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22. 큐티
누가복음 7:24 ~ 35
예수님의 세례 요한에 대한 평가
관찰 :
1) 세례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
- 24절. “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a.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제자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증거하신 대상이 되신 분이십니다.
b.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구속사적 중요성을 설명하심으로 그의 존재 증명을 해 주시고자 독특한 방식의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시는(自問自答) 방식입니다.
c. 세례 요한의 영향력은 사실 대단했습니다. 그는 유대 뿐만이 아니라 디아스포라 유대 공동체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 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쏟아냈던 선지자였습니다. 백성들이 광야에 나갔던 이유는 팔레스틴의 어느 지역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갈대를 보고자 나갔던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의 메시지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던 지에 대해서 remind 시켜주시는 말씀입니다.
- 25절.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a. 흔히 볼 수 있는 갈대를 보기 위해서 광야에 나간 쓸데없는 행동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왜 광야에 나갔었는가를 반어법적으로 되묻고 있습니다.
b. “부드러운 옷”은 세례 요한이 입었던 ‘약대 털옷’과 대비되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옷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들이 바로 세례 요한을 감옥에 가둔 자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무리들이 광야에 찾아 나섰던 이유는 그런 세상적인 안락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 26절.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a. 무리들이 광야에 나간 이유는 선지자, 400년 만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를 보기 위해 나갔던 것임을 다시 인식시켜주시고 있습니다.
b. 세례 요한의 역할은 바로 구약의 메시지와 신약의 메시지를 이어주는 중차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고, 주님은 그를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존재로서 인정해 주시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선지자보다 위대한 이유는 27절에 나오듯이 구약에 예언되어 있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c. 다른 구약의 선지자들이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었다면,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오신 메시야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메시지의 탁월함이 세례 요한이 선지자보다 훌륭한 존재라 말씀하시는 이유인 것입니다.
- 27절.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a. 이 말씀은 말라기 3:1 말씀의 인용이자 그 말씀의 성취에 대한 예수님의 증거입니다.
b. 그 말은 세례 요한이 증거한 예수님 자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례 요한과 자신을 통하여 성취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 28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a. 이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위대성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까지 증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가장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b. 그러나 여전히 구약에 속한 세례 요한의 사역은 새시대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는 신약에 비해 부족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세례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를 받는 두 부류의 사람들
- 29절.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a.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은 요한의 증거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 이심에 대한 증거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증거가 합당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의롭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30절.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a. 그러나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아니한 자들, 즉 세례 요한의 사역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자들은 세례 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의 증거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b.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셨지만, 이들 스스로가 부정한 것입니다. 이들은 세례 요한을 변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입장과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자신들의 판단과 생각에 의해서 결정을 해 버리는 악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되는 이들입니다. 이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정통했지만, 그것은 본질을 상실한 앎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3) 바르게 반응하지 않는 패역한 세대에 대하여
- 31절.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a.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 대하여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해 주시고자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앙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 자체를 “이 세대”라고 표현하시고 있습니다.
- 32절.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a. 예수님 당시에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놀이를 예수님은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우리 나라로 치면, ‘얼음 땡’이나 ‘오징어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아이들 놀이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시는 이 놀이는 아이들이 두 패로 나뉘어 한 무리는 악기를 연주하는 흉내를 내고, 다른 한 무리는 그 음률과 아이들의 표정에 따라 혼인 찬치가 되기도 하고, 장례식이 되기도 하는 변화무쌍한 놀이였다고 합니다. 이 때 서로 싸인이 맞고 마음이 맞으면, 서로 아주 재밌고 즐거운 놀이가 되지만, 마음이 맞지 않게 되면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며 싸움으로 놀이가 마치게 되는 그런 놀이였다고 합니다.
b. 예수님은 사람들이 모두 이해하는 그런 아이들의 놀이에 비유하시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싸인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 이 세대의 완악함에 대해서 지적 하신 것입니다.
- 33절 ~ 34절.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a.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과 같이 하나님의 싸인에 반응하지 않는 패역한 세대들의 모습을 이중 잣대를 가지는 자들이라고 예수님은 지적하시고 있습니다.
b. 세례 요한의 지적에 대해서는 귀신들렸다 하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유리한 것으로 언제나 판단하며, 그것을 당연하다 여기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지혜롭다 스스로 자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 35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a.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그 복음이 대적들에 의해 곡해되고 비난 받으며 세례 요한과 같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핍박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은 말씀대로 살려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며 그들에 의해 세계 만방에 선포되고 옳다고 인정받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세례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증언이 세례 요한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평가입니다.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렇게 훌륭한 이유는 이 땅에 오시는 왕중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는 이 땅에서 여자가 낳은 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세례 요한보다 더 위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실 예수님 보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예비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는 말씀입니다.
2) 이 세대는 철저히 예수님을 배격하는 세대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복음을 베푸시고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복음을 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 이 세대는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을 방해하고 저항합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이 복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대안인데 그것을 전파하지 못하게 하고, 또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아닌 이 땅에 함몰되게 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구현되지 못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나라의 복음이 증거되는 것을 막아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주님께 집중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3)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복음을 이 땅에,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드러내는 삶을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적용 :
1) 예수님을 정말 잘 묵상하고 연구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 예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참 부족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알고 있고, 알기 위해 얼마나 투자하고 노력하고 있는가? 말씀을 보고, 예수님에 대해 보다 초점을 맞추어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주님은 나를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피와 살이 도는 느낌과 감각으로 예수님을 알고, 체험하고, 나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도록 예수님을 알아야 하는데, 왜 나는 이리도 예수님을 머리로만 알려고 하는 것인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제한하기에 그런 것은 아닌가? 나를 다시 살피고 나의 믿음 없음을 주님께 고합니다. 주님께서 믿음을 공급해 주시길 간구드립니다.
2) 예수님을 알고픈 마음에 다시금 목마르기를 소원합니다. 깨알같은 성경공부로 깨알같은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주님, 주님을 보여주시고 알려주시고 주님을 닮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내 안의 주님을 부인하고, 주님을 닮지 못하는 너무나 많은 영역들을 도려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