따라 좌측으로 오르니 휘어진 모퉁이 초입에 노랗고
빨간 가을 단풍잎 사이로 소롯길 카페가 보인다.
황토와 돌로 축대를 쌓고 벽을 올린 뒤 너와로 지붕을
얹은 강원도 시골집 풍경의 카페였다.
사람이 적게 다니는 작은 길(小路)이란 이름이 풍기는
느낌 그대로의 소박하고 아담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자연과 어우러진 시골집의 푸근함 배어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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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다란 나무 홀에는 화목난로가 놓여있고 오래된 피아노와 풍금이 자리하고 있었다. 카운터 한구석엔 70년대의
낮익어 보이는 LP레코드 도넛판 음반들이 멋스런 집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특별히 주문해 놓은 맑은 장국과 맛깔스런 시골반찬에 곁들어진 된장찌개 향이 전날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데
이곳 분위기의 맛이 더해져서인지 모두들 포만감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식사 후 발길을 돌리기 못내 아쉬워
커피한잔을 마시며, 푸근한 원두 향과 창밖 가을정취를 나누어 음미해본다...
▶ 소롯길 정문
▶ 소롯길 정원
▶ 오래된 피아노
▶ 멋진 조형물
(住所 :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905 ☎ : 033-763-4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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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반도지형
완연한 가을풍경을 따라 비운에 왕 단종의 흔적을 찾아 영월로 떠나는 가을스케치. 편하게 넘는단 뜻의 寧越은
그래서인지 산세가 완만했다. 먼저 가을 끝자락 영월 선암마을 한반도지형을 찾았다. 도로변 길게 늘어서 있는
자동차들 사이 주차를 하고 산길을 조금 걸어 전망대에 들어서니 한반도지형이 한눈에 굽어 들어온다.
강가에 띄워진 뗏목이 한가롭게 움직이고 있고 영월의 한반도지형이 서강의 지류인 평창강을 끼고 연두 빛깔로
휘감겨있다. 강줄기가 U자형으로 휘돌아 접하면서 마치 3면이 바다인 한반도와 여지없이 닮아 보인다.
▶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
▶ 원천동지점 직원들과 함께 (2009.10.30)
이곳 마을의 명칭은 신선바위를 뜻하는 선암(仙巖)마을이라 한다.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은 우연히 마을뒷산에
오른 주민들이 어느 지점에서 한반도를 닮은 지형을 발견하고는 입소문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하는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곳에선 남과 북이 구별되지 않는다.
生前 북녘고향을 그리워하시던 선친을 대신해 내가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 생각하니 잠시 착잡함이 머물다간다.
한반도지형이 있는 영월은 지형뿐만이 아니라 동강과 서강에 흐르는 맑은 물이 볼거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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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령포
이어 단종의 흔적을 찾아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소재해 있는 청령포로 향했다. 영월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으로
대표적인 강이 동강과 서강인데,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원주 치악산을 발원지로 하는 주천강과 오대산을
발원지로 하는 평창강에서 흘러들어온 서강 물줄기로 둘러싸여 청령포를 휘감아 돌며 잠시 가쁜 숨을 고르고
있다. 서쪽으로는 험준한 육육봉의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육지속의 섬과도 같아 보인다.
이곳은 자연이 빗어낸 최고의 풍광을 갖추고 있지만,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빠져나갈 수 없는 당시 유배지
로서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지형인 듯하다. 청령포는 단종의 아픔이 곳곳에 서려 있었다. 처소 옆 관음송은 그
나이가 단종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었고 처소 뒤 망향탑과 노산대는 단종이 올라서서 정순왕후를 그리워했었던
곳임을 짐작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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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포로 들어가는 나룻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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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製詩>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 땅 황량한 산 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 솔은 옛 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쳐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
단종은 아버지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승하하자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3년 만에 숙부인 수양
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청령포로 유배돼 2개월이 지나 여름 홍수로 청령포가 범람하자 영월읍내 관풍헌으로
옮겨져 그 해 초가을 17세 나이로 최후를 맞이하였다 하는데, 이곳 청령포에 잠시 머물었던 어린 단종의 심정이
'어제시'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가을하늘 무상한 흰 구름처럼 그저 애처롭기만 하다.
청령포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는데 그 소나무들이 한결같이 단종 御所를 향해 기울어 자란다고 한다.
외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아 오랜 세월 무성히 자란 애절하고 슬픈사연을 간직한 老松들이 아름다워 더욱더 슬퍼
보이는 청령포인듯 하여 이곳의 시린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간직해야 할 것 같다...
▶ 청령포 송림
▶ 관음송
▶ 어소를 향한 소나무
▶ 망향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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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릉[莊陵]
청령포를 나와 강원도에 있는 유일한 왕의 무덤인 단종릉이 있는 장릉으로 향했다. 늦가을의 장릉은 산책하기
좋았다. 능으로 오르는 길 낙엽을 보며 5분여간 계단을 올라 단종릉에 이른다. 조선왕릉 앞에는 문무관 석상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장릉에는 문관 석상만 있을 뿐 무관석상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산언덕에 위치한 탓도 있지만 다른 왕릉에 비해 규모가 작고 담장과 능 사이엔 호랑이와 양의 석상이 간소하게
세워져 있어 다소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장엄한 조선조 왕릉보다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단종이 폐위되고 세조 등극 후 중종까지 6대에 걸친 그 오랜 세월을 걸쳐 82세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역시 단종을
그리워했다는 정순왕후의 사릉(思陵)이 경기 남양주시 진건면에 있다하니 사후까지도 멀리 떨어져있어야 했던
王家의 운명이 너무나 가련해 보인다.
피곤이 몰려오는 귀행길 이였지만, 청명했던 가을여행을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덜고자 토종한우
가 유명하다는 주천면 다하누촌 매장의 등심과 신림면 황둔마을 쌀 찐빵을 넉넉히 챙겨 버스에 오른다. 2009년
원천동지점 추계행사는 직원들 모두 무사히 알찬 가을여행 추억을 함께 만들었기에 明年 퇴임 후에도 오래도록
기억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 영월의 장릉내 단종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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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莊陵 안내석 내용
영월 장릉은 조선왕조 제 6대 임금 단종대왕의 능이다. 세조 2년(1456년) 6월 집현전 학사 성삼문, 박팽년 등이
상왕복위사건으로 참형을 당했으며 다음해 6월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어
2개월 남짓 기거하시던 중 홍수로 인하여 관풍헌으로 옮기셨다.
세조3년 여섯째 삼촌 금성대군의 단종복위 계책이 발각되자 노산군은 폐서인이 되었고, 그해 10월 24일 사약을
받고 관풍헌에서 사사 되었는데 그때 춘추 17세였다. 단종의 유해가 동강에 흘렀는데 영월 호장 엄홍도가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 라는 충정으로 야밤에 시신을 수습하여 자신의 선산인 지금의 장릉에
밀장하고 잠적해 버렸다. 그후 중종 11년 (1516년) 노산묘를 찾으라는 왕명이 있었고, 중종 36년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의 현몽(賢夢)에 따라 노산묘를 찾고 수축봉제 하였다.
숙종 24년 (1698년)에 추복하여 묘호를 단종으로 하고, 능호를 장릉으로 격상시켜 부르게 하였다. 단종이 승하
하신지 241년 만에 왕실의 정례를 되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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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명이 오랫만에 들어왔네,. 어젯밤 꿈에 주원이하고 택상이가 보이더만 오늘 아침엔 널 마주하네.
깔끔하게 정리 된 여행안내서를 보는 것 같다만 서두의 한줄 글에 마음이 확 꽂히네...기명에게 언젠간 하고픈 말이 있었는데..곱게도 늙어가지만 곧게도 늙어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친구라고 말하고 싶었다..글 잘 읽고 간다
즐거운 여행 했구만 ! 근데 지점장 산가(山家)는 없어 ? ㅎㅎ
영월쪽에 참 좋은 풍경의 장소가 많더라 좋은 구경 다시했네~
기명아, 지난 여름 그 곳 성남리에 주말에만 거주하시는 분댁에 초대 받아 갔을 때에 그 소롯길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바로 그 집이네 산세도 좋고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모든 상념 다 떠내려 가는 듯 하던 그 곳 또 한 번 가 볼 기회가 있을런지...우리나라에 참 가볼만한 좋은 곳이 도처에 있는 듯하다.
기가막힌 여행 안내서이다. 감히... 여행작가 장기명으로 명한노라...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