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하느님의 간절한 바람
신약성경은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혼인 잔치에 비유한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거처럼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와 하나가 되신다. 혼인 합의를 한 남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육체적으로 결합해야 그 혼인은 완결된다. 의도적으로 부부관계를 피하거나 병으로 성행위를 할 수 없는데 이를 숨겼다면 그 혼인은 무효다. 성적결합이 없으면 자녀를 출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이를 이미 알고 맺은 혼인은 합법적이고 유효하다. 서로 사랑하는 것도 자녀 출산에 못지않게 중요한 혼인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순교자 중에 동정 부부가 있다. 윤 요한과 이 누갈다는 혼인했지만 서로 오빠 누이라고 부르며 동정으로 지냈다. 그들은 수도 생활을 바랐지만 그 시대에는 그럴 수 없어서 부부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하느님만 바라며 살다가 마침내 순교로써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꿈을 이뤘다. 그들의 혼인은 땅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었다. 서로 사랑해서 부부가 되었지만 배우자만 바라볼 때 그들 안에는 실망 서운함 상처가 많아지고 그것은 미움으로 바뀌기도 하는 거 같다. 윤 요한과 이 누갈다 동정 부부가 증언하듯이 둘이 하느님이라는 한곳을 보고 그 안에서 배우자를 받아들이고 하느님이 나에게 하신 거처럼 배우자를 사랑할 때 그들은 혼인 성사를 통해 구원받는다.
바오로 사도는 아내는 주님께 하듯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고(에페 5,22) 말한다. 남녀평등을 증진하는 오늘날 듣기에 불편한 주장이다. 반면에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한다(에페 5,25). 서로 비교하는 게 좀 유치하지만 남편이 아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처지인 거 같다. 게다가 아내를 소유물처럼 얻고 버리던 그 시대에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엄청난 도전으로 들렸을 거다. 그런데 사도가 부부를 말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라고(에페 5,21)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아내는 주님께 하듯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주님이 목숨을 바쳤던 거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사랑과 순종은 같은 말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 14,15).”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1).”
우리가 말하는 사랑, 우리가 바라는 사랑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이다. 어제 뜨겁게 결심하고도 바로 오늘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그렇게 많이 용서받고도 이웃의 작은 실수와 잘못을 참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랑을 말하겠나.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10).”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 나와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나의 하느님 사랑은 아침 이슬 같지만 하느님 사랑은 영원하다. 그래서 나에게 희망이 있다.
예수님, 십자고상을 바라볼 때마다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을 기억합니다. 하느님의 간절한 바람을 새롭게 마음에 새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이 주신 새 계명을 잘 지키게 도와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