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귀한 하늘이 있을까. 내가 있어야 내 눈에 해가 뜨고 내 가슴에 달이 뜬다. 수많은, 아니 헤아릴 수도 없는 별들 가운데 우주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그런데 수행은 그토록 귀한 나를 놓아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놓아버리는 것, 나를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것, 마침내 우주만큼 귀한 목숨마저 내 것이라 붙들지 않는 것.
나와 세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숨 쉬는 나와 숨 쉬는 우주가 하나 되는 곳, 그곳을 무아지경이라 부르는 것일까. 열반이라 부르는 것일까.
바다 수면 아래 십오 미터, 다시 이십 미터. 빛도 희미해지고 세상의 소리도 멀어지는 물속 깊은 곳, 한 호흡과 한 호흡 사이 삶과 죽음의 문턱이 가느다랗게 놓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 깊은 고요 속에서 스님은 무엇을 보셨을까요. 끝까지 살아 돌아오려 물을 밀어내셨을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깊은 침묵 앞에서 평생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며 세상의 아픈 곳으로 걸어가셨던 스님의 한 생을 돌아봅니다.
스님, 그 순간에도 무아의 깊은 곳을 걷고 계셨습니까.
"세상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하시며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거리로, 통일을 꿈꾸는 길로, 해고 노동자의 천막으로, 농민과 가난한 이들의 눈물 곁으로 한평생 걸어가신 스님, 아픈 이들이 아직 이승에 이토록 많이 남아 있는데 어찌 먼저 놓고 가셨습니까.
평생 비우고 또 비우며 사시더니 마지막에는 그토록 뜨겁게 살아낸 이승도 걸어온 모든 발자국도 마침내 내려놓으셨습니까.
명진 스님, 이제 남은 길은 우리가 걷겠습니다. 민주주의가 죽비를 맞지 않아도 바로 서고, 통일과 평화가 목놓아 외치지 않아도 찾아오며, 노동자와 농민과 가난한 이들이 더는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 스님의 장군죽비가 더는 울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우리의 발걸음으로 열어 가겠습니다. 그날까지 스님이 남긴 죽비는 우리 가슴에서 울릴 것입니다. 탁― 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