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전국 양봉농가에서 사라진 월동군은 모두 39만517군(3월2일 기준). 1군에 2만 마리쯤 있었다고 가정하면, 78억 마리 이상의 벌이 자취를 감춘 셈이다. 조사 후에 벌이 더 줄어든 농가, 협회에 미처 신고하지 못한 농가를 합치면 실제로는 더 많은 벌들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농진청은 전국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1월7일부터 2월24일까지 조사한 결과, 월동 꿀벌 피해 원인은 지난해 발생한 꿀벌응애류, 말벌류에 의한 폐사와 이상기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밝혔다.
벌 폐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응애가 지목됐다. 농진청은 거의 대부분 피해 봉군에서 응애가 관찰됐고, 일부 농가의 경우 꿀벌응애류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할 목적으로 여러 약제를 최대 3배 이상 과도하게 사용해 월동 전 꿀벌 발육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이번 실태조사에 참여한 농림축산검역본부 조윤상 연구관은 90% 이상 농가에서 꿀벌응애와 가시응애에 감염이 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늘 있던 응애 피해가 이번에는 왜 이렇게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졌을까.
꿀벌에게 가장 중요한 영양 공급원은 꿀이다. 많은 양봉가들이 건강한 꿀벌을 육성하기 위해 영양제나 면역강화제를 챙겨 먹이지만, 어떤 것도 꿀보다 좋진 않다. 최 박사는 “꿀벌에게 가장 필요한 영양소와 면역에 필요한 물질이 꿀에 들어있다. 꿀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면역 체계가 약화된다”고 했다. 꿀벌이 꿀을 얻기 위해선 꽃이 제때 피고 제때 져야 한다. 최근 몇년 간 우리나라에선 그게 안됐다.
최근 3년간 기상도를 보면 2·3·4월 기온은 높고, 5·6월 기온은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2·3·4월 기온이 높다는 것은 꽃이 조기 개화 한다는 것이다. 더운 상태가 계속 유지됐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최대 밀원인 아카시아 꽃이 피는 시기인 5·6월에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부는 저온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꿀벌이 먹이를 제대로 못 먹었다. 아카시아 꽃은 국내 꿀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2년 전인 2019년 12월~2020년 2월 전국 평균 기온은 3.1도로 1973년 이후 가장 높았다. 높은 기온은 3월까지 이어졌다. 3월 전국 평균 기온이 7.9도로 역대 2위였다. 2020년 3월27일, 기상청에서는 서울 벚꽃이 1922년 벚꽃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빨리 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그 기록은 1년 뒤 경신됐다. 2021년 3월에도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전국 평균 기온이 8.7도로 역대 가장 더운 3월이었다. 벚꽃은 1년 전보다 사흘 빨리 개화했다.
3월 말까지 오르기만 하던 기온이 4월이 되자 갑자기 오락가락했다. 2020년 4월 중순에는 갑자기 눈이 내렸다. 5월에는 아예 태풍 수준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5월 평균기온은 16.6도로 1995년 이후 가장 낮았고, 이틀에 한 번 꼴로 비가 내렸다. 우박과 낙뢰도 잦았고, 강원도에는 눈도 내렸다. 벌의 주 먹이인 아카시아 꽃은 냉해를 입었다.
이상기상은 응애 등 기생충에는 유리하게 작용한다. 가시응애는 기후변화와 연관돼 있다. 여름이 길어져 번식 시기가 길어지면서 증식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가시응애는 갈퀴같이 생긴 다리로 유충을 뜯어 먹고 꿀벌응애보다 번식도 더 많이 한다. 벌은 꿀을 먹지 못해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병해충과 싸워야 한다. 당연히 싸움은 잘 되지 않고, 병해충은 점점 늘어난다. 평소처럼 약을 써선 방재가 되지 않으니 농가들은 더 많은 약을 써 병해충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벌은 왜 통 안에서 죽지 않고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일까. 모든 일의 시작점이었던 이상기상 현상이 다시 등장한다. 겨울은 추워야 한다. 춥지 않으면 여왕벌은 계속 산란을 하고, 벌은 쉬어야 하는 시기에도 계속 일을 하게 돼 결국 봉군 전체가 약화된다. 양봉가들이 월동 전 보온에 신경을 쓰는 것은 온도가 너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 아예 춥지 않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은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10월 중순에 26도까지 기온이 올랐다. 중순 이후에는 갑작스런 한파가 닥쳤다. 들쭉날쭉한 기온은 11월 초·중순까지 계속됐다. 평년보다 따뜻한 날과 추운 날이 반복됐다. 벌은 밖이 따뜻하면 본능적으로 벌통 밖으로 나와 일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기온에 매우 민감해서, 따뜻한 줄 알고 나왔는데 기온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기후위기는 산불과 같은 재해 뿐 아니라 극한기상 현상의 빈도도 증가시킨다. 한 달 넘게 장마가 이어진 2020년 여름철,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은 온도인 41도가 기록된 2018년의 폭염과 같은 ‘평균을 벗어나는 기상’은 꿀벌에게 악재다. 벌이 살기에 가장 좋은 벌통 온도는 34~35도, 습도는 60% 정도다. 폭염으로 이보다 온도가 높아지고,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습도가 더 올라가면 벌은 환기를 위해 날갯짓을 더 많이 해야 한다. 많은 노동으로 체력은 점점 떨어진다. 벌의 수명은 노동을 많이 할수록 짧아진다.
양봉 농가의 위기는 과수·시설채소 농가들의 위기로 연결된다. 꿀벌은 대표적인 화분매개 곤충이다. 많은 과수·시설채소 농가들은 양봉 농가들로부터 벌을 공급받아 수분을 한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벌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전세계 식량 작물 4종 중 3종은 벌과 같은 꽃가루 매개 생물에 의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오는 5월20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벌의 날’이다. 벌은 식품 시스템에 큰 역할을 한다. 벌은 우리의 식량 안보, 영양, 그리고 환경에 중요하다. 기후변화로 꿀벌이 실종되는 환경에서는 인간도 잘 살기 어렵다. 모든 위기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