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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카하시신지님의실천!팔정도! 원문보기 글쓴이: 오로지팔정도
반성의 길잡이
4장 반성의 요령과 올바른 자세
☞기본적인 태도
1. 팔정도의 관찰법과 사고방식을 잘 익혀 둘 것.
1. 마음의 기능을 잘 파악해 둘 것.
1. 반성의 목적은 자신의 결점을 자각하고,
그 결점이나 업에 두 번 다시 휘말리지 않는 부동심을 확립하는 데 있다.
☞반성의 요령과 올바른 자세, 주의 사항
ㅡ. 자신의 결점이나 버릇이 어떠한 상황에서 나타나는가,
그것을 아는 것이 반성의 가장 큰 단서.
ㅡ. 결점이나 버릇은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은 언제, 어떠한 식으로해서 만들어졌는가,
그것에는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림설명을 참조해서,
자신의 결점이 어느 연대에 어떤 사건을 통해서 생겨나고,
그것이 카르마가 되어 있는가를 반성합니다.
ㅡ. 반성할 경우,
그저 단순히 과거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결점, 업이라고 하는 것이 쉽게 생각해 낼 수 없기 때문에,
우선, 하나하나의 결점을 마음속에 두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되돌아가면서 생각하면 반성하기 쉽습니다.
즉, 부모와 자기
형제자매와 자기
직장과 자기
애인과 자기
친구와 자기 등
이와 같이 사람과의 관계, 직장과의 관계속에서 결점을 찾아가면,
자신의 결점이 어느 시점에서, 누구와의 관계를 갖는 것에 의해 생겨났는지가 분명해집니다.
도표에도 있듯이,
조급한 버릇은 그 대부분은 응석받이로 자란 가정환경(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속에서 그 원인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급한 성정(性情)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지배욕, 욕망의 강함, 자기보존(에고)에 큰 원인이 있으며,
이러한 버릇이 있는 한,
일도 다른 사람과의 조화도 지속시킬 수가 없습니다.
ㅡ. 사람의 성격, 혹은 기질(선천성)이라는 것은 대개 어린이 때 형성되어 나타납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성격과 기질은 변화해갑니다.
때문에, 성격이 만들어진 2-3세부터 7-8세의 연대에 주의해서 보면,
원인이 된 인자(因子)를 찾아 낼 수 있습니다.
ㅡ. 조급한 성미가 응석에 있다고 하면,
팔정도의 어느 규범에서 벗어나 있는가 하면,
거의 전부에서 벗어나 있다,
고 하는 것을 우선 깨닫게 될것입니다.
현재 자신의 편협된 성격, 불행의 시작은 중도(팔정도)에서 벗어난 에고,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에 있었으므로,
이것을 수정하지 않으면 조화로운 마음은 얻을 수 없습니다.
더우기 제멋대로인 성정(性情)은 부모에게 여러 가지 폐를 끼쳐 왔을 것입니다.
부모의 고생은 자기가 부모가 되어보면 확실하게 이해되지만,
부모가 자신에게 해준 것에 대해서,
자신은 어느정도 양친에게 효도를 다했는가,
우선 대부분은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지내왔음이 틀림없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없는 기분도,
제멋대로 자란 가정환경에 원인이 있었던 것도 표면으로 떠오릅니다.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
그것이 마음에 맞지 않으면 화를 내는 에고가 어른이 되어서도 붙어 다닙니다.
응석과 조급한 성미는 둥근 마음의 단면도에서 보면 어떻게 되어 있을까.
오관에 좌지우지된 상념의 움직임은 본능과 감정 부분이 이상하게 부풀려져 있음을 깨닫습니다.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하는 욕망은 본능의 2차적 욕망의 부풀림을 의미합니다.
조급한 성격의 상념은 감정기능의 이상융기(異常隆起)입니다.
이렇게 되면, 원형이어야 할 마음은 지성과 이성이 짜부라져, 보기 흉한 꼴이 됩니다.
마음이 둥글지 않으면 대인관계의 조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 자신의 마음도 늘 불안정하며, 육체적으로도 그것이 장해가 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ㅡ. 반성은 대략 이상과 같이,
하나하나의 결점을 캐내어, 대인관계 속에서 살펴보면 매우 분명하게 이해됩니다.
또 지금까지 막연했던 자신의 결점이 된 카르마가,
이것을 필기해보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따라서, 반성 기록은 각자 만들기를 바랍니다.
ㅡ. 반성 기록은 언제까지나 남겨 놓아도 그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반성의 내용이 이해되었다면 소각하거나 버려도 상관없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반성의 기록은 틀림없이 남에게 보일 수 없는 부분이 많을 것이고,
또, 원래 남에게 보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반성은 신(神)과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지금까지 소홀했던 내면적인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을 통해서 자기자신의 큰 자각을
현실생활의 조화에 이바지하는 자료로 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성하고 있는가, 아닌가는 자기 자신과 신(神)이 가장 잘 알고 있고,
또 그 관계 속에서만, 사실은, 우리들의 진정한 진보를 기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에게 자랑하며
‘나는 이만큼 반성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어졌다고 해도,
그때엔 그런 기분이었다고 해도,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는 동안에,
또, 새로운 욕망이 머리를 쳐들고, 공포심에 떨게 되는 경우마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새로운 일을 만나면, 그 때마다 흔들릴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그야말로 일초 일초가 시련속에 서 있게 되는 것이며,
마음의 깊이는 이것으로 족하다는 한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경우에, 그 문제에 맞서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자신입니다.
남이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든,
마음의 문제는 최종적으로 신과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만 해결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있는 곳에 신이 존재한다.
이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마음 속을 남에게 보여 봤자, 어떻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까.
반성과 실천 속에서 전진할 수 있다면 제 3자는 그나름으로 평가를 해 줄것이고,
또 평가를 해주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남의 안색을 보고 반성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또 자기 주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반성을 통한 삶의 방식이, 결국은 주위를 밝게 하고,
모두와 즐겁게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반성을 하는 이유이다.
이 점을 틀리면, 정법은 겉보기만의 것으로 되고,
무엇인가가 일어나면, 금방 마음에 동요가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반성기록은 남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좋고,
보여서 오히려 가정이 파괴되는 일마져 일어날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모두 모여서 정법을 실천하고 있는 집은 아직 좋지만,
남편은 무관심인데, 부인만이 열심인 경우,
그 반성기록이 부인의 부재중에 남편이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사정에 따라서는, 조화를 위한 기록이 가정 불화의 원인으로도 될것입니다.
이점 때문에라도, 반성의 결과 자신의 결점의 원인을 알았다면,
가능하면 소각하는 방법이 이상적일 것입니다.
아니면 자기 혼자만 알 수 있는 정도의 비망록으로 남겨두는 것도 한 방법이겠습니다.
ㅡ.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반성의 방법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이것으로 좋은지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렬 경우는, 선배나 강사에게 상담하여,
자신의 반성기록을 보여주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반성의 방법을 보다 전진시키는 것도 좋겠지요.
요(要)는, 반성 기록에 의해, 이제까지 남에게는 몰랐던 면이 분명하게 되어 가는 것이므로,
그때문에 상호관계가 후에 서먹서먹해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상대방을 선택하여 상담하기 바랍니다.
되풀이 하는 것 같지만,
반성기록은 자기자신의 혼(魂)의 향상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잘못하여, 장난스레 분발한 태도를 취하면, 후회만이 남게 됩니다.
ㅡ.반성의 목적은 반성한다는 그 자체에도 큰 의의가 있지만,
더 큰 목적은, 반성한 것에 두 번 다시 농락당하지 않는 자신을 만드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 노력이 실천이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
실천하고 있으면 수호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정의 평화랑 일에 있어서 예상 밖의 좋은 결과가 초래되어,
반성에 대한 자신도 붙을 것입니다.
물론, 실천하는 과정에서 수호령이 여러 가지 시험을 해 오는데,
도중에 마음이 흔들리는 듯한 일도 일어나는데,
그것에 지면 출발점으로 되돌아 와 버립니다.
처음에는 실천하면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다음 단계에서는, 본인의 마음을 테스트하기 위해 미혹을 주는 조그마한 사건들이
사람에 따라서는 잇달아 일어납니다.
또, 여러 가지 욕망이 불가사의하게 일어 납니다.
해결했다고 생각한 욕망이 나옵니다.
그 때에,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혹은 움직이지 않는가,
사태를 냉정하게 지켜 볼 수 있는가 어떤가,
해결했다고 생각한 욕망이 나온다고 하는 것은,
그 욕망이 그 사람의 카르마가 되어 움직이고 있으므로,
그 원인을 파악하여, 자각하고 있어도 나오는 것입니다.
원인을 모를 때에는 금방 그 욕망의 포로가 되지만,
원인을 알고 있으면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카르마의 활동은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지는 것이므로,
그때까지 가만히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카르마의 윤회는 거기에 붙잡히면 언제까지나 윤회에 휘둘리는데,
붙잡히지 않고 내버려두면,
결국은 전연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결점과 카르마의 수정이 결실을 맺어 갑니다.
ㅡ. 실천의 과정에서, 자꾸 현실적 사건을,
억지로 영적 인과관계(靈的因果關係)에 결부시켜 생각하려고 하기 쉬운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영적 인과관계도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영적 문제는 현실적인 마음의 상태에 따라 작용하는 것이며,
주체(主體)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마음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선 현실의 상념의 상태를 팔정도에 비추어,
원인을 추구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또, 반성하고, 반성의 원인이 아무리해도 불명할 때가 있는데,
그럴 경우는 그 문제는 일단 옆에 두고, 다음 문제로 옮겨가세요.
언제까지나 그 문제에 집착하고 있으면,
마침내는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불면증에 빠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모처럼의 반성도 집착으로 변하고 말아서, 목적으로부터 벗어나고 맙니다.
반성의 방법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반성자체도 중도에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초보적 단계에서는 곧잘 팔정도가 마음에 걸려 버립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저렇게 생각해서는 좋지 않다고,
마음을 구속하는 일이 간혹 있는데, 이래서는 안됩니다.
팔정도는 마음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해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슴에 걸리거나,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어색하게 되면,
일단 팔정도를 마음 밖에 내놓고, 마음을 이완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기분이 안정되면, 다시 팔정도를 생각하고,
선(善)을 닮은 에고에 집착하는 의식은 어디에 있는가를 반성하고,
고찰해 보는 것입니다.
자아에 붙잡히면 마음이 협소해집니다.
팔정도의 목적은, 선(善)을 닮은 에고가 아닙니다.
자비, 사랑이라는 광대한 마음입니다.
죄를 미워하지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는 심근(心根)입니다.
팔정도에 마음이 묶이는 것은 자아욕망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선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집착에 사로잡히면 안됩니다.
자비와 사랑은, 그런 집착에서 초월한 곳에 있는 것입니다.
ㅡ. 반성의 추궁은, 자칫하면 정신분석(精神分析), 아동심리학처럼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혹은 과거의 역사적 환경을 알기 위해서 역사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는듯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정법의 반성은 학문으로 흐르게 됩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나 두뇌가 명석한 사람은 그것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책도 못 읽고 일이 바쁜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노인들은 그렇게 해서는 구제될 수 없습니다.
정법의 반성, 팔정도의 목적을 요약하면,
대우주를 지배하는 자비의 마음에까지 자신을 격상시키고,
사랑의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신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반성과 실천은 감사와 보은의 자각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격, 마음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인간의 마음은 이렇다, 그렇다라고 말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본말(本末)을 틀리면 안 됩니다.
살려지고 있는 사실을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보은의 행위가 마음에 저항도 없이,
순진한 마음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정법의 목적입니다.
이 점을 잘못하여, 심리학이나 역사를 조사 연구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면,
정법은 또 다시 철학, 학문으로 되어 갈 것입니다.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여, 서두르지 말고, 게으르지 말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ㅡ. 반성 후의 명상은 마음이 상당히 조화를 이룹니다.
이때, 수호령과도 통신하기 쉽게 되기때문에,
마음속으로 기도문을 외고, 명상을 지속하고 있으면,
수호령의 파동과 일치해서, 대단히 마음이 좋은 기분이 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명상의 목적은 삼매(三昧)라고 하는 신불의 마음에 닿는 것이지만,
그런 조용한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명상하고 있을 때는 기분이 좋고,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아수라(阿修羅)와 다를 바 없다면,
반성, 정정(正定)의 목적은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ㅡ. 되풀이 말하지만, 반성의 목적은 마음의 구름을 벗기는 일입니다.
즉 마음의 때(垢)를 자각하는 일입니다.
때를 알아도 금방은 벗길 수 없습니다.
벗겨졌는지, 아닌지는 반성후의 실생활에서 그 때(垢)에 휘둘리지 않는 자신이 확립되었는지 아닌지.
실천의 과정 속에서 증명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 때(垢)에서 벗어나서, 조화로운 자신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반성은 실생활의 조화를 위한 수단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ㅡ. 반성을 해도 반성했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런 사람은 단지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팔정도를 규준(規準)으로 대인관계 속에서 자신의 결점을 찾아가면,
자신이 어떻게 자기보존 속에서 살아 왔는가를 압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추궁하면, 깊은 참회심이 우러납니다.
참회의 마음을 뒤집으면, 살려지고 있는 감사의 마음이 숨 쉬고 있습니다.
즉 참회의 마음은 사람들에게 봉사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마음이 됩니다.
봉사의 마음이 솟아나면, 가정도 일도 잘 되어 갈 터입니다.
현재, 잘 되어 있다고 하면, 이번에는 그것을 남에게 미치게 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을 혼자 독점하고 있는 동안은, 정법으로부터 아득히 떨어진 존재입니다.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동안은, 안 됩니다.
그것은 반성도,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ㅡ. 반성할 때의 자세나 형식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또 과거를 반성할 때는,
역시 눈을 감고 조용히 뒤돌아보는 시간, 장소, 정좌,
혹은 책상앞에 앉는 기회를 가지면 쉽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과 직장의 형편상 불가능할 경우는, 궁리를 해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ㅡ. 반성의 선정(禪定)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둥글고 큰마음을 마음속에 그리기 바랍니다.
상념(想念)은 만물을 만들기 때문에, 태양처럼 크고 넓게,
모든 생명을 살리는 생명체를 마음속에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조용히 자신의 결점과 남과의 관계 속에서 반성을 해가면,
둥근 마음의 어느곳에 일그러짐이 있는지가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결점의 원인을 안 다음,
다시금 둥글고 풍부한 마음을 마음속에 상상하고 명상하는 경우는'
명상을 하시기 바랍니다.
ㅡ. 명상(溟想)은 반성(反省)을 한 뒤에 하시기 바랍니다.
반성을 생략하고 명상으로 직진하면,
또 그런 습관이 몸에 배면,
마음의 왜곡을 가진 채 마음의 공백을 촉진하여,
그러한 경우에 악령에 빙의당하게 됩니다.
반드시 반성을 하고, 그 다음에 명상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 경우, 앞서 말한 대로 둥근 마음을 마음속에 그리고,
기원문을 조용히 읽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원문을 소리내어 읽으면,
마음이 대우주 대신령, 수호령, 지도령에 직결하게 되어,
온갖 잡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함과 동시에,
마의 지배로부터도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렇게 명상을 계속하도록 하면,
명상시(暝想時)의 평화스러운 마음이 차츰 밝아지게 되어,
마침내 수호령과의 교류가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되어 갑니다.
<그림 설명>
그림의 의미는, 사람의 성격을 응석[陽性]과 인내[陰性]라는 두 개의 양극단으로 나누어,
그 두 개의 성격이 성장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를 보인 것입니다.
물론, 이 그림은 음양(陰陽) 두 갈래로 나누면 이렇게 된다는 것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어릴 때는 부모님이 엄격하고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으나,
20대가 넘는 무렵부터 환경이 크게 바뀌어,
성격적으로도 명랑해지고 응석에 가까운 기질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그림은 하나의 예이며, 모든 것이 다 여기에 해당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릴 때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 한 가지의 기질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며, 40대, 50대가 되면 자신의 결점, 나쁜 성격이라고 하는 것이,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알아보는데 편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림을 보기 바랍니다.
땅 속에 묻힌 큰 나무의 뿌리를, 저승이라고 봅니다.
이곳은 올바르게 조화된 마음의 세계입니다.
다음으로 태어나서 0세부터 1, 2 살정도까지는 아직, 자아의 의식은 거의 없습니다.
있는 것은 수호령의 파동뿐입니다.
즉 축복과 인생의 뱃길 안내를 맡은 수호령의 평안함의 파동이,
갓 태어난 영아를 지켜주고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그 무렵의 아이는, 모두 같은가 하면 그렇지는 않고,
전세(前世)의 아직 수정되지 않는 업(기질로서 남아 있다.)(카르마)의 파동이 남아 있어서,
얌전한 영아가 있는가 하면, 울기만 하는 비교적 기질이 강한 성격의 영아도 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느낌을 주는 아이도 있고,
혹은 명랑한 분위기를 준다고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전세의 카르마가, 2 살에서 5,6살 사이에, 가정환경과 혼합되어,
그림에서처럼 응석꾸러기(외향적) 아이가 되거나,
인내를 강요당하는(내향적) 아이가 되거나 합니다.
따라서 이 연령에서, 자아의 의식, 성격이 만들어져 갑니다.
즉 자기보존, 욕망, 세상사에 집착하는 마음,
그것에 이것들과 혼합된 전세의 카르마가 표면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격이 선천적인가, 후천적인 것인가를 구별하는 것은,
보통은 쉽지 않지만, 이 연령에서 만들어진 성격은,
전세의 업(선천적)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이를 수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오냐오냐 키워져, 응석꾸러기가 된 성격은, 성장해감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가,
그림의 왼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5,6세부터 열살 사이에, 좋고 싫은 감정이 격렬해집니다.
사람에게 곧잘 어리광을 부리고, 한 가지 일에 싫증을 잘 내며, 마음의 변화가 무쌍합니다.
공부를 별로 하고싶지 않으며, 자기중심적입니다.
열 살에서 스무 살까지 있어서, 어떤가하고 보면,
세상사의 시비를 자기의 취향대로 결정해버립니다.
주의력이 산만하고 의지력이 약합니다.
사람됨은 매우 개방적이지만, 바깥일에만 흥미를 보이고,
말과 행동은 마음먹은대로 직선적입니다.
20대에서 30대 사이에는, 곧잘 남을 믿으며, 남의 눈치를 살핍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일이 없고,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곧잘 빠집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기회주의자가 되며, 허영심이 강해지기도 합니다.
30대에서 40대 사이에는, 의견은 말하지만, 다수의견의 대세에 따릅니다.
의견이 있어도 타협하는 경향을 띤다,
지위, 명예에 집착을 보입니다.
자기선전을 하고 싶어합니다.
인내력은 별로 없고, 매사가 충동적이며, 남과 대화가 엇갈리면 쉽게 화를 냅니다.
하지만 또한, 식는 것도 빠릅니다.
40대에서 50대가 되면,
일이 순조롭게 성공한 사람은 독선적인 사람이 되기 쉽고 성미가 조급합니다.
그렇게 해서 원칙을 중요시하고, 물질에 대한 집착심이 강하게 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과대망상에 빠지는 자도 있고, 혹은, 요령 있게 처세하는 자도 나옵니다.
50대에서 70대에는, 각 연대별로 드러난 성격이 때에 따라 나타나며,
가장 강한 마음에 뿌리가 내린 성격이 70대 정도가 되면 표면화해서,
자식들과 충돌하거나, 고독에 빠지는 사람도 나옵니다.
이상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연대별의 성격은, 한 가지 예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에 따라서는 이러한 버릇이 서로 앞 뒤 순서가 바뀌는 수도 있으니,
반드시 일정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응석꾸러기로 자랐다는 한가지 사실에 의해서,
이와 같은 여러 가지의 성격이 각 연대에 따라 발생하고,
그 사람의 카르마, 결점을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한편 가정환경이, 경제적으로 빈곤하거나,
양친이 냉정한 가정에서 성장하면, 저절로 참고 견뎌야하는 인내를 강요당하게 되며,
친구들이 부럽고, 이로 인해 10세 무렵까지는, 어둡고 폐쇄적인 성격을 형성해 버립니다.
친구가 적고, 적개심만 강해지며, 질투, 원망의 상념이 마음을 지배합니다.
겉보기로는 얌전하지만 속은 고집덩어리입니다.
10살에서 20살이 되면, 어떻게든 출세하고 싶다,
친구들보다 앞서고 싶다는 마음이 강력해져서 공부는 남들보다 배로 열심히 합니다.
친구들이 놀 때에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자연히 과묵하게 되어, 차가운 인품이 되어 갑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연대에 노이로제에 걸리는 자도 나옵니다.
그러나, 환경에 이기기 위해서 의지는 강해지며,
내향적 성격이 한층 더 표면으로 나옵니다.
20대에서 30대가 되면, 사람에 따라서는, 정신분열증에 걸려 고생합니다.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아무리 하여도 남을 믿지 않고,
말도 그다지 하지 않기 때문에 고독하게 됩니다.
일에는 신중하지만 호기심이 강하고,
그 호기심 때문에 간신히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과 협동해서 뭔가를 한다고 하는 마음이 적기 때문에,
직업도 개인의 능력을 키우려고 하는 것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또 모든 것이 도피적 경향이 됩니다.
그러나 좋은 면을 말한다면 겉모양보다는 실리를 취하는 방향으로 됩니다.
30대에서 40대 사이에는, 대개 곤란에 부딪쳐도, 인내심 강하게, 게다가,
원래 내향적 성격이기 때문에 계획성이 풍부합니다.
일 중심주의로서 가정에 있어서는 엄한 아버지, 혹은 냉정한 어머니가 되기 쉽습니다.
원래 고집이 센 성격이기 때문에, 성을 내면 주위 사람도 놀랄 정도로 강하게 되어,
절대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40대, 50대가 되면, 자기 중심의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남과 타협하는 것이 적고, 남의 실패는 용서하지 않습니다.
가정은 차갑고, 언제나 고독합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진심으로 웃는 일은 적고,
남자의 경우는, 사는 보람은 일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60대, 70대가 되어, 참고 견디는 인내의 성격이 평생토록 붙어 다니면,
자식은 자연히 멀어지고,
말년은 어릴 때의 어두운 환경과 비슷한 심경으로 삶을 끝맺게 됩니다.
응석은 양성(陽性)의 에고라고도 말할 수 있고,
인내는 음성(陰性)의 에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이 양쪽의 성격을 함께 갖고 있어서,
실패와 성공, 실의(失意)와 희망의 인생 속에서 그 성격을 만들어 가는 것이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고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단지, 어릴 때 형성된 성격이 뿌리에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인가 진한 성격을 갖고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결점이, 어느 연대에 어떻게 크게 팽창했는가,
또 어릴 때는 울보였는가,
남의 물건을 탐내지 않았는가,
부모님을 괴롭히지 않았는가, 를 살펴보면,
자신의 에고가 양성인가 음성인가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자신의 결점이나 카르마라고 하는 것을 수정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반성의 길잡이 - 다카하시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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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카하시신지님의실천!팔정도! 원문보기 글쓴이: 오로지팔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