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영화를 보러 가는 건 ‘어떤 기대’를 동반한다. 극장 매표구에 7천원을 들이밀면서 “버리는 셈치지” 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극장을 나오면서 “재미있군”, “잘 만든 영화네”라는 뭉뚱그린 만족감, 그 이상의 ‘무엇’을 기대한다. 한 배우의 미간에 팬 깊은 주름이나 심장을 파고 드는 목소리, 표정보다 더 쓸쓸해보이는 걸음걸이를 마음속 액자에 담아오기를 바라게 된 것이다. 최근 <파이란>이 그랬고 <친구>가 그랬다. 방파제에서 속수무책으로 흐느끼는 최민식과 마약에 찌들어 광기어린 눈알을 굴리던 유오성은 결코 잊기 힘든 연기로 관객의 가슴속에 음양 깊은 부조를 새겨놓았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주로 언급돼온 것은 제작시스템의 합리화나 재능있는 감독의 증가였다. 그러나 이제 배우를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좋은 각본과 탄탄한 연출력, 그리고 좋은 연기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영화의 성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최근 들어 스크린에서 만나는 몇몇 배우들은 연기의 힘이 한 영화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최민식 없는 <해피엔드> <파이란>이나 설경구 없는 <박하사탕>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상상할 수 있을까. 송강호가 아니라면 우리는 <반칙왕>이나 <공동경비구역 JSA>에 그토록 열광할 수 있었을까. 이들은 관객에게 ‘배우’를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스타’가 아닌 ‘배우’를 만나는 즐거움은 진기한 경험이다.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친구>로 이 대열에 동참한 유오성. 주위의 누군가 남자 소개시켜주겠다며 이들의 증명사진을 들이민다면 많은 여성들은 성격은 좋은지, 능력은 있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포스터에 찍힌 이들의 얼굴은 관객을 설레게 만든다. 길 가다가 만나면 돌아볼 일 없는 이 평범한 얼굴들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뒤흔들어놓을지 예측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로 인해서 관객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행복하게 체감한다.
최민식/ 신들린 몰입, 연기를 뽑는다
<파이란>을 보면서 한 가지 발견을 하게 된다. 뒤통수도 표정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강재(최민식)가 파이란(장백지)의 썰렁한 장례식장에서 두손을 뒤로 빼고 널브러져 앉아 있는 그 평범한 앉음새는 백마디 대사보다 더 쓸쓸하고 허허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최민식은 강재를 연기한 게 아니었다. 그냥 강재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최민식은 늘 그랬다. <해피엔드>의 마지막 장면에서 낮잠에서 깨어나 알 수 없는 곳을 멍하니 응시하던 서민기 역시 배우의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는 휑하니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한 30대 홀아비를 보았을 뿐이다. 이런 최민식을 두고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은 “눈가의 주름조차 연기의 디테일이 되는 배우”라고 했고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은 “움직이지 않는 장면도 내용을 이어가는 배우”라고 말했다. 그의 연기력은 배우의 감정선이 섬세하게 드러나는 캐릭터 중심의 영화에서만 빛을 발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장르영화이자 플롯 중심의 영화였던 <쉬리>에서 관습적인 캐릭터인 인민군 박무영을 번민과 질투를 느끼는 한 인간으로 만든 것은 순전히 최민식의 몫이었다.
과격하게 “조국통일만세”를 외치는 인민군 병사와 헌책방에 쪼그리고 앉아 연애소설을 보며 훌쩍이는 소시민, 그리고 오락실의 잔돈이나 훔치는 ‘쌩양아치’라는 어마어마한 간극의 인물들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그는 달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기에 충분한 배우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은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음료수가 튀어나오듯 연기를 뽑아내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느리다. <파이란>을 찍을 때 ‘강재’로 살기 위해 감독에게 시간을 양해했던 최민식은 감독 표현에 의하면 “어느날부터 술자리에서 욕이 많아지더니, 어느날부터 머리를 감지 않더니, 어느날부터 트레이닝복을 입고 사무실을 어슬렁거리더니 정말 강재가 돼서 촬영장에 나타났다”. 그가 자신의 연기론을 펼 때 늘 이야기하는 ‘무당론’처럼 시나리오를 받아든 직후부터 그는 천천히 캐릭터의 영혼으로 들어가는 신내림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천재성만으로 배우 최민식을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올해로 그는 마흔줄에 들어섰다. 대학 시절부터 소극장에서 살다시피했고 졸업할 때 박종원 감독의 <구로아리랑>(1988)으로 스크린과 처음 조우했으니 그의 연기이력은 20년이 돼간다. 그러나 그가 빛을 본 건 불과 이태 전이다. <조용한 가족>(1998)과 <넘버.3>(1997)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때까지 그가 무명의 시절만 겪은 것은 아니다. 그는 가장 혹독한 부침의 세월을 겪은 배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1990년에 그는 이미 텔레비전 드라마 <야망의 세월>의 반항기 가득한 청년 ‘꾸숑’ 역으로 아침에 눈을 떠보니 “차인표 같은” 스타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후속 드라마의 연이은 실패로 그는 롤러코스터의 숨가쁜 내리막을 걸어야 했다. <서울의 달>(1994) 같은 작품을 만나기도 했지만 ‘스타’ 최민식의 내리막은 한참 더 길고 가팔랐다. 일주일에 엿새를 술로 보내던 이 시절, <서울에 달>에서 같이 공연했던 대학친구 한석규는 <은행나무 침대>와 <초록물고기>로 충무로의 별이 돼가고 있었다.
한석규의 제의로 합류한 <넘버.3>는 그에게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죄는 죄가 없고 죄지은 놈이 나쁜 놈이다’라는 해괴한 신조를 가진 깡패검사 마동팔 역은 비중이 높지 않은 조역이었지만 그는 충무로에 배우 최민식의 묵직한 존재감을 알리기에 충분한 호연을 했다. <조용한 가족>에서 맡은, 너덜너덜한 만화잡지나 끼고 살다가 쏟아지는 시체를 치우기 위해 열심히 삽질을 해대는 한심하고 측은한 삼촌 역 역시 그리 높은 비중의 배역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쉬리>의 박무영을 거머쥐게 됐다.그 자체로 연기가 돼버린 최씨 눈가의 주름에는 이처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오간 천국과 지옥의 기억들이 촘촘히 밴 것이다.
송강호/ 심각한 연기, 절제된 웃음
송강호(34)는 최민식과 비슷한 점이 많다. 영화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 대학로에서 이미 탄탄한 연기실력을 닦았다는 사실도 그렇고, <넘버.3> <조용한 가족>을 통해 최씨와 비슷한 시기에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는 것도 그렇다. <쉬리>에서 최민식이 인민군 역으로 ‘배우’ 자리를 굳혔듯 송강호는 <쉬리>의 기록을 깬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같은 ‘인민군’ 역을 통해 ‘배우’임을 입증했다. <…JSA>는 그가 <쉬리>에서 썩 좋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연기평을 만회하면서 자신이 ‘코미디’로 국한되지 않는 전천후 배우임을 입증한, 그 자신에게도 매우 뜻깊은 작품이다.
그러나 송씨 자신은 지겹더라도, 배우 송강호를 이야기할 때 탁월한 코믹배우로서의 그의 능력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한국에 송강호만큼 ‘웃기는’ 연기자가 있었던가? 많이 있었다. 웃음의 크기와 세기로만 따지만 개그맨 서세원과 남희석도 그에 못지않고 배우만 놓고 봐도 박중훈의 웃음 제조는 송강호에 못지않다. 그러나 연기가 진지해질수록 더 웃음을 참기 힘들고 웃음이 더 처절한 심각함을 불러오는 배우가 있었던가? 대충 아는 외국배우들을 떠올려도 여기서는 송강호 외에 그럴듯한 답안이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주제도, 내용도, 인물도 무겁기 짝이 없는 <…JSA>에서조차 웃음이 새어나오게 한 것은 송강호의 내공이다.
그는 너무 진지했다. 한국영화 사상 전례없는 유행어 “배, 배, 배신, 배반이야”, “너 00야? 나 00야” 등을 만들어냈던 <넘버.3>에서도 그는 진지하기만 했다. <반칙왕>(2000)에서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아버지한테 파리채로 먼지나게 맞기 직전까지 그는 얼마나 심각했는가. <…JSA>의 박찬욱 감독은 송강호에게 이런 평을 내렸다 “그는 출제 선생님이 기대한 정답 대신 이상하고 엉뚱한 답을 적는 학생과도 같다. 그런데 그게 정답보다 더 정답인 거다.” 연기가 ‘클래식’하기보다 ‘모던’하다고 했던 송강호 자신의 연기론과 일맥상통한다.
확실히 그는 인물 속으로 완전히 스며드는 최민식과 다르다. 그는 자신 안으로 인물을 빨아들인다. <넘버.3>의 조필이건, <반칙왕>의 이대호건, <…JSA>의 오경필이건, 그 안에 송강호가 보인다. 식당의 주방장 역에도, 양아치 역에도, 형사 역에도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알 파치노처럼. 그의 표현대로 주도면밀하게 “인물을 계속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송강호 얼굴만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관객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술자리에서조차 몇 시간이고 영화 이야기만 하는 그의 집요함은 영화를 같이 작업해본 사람들이면 다 알 정도다. 그리고 <…JSA>에서 송강호가 연기변신을 했다고 평가하는 건 다소 게으른 판단이다. 환상적인 코믹연기를 시작하기 전 그는 이미 <초록물고기>(1997)에서 번들번들한 양아치 패션을 하고 막동이(한석규)를 괴롭히는 악질깡패 판수 역으로 눈 밝은 관객에게 이미 신고식을 치른 배우였기 때문이다.
설경구/ 천의 얼굴이 숨어 있는 무심함
<박하사탕>(2000)의 개봉 당시, 설경구(33)를 인터뷰했던 기자는 헷갈렸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야? 느린 말투, 뻥뻥한 표정, 얼굴만큼이나 싱거운 웃음. 그러나 따져보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 ‘선악’이나 ‘미추’ 따위의 한두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얼굴이기 때문에 찌들 대로 찌든 40대 남자의 얼굴에서 말간 20대 청년의 얼굴까지 너끈히 소화할 수 있었을 터이다. 무색무취에 건조해보이는 그의 인상은 연극영화과 졸업 뒤 <박하사탕>을 만날 때까지 그의 앞길을 꼬이게 만드는 콤플렉스였지만 이제는 어떤 미남배우의 얼굴과도 바꿀 수 없는 무기가 됐다. 그를 발굴한 이창동 감독이 “많은 수원지를 안고 있는 사막 같다”라고 말할 때 방점이 찍힌 것은 사막이 아니라 수원지였기 때문이다. 그를 앞에 두고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에 나왔던 만화가 연기 잘하던데” 하고 박종원 감독이 칭찬했던 에피소드도 이제는 오히려 자랑스러운 기억이 될 법하다.
어쩌면 다행이고 어쩌면 불행이었다. 배우로서 평생 가도 한번 만나기 힘든 고난도의 연기로 그는 실질적인 충무로 신고식을 치렀으니 말이다. 이 영화를 끝내고 “한 3년 어디 가서 숨어살다 나오라”는 충고까지 들을 정도로 영호의 꼬리표는 깊게 그에게 박혀버렸다. 데뷔작에서 극상찬으로 일관된 연기력을 평가받는 게 아직 신인인 그에게 역시 적잖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우려와 그의 걱정은 논리적인 모순이었다. 하나의 얼굴로 수만 가지의 감정을 드러낸 그의 연기는 바로 그에게 수만 가지 역할이 가능하다는 의미 아닌가. ‘작가주의’배우(?)의 꼬리표를 뗄 작정이었는지, 그의 차기작은 대작상업영화 <단적비연수>(2000)였다. 배우들의 연기도, 영화의 완성도도 혹평으로 일관했지만 단 하나, 그가 맡은 적의 연기만은 대부분의 평론가들과 언론이 후한 평가를 매겼다. 그래도 결국 실패한 작품이라 아쉬움이 많을 듯한데 설씨는 “전에 생각도 못했던 것을 했다는 데 만족한다”고, 도리어 “늘 잘하고, 성공만 하겠나”며 덤덤하다. 설경구는 그런 사람이다. 언뜻 보면 무표정하고 카메라 앵글이 초점을 맞추면 그곳에서 온갖 사연과 상처가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얼굴을 갖게 된 데는 어쩌면 천성적인 무심함으로 감각의 촉수들을 하나하나 보호해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올 초 개봉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1)의 봉수는 전적으로 배우의 영화였다. ‘일상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설경구는 너무 편하게 연기했다. 감독이 그를 염두하고 시나리오를 다듬기도 했을뿐더러 봉수의 성격이 설경구의 그것과 별다를 게 없었다니까. 그래서인지 설경구 없는 <아내가…>는 설경구 없는 <박하사탕>만큼, 혹은 그보다 더 상상하기 힘든 작품이다.
<박하사탕>에서의 영호를 잊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지금쯤 그때의 무시무시할 정도로 에너지 넘치는 연기가 그리워질 만한데 마침 설레는 소식이 들린다.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된 이창동 감독의 신작 <오아시스>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멜로라고 하니 변검 같은 그의 얼굴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오게 될지 기대된다.
유오성/ 투박함으로 빚은 섬세한 연기
‘스타’가 아닌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는 신인연기자들은 이제 좋아하는 배우로 더이상 로버트 드 니로나 잭 니콜슨을 꼽지 않는다. 정답은 바뀌었다.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선배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친구>는 이 대열에 조심스럽게 유오성(34)을 올려놓는다. 앞의 세 사람에 비하면 유오성은 아직 완벽하게 검증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비트>(1997), <간첩 리철진>(1999), <주유소 습격사건>(1999) 등 비중있는 역할을 했던 작품에서 그는 불량배나 투박한 간첩 등 겹치는 톤의 연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친구>의 준석 역시 깡패 역이라는 면에서 그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비트> 때 이미 깊은 음영의 얼굴로 ‘유오성식 조명’이라는 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예사롭지 않은 연기를 했던 그는 <친구>에서 깡패연기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고 해도 아깝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 장동건에게 “니 죽고 싶나?” 살벌할 눈길을 던지다가도 “우리는 친구아이가” 말할 때 그 순한 웃음은 700만 한국 성인으로 하여금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도록 만들었다.
그가 한손을 허리에 올리고 가라오케에서 <마이 웨이>를 부를 때, 그리고 이번 영화를 하면서 부산사투리를 처음 배운 그가 서울말을 흉내내는 부산사투리로 “여러분이 쓰는 카타칼로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강의(?)를 할 때 당분간 한국영화에서 유오성만한 깡패를 만나기 힘들다는 걸 감지할 수 있다. 그는 이제 “제법 하는데”가 아니라 “장난이 아닌데”라는 소리를 듣는 배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유오성은 아직 보여준 게 많은 배우라기보다 보여줄 게 많은 배우다. 규칙은 아니지만 앞선 세 사람의 경험칙으로 봤을 때 그 역시 오랫동안 대학로에서 기본기를 익혔다는 게 우선 안도감을 준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거리두기를 할 줄 아는 배우다. 언론의 반응은 썩 좋지 못했지만 98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주유소 습격사건>을 50점만큼 노력하고 100점을 받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것의 절반쯤 들었다면 나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반드시 갈지자의 횡보를 그으면서 변신해야 훌륭한 배우라고 볼 수는 없다. 단순히 생각하면 <비트>의 버전업인 <친구>에서 그는 불량배가 아닌 ‘결’과 ‘날’이 있는 인간을 연기했다. 그러나 우리는 좀더 기대해보기로 한다. 푹 꺼진 볼의 굵은 음영과 눈썹이 처지는 순한 웃음, 그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이 배우 유오성 안에 숨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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