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만납시다, 대화합시다, 협상합시다!”
레오 14세 교황이 5월 14일 바오로 6세 홀에서 동방 교회들의 희년 행사 참석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평화의 존엄성”이 세상에 깃들게 하자고 호소했다. “이 평화가 퍼져나가도록 저는 모든 힘을 쏟겠습니다. 교황청은 적들이 만나 서로 눈을 마주보고 대화할 수 있도록 언제든 나서겠습니다. 저는 진심을 다해 각국 지도자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만납시다, 대화합시다, 협상합시다!”
‘동방 교회들의 희년’ 행사 참석자들에게 행하신 레오 14세 교황 연설
2025년 5월 15일 수요일, 바오로 6세 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친애하는 총대주교님, 추기경님, 주교님,
사제 여러분, 남녀 축성생활자 여러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동방 교회들이 부활 시기 동안 지치지 않고 반복하는 이 인사말로 여러분을 맞이합니다. 믿음과 희망의 중심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고백하는 이 말씀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견고한 토대가 되는 희망의 희년에 여러분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요! 로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기쁘고, 제 교황직의 첫 공식 만남 중 하나를 동방 교회 신자들과 함께하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여러분은 소중한 분들입니다. 여러분을 다양한 배경과 영광스러운 역사, 그리고 여러분 공동체 많은 이들이 겪었거나 지금도 겪고 있는 처절한 고통을 떠올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동방 교회들에 대해 하신 말씀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동방 교회들은 사랑받아야 할 교회들입니다. 그들은 독특한 영적 전통과 지혜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삶과 시노달리타스, 전례에 관해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고대 교부들, 공의회들, 수도승 생활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이 교회를 위한 헤아릴 수 없는 보화입니다”(동방 가톨릭교회 지원단체연합 총회 참석자들에게 행한 연설, 2024년 6월 27일).
여러분 교회의 존엄성에 대해 최초로 교황 교서를 발표하신 레오 13세 교황님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그분은 무엇보다 “인간 구원 사업이 동방에서 시작되었다”(교황 교서, 「동방교회」(Orientalium dignitas), 1894년 11월 30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교회 탄생의 시원지로서 독특하고 탁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동방의 빛」(Orientale lumen), 5항). 최근 며칠간 이곳 로마에서 여러분의 다양한 전통에 따라 장엄하게 거행되고 있는 여러분의 전례 중 일부가 여전히 주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깊은 일입니다. 레오 13세 교황님께서는 “동방 전례와 규율의 합법적인 다양성이 (…) 교회에 (…) 큰 품격과 유익을 가져다주길”(「동방교회」) 간절히 호소하셨습니다. 당시 그분의 우려는 오늘날 너무나 현실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을 포함해 수많은 동방 교회 형제자매들이 전쟁과 박해, 불안정과 빈곤 때문에 고향을 떠나 서방으로 가면서, 조국뿐 아니라 종교적 정체성까지 잃을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동방 교회들의 귀중한 유산이 사라지게 됩니다.
100여 년 전 레오 13세 교황님은 “동방 전례의 보존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시며, 이를 위해 “교구나 수도회 소속 선교 사제들이 조언이나 도움을 통해 동방 전례에 속한 신자들을 라틴 전례로 끌어들이는 경우”에는 그들을 “직무에서 제외시키고 면직해야 한다”고까지 규정하셨습니다(「동방교회」). 특히 디아스포라에 있는 동방 교회 신자들을 보호하고 증진하자는 이 호소에 응답합시다. 가능하고 적절한 곳에 동방 교회 관할구를 설립하는 것 외에도, 라틴 교회 신자들의 인식을 높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교황청 동방교회부에 감사드리며 이렇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라틴 교회 목자들이 디아스포라의 동방 가톨릭 신자들을 구체적으로 지원하고, 그들의 살아있는 전통을 보존하며, 그들의 유일무이함으로 그들이 사는 곳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원칙과 규범, 지침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날 동방 교회가 우리에게 얼마나 크게 이바지하는지 모릅니다! 인간을 온전히 감싸안고, 구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인간의 작음을 품으시는 하느님의 위대함에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여러분의 전례에 생생히 살아있는 신비감을 되찾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지요! 또한 서방 교회가 하느님의 우선성, 신비 교육의 가치, 끊임없는 전구, 참회, 단식, 자신과 온 인류의 죄에 대한 통곡(펜토스) 등 동방 영성의 특징들을 재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그러므로 실용성과 편의성을 핑계로 여러분의 전통을 희석시키지 말고 고스란히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비주의적이고 실용적인 정신으로 인해 여러분의 전통이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여러분의 영성은 언제나 새로운 약입니다. 그 안에서 인간의 비참함에 대한 극적 인식이 하느님 자비에 대한 경탄과 어우러져, 우리의 남루함이 절망을 낳지 않고 오히려 치유를 받고 거룩해져 하늘 높이 들어올려지는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초대합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주님께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시리아의 성 에프렘의 말씀으로 기도하며 예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당신의 십자가로 죽음위에 다리를 놓으신 당신께 영광을 드리 나이다. (…) 죽을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그것을 모든 죽을 존재를 위한 생명의 원천으로 변화시키신 당신께 영광이 있나이다”(『주님에 대한 설교』, 9항). 또 한 분의 위대한 동방 교부의 “가장 큰 죄는 주님 부활의 에너지를 믿지 않는 것이다”(니네베의 성 이사악, 『수덕에 관한 설교』, I, 5)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삶의 어떤 시련 속에서도 파스카의 확신을 보고 낙담하지 않는 은총을 구합시다.
그렇다면 폭력의 심연에서 여러분보다 더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이가 누구겠습니까? 전쟁의 참상을 직접 아는 여러분보다 더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여러분의 교회들을 “순교자”의 교회라 부르셨습니다(동방 가톨릭교회 지원단체연합 총회 참석자들에게 행한 연설 참조). 이스라엘 성지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레바논에서 시리아까지, 중동에서 티그라이와 캅카스까지, 참으로 많은 폭력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참상 위에, 군사적 정복이라는 명분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 분노해야 할 수많은 젊은 생명들의 학살 위에, 한 호소가 울려퍼집니다. 교황의 호소가 아니라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한 20,19.21.26)을 되풀이하시는 그리스도의 호소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그리스도의 평화는 분쟁 후의 무덤 같은 침묵이 아니며, 억압의 결과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되살리는 선물입니다. 화해와 용서, 새 페이지를 열고 다시 시작할 용기인 이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이 평화가 퍼져나가도록 저는 모든 힘을 쏟겠습니다. 교황청은 적들이 만나 서로 눈을 마주보고 대화할 수 있도록, 민족들에게 희망이 되돌아가고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성, 평화의 존엄성을 되찾아주기 위해 언제든 나서겠습니다. 온 민족이 평화를 원합니다. 저는 진심을 다해 각국 지도자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만납시다, 대화합시다, 협상합시다! 전쟁은 결코 불가피하지 않습니다. 무기는 잠잠해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키우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남을 것은 평화를 뿌린 이이지 희생자를 거둔 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은 무엇보다 적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미워할 악인이 아니라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선악으로 나누는 폭력적 서사의 전형인 마니교적 시각에서 벗어납시다.
교회는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되풀이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 기도 속에서, 봉헌으로 평화의 실을 엮어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특히 중동에서 자기 땅을 버리고 떠나려는 유혹보다 강하게 그곳에서 견디며 버텨내는 동방과 라틴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안전한 삶에 필요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자기 땅에 머물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정의의 태양이신 예수님께서 나신 동방 교회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의 빛들”(마태 5,14 참조)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른 무엇이 아닌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계속 반짝여주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들이 모범이 되고, 목자들은 특히 ‘동방 가톨릭 교회 주교 시노드’에서 올바르게 친교를 북돋아 그것이 주교단체성과 진정한 공동 책임의 자리가 되게 하십시오. 재산 관리의 투명성을 지키고, 명예나 세속적 권력, 자기 이미지에 매달리지 말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에 대한 겸손하고 온전한 헌신을 증언하십시오. 신 신학자 성 시메온은 아름다운 예를 들어 가르쳤습니다. “불타는 용광로의 불꽃에 먼지를 뿌리면 불꽃이 꺼지듯이, 이 세상의 걱정과 온갖 사소하고 무가치한 것들에 대한 집착은 처음에 불타올랐던 마음의 온기를 피괴합니다”(『실천과 신학에 관한 단상』, 63항). 동방 교회의 찬란함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복음적 순종과 증언에 충실하기 위해 모든 세속적 의존과 친교에 맞서는 모든 경향에서 자유로워질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온 마음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저의 직무 수행을 위해 여러분의 강력한 간구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2025년 5월 15일
교황 “만납시다, 대화합시다, 협상합시다!” - 바티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