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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선단겸(薛宣斷縑)
설선이 비단을 끊는다는 뜻으로, 잘잘못을 명확히 한다는 말이다.
薛 : 성 설(艹/13)
宣 : 베풀 선(宀/6)
斷 : 끊을 단(斤/14)
縑 : 합사비단 겸(糸/10)
사람이 모여 살다보면 다툼이 생기고 재판까지 가는 송사(訟事)가 생긴다.
서사불이(誓死不二)같이 추상같이 규정대로만 판결하면 억울함이 덜 하겠지만 ‘한편 말만 듣고 송사 못 한다’는 말대로 시비 가리기는 어렵다. 모두 자기만 옳고 재판에 이기기 위해 거짓과 모략까지 동원하니 말이다.
간혹 명판결과 명판관 이야기도 따른다. 공자(孔子)는 제자 자로(子路)를 몇 마디 말로써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라며 편언절옥(片言折獄)이라 했다.
이스라엘의 솔로몬(Solomon)은 한 아이를 두고 두 여자가 서로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송사를 명쾌히 해결해 지혜의 왕이 되었다.
중국에서 어려운 송사를 슬기롭게 해결한 재판 기록집 중에 송(宋)나라 정극(鄭克)이 편찬한 절옥귀감(折獄龜鑑)이 있다.
고대부터의 주요사건을 망라하고 있다. 절옥은 역적이나 살인범 등의 중범죄를 다스려 처리하던 일을 가리킨다. 설선(薛宣)이란 사람이 비단을 끊었다(斷縑)는 사건도 그 중 하나이다.
오대(五代) 때 화응(和凝) 부자가 엮은 의옥집(疑獄集)에도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단겸추청(斷縑追聽)이란 제목이다. 비단을 끊어 범인을 잡은 이야기를 보자.
전한(前漢)시대 설선이 태수로 있던 임회(臨淮)란 곳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사람이 비단을 팔기 위해 장으로 가던 중 소낙비를 만났다. 근처 인가가 없어 비단을 펼쳐 비를 피했다.
한 사나이가 흠뻑 젖은 채 같이 피하자고 애걸하여 허락했다. 비가 개어 갈 길을 떠날 때 시비가 벌어졌다. 비를 피하게 해 준 사나이가 비단이 자기 것이라며 우겼다.
할 수 없이 비단 장수는 태수를 찾아갔다. 설선은 ‘아전을 불러 비단을 반으로 자르게 한 뒤 미행하게 해 이야기를 듣게 했다(呼騎吏中斷縑, 人各與半, 使追聽之)’.
비단 장수는 반을 뺏겨 불만을 늘어놓았고 사나이는 싱글벙글했다. 설선은 사나이를 잡아 족쳐 범행을 자백 받았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는 속담과 같이 이 사나이는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
어느 편이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도 이처럼 시비가 커지는데 대부분의 사건은 잘잘못이 아리송하고 뒤엉킨 경우가 많다. 억울한 일이 없도록 가려주는 현명한 판관이 많아야 정의사회가 실현된다.
⏹ 설선단겸(薛宣斷縑)
설선(薛宣; 한나라 태수)이 비단을 끊었다는 말로, 잘못을 찾아낸 방법을 의미하는 말이다.
출전 : 절옥구감(折獄龜鑑) 卷6
지인논세(知人論世)
적반하장으로 출발한 인사(人事)
서한시대의 일이다. 갑이란 사람이 비단을 내다팔려고 시장으로 가고 있었다. 반도 가지 못했는데 야속하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피할 곳을 찾지 못한 갑은 하는 수 없이 비단을 펼쳐서 우비처럼 걸쳐 비를 막았다.
그때 저만치에서 한 남자가 달려오는데 몽땅 젖은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을이란 이 사내는 갑에게 자기도 함께 비를 피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갑은 비단 자락을 들어 올려 을을 맞아들여서 비를 피하게 했다.
이윽고 비가 개자 갑은 서둘러 비단을 등에 메고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을이 갑의 등짐을 잡아당기며 길을 막았다. 그 비단은 자기 것이니 내놓고 가라는 것이었다.
을은 한사코 그 비단이 자기 것이라고 우겼고, 두 사람 사이에 주먹질까지 오갔다. 구경꾼들이 몰려들었고, 상황은 말로도 주먹으로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 군 태수 설선(薛宣)이 가마를 타고 지나가다가 두 사람이 싸우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싸우게 된 이유를 듣고 난 설선은 "너희 두 사람 말에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럼 그 비단에 무슨 표시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 대답이 모두 같았다. 설선은 "이렇게 하자. 너희들이 모두 그 비단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포기하려 하지 않으니 본관이 판결을 내리겠다. 너희 두 사람 이의 없겠지?"라고 다짐을 받았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설선은 부하에게 칼을 가지고 오게 해서는 비단을 반으로 자르게 하고는 "똑같이 반반씩 나누었으니 더 이상 싸우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설선은 바로 사람을 시켜 두 사람의 뒤를 미행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오게 했다. 갑은 만나는 사람마다 불만이 가득 찬 얼굴로 설선을 욕했다. 반면 을은 싱글벙글하며 비단을 싼값에 팔았다.
염탐꾼의 보고를 들은 설선은 두 사람을 다시 불러들였다. 태수를 욕한 갑은 잔뜩 겁을 먹었다. 그러나 설선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설선은 을을 향해 호통을 치며 당장 곤장을 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薛宣斷縑
前漢時, 臨淮有一人, 持匹縑到市賣之, 道遇雨, 披覆. 後一人至, 求共庇蔭. 雨霽當別, 因相爭鬥, 各雲我縑, 詣府自言. 太守薛宣核實良久, 莫肯首服. 宣曰: 縑直數百錢, 何足紛紜, 自致縣官. 呼騎吏中斷縑, 人各與半, 使追聽之. 後人曰: 太守之恩. 縑主乃稱冤不已. 宣知其狀, 詰之服罪. 舊出風俗通.
(折獄龜鑑/卷六)
'물에 빠진 놈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걸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하는데 '도적놈이 도리어 몽둥이를 들고 큰소리를 친다'는 뜻이다. '방귀 뀐 놈이 성 낸다'는 속담도 같은 맥락이다.
새 정권의 밑그림이 나왔다. 그런데 벌써부터 적반하장의 인사가 눈에 띈다. 5년 전 "바닷물을 다 마셔야 맛을 아는가? 한 숟갈 먹어 보면 알지!"라고 했던 말을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나마 설선 같은 현명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 薛(성씨 설/맑은대쑥 설)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설)로 이루어졌다. 풀의 이름을 뜻한다. 그래서 薛(설)은 ①성(姓)의 하나 ②나라의 이름 ③맑은대쑥(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④우장(雨裝: 비를 맞지 아니하기 위해서 차려 입은 복장) ⑤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송도 설씨가 시작한 데서 나온 말로 쇠고기나 소의 내장을 고명하여 꼬챙이에 꿰어 구운 음식을 설적(薛炙), 어선御膳을 맡아보던 내시부內侍府의 한 벼슬을 설리(薛里), 신라를 그 당시에 중국에서 이르던 이름을 설라(薛羅), 고려 때 궁중에 번을 갈마들어 숙위에 당하던 집사를 겁설(怯薛), 설선이 비단을 끊는다는 뜻으로 잘잘못을 명확히 한다는 말을 설선단겸(薛宣斷縑) 등에 쓰인다.
▶️ 宣(베풀 선)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亘(선)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亘(선)은 빙 둘러싸는 일을, 갓머리(宀; 집, 집 안)部는 건물(建物), 또는 건물이 빙 둘러싸고 있는 천자(天子)의 방, 나중에 널리 퍼지다의 뜻으로 쓰였다. 그래서 宣(선)은 ①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은혜 따위를)끼치어 주다 ②널리 펴다 ③떨치다, 발양(發揚)하다 ④밝히다 ⑤임금이 말하다, (임금이)하교(下敎)를 내리다 ⑥머리가 세다, 머리털이 희끗희끗하다 ⑦밭을 갈다 ⑧쓰다, 사용하다 ⑨통하다, 통해지다 ⑩조서(詔書), 조칙(詔勅) ⑪임금의 말 ⑫궁전(宮殿), 임금이 거처하는 곳 ⑬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와 나라 사이나 사회 집단 사이 또는 개인 상호 간의 결정을 대외적으로 공포하는 일을 선언(宣言), 사상과 이론과 지식 또는 사실 등을 대중에게 널리 인식시키는 일을 선전(宣傳), 선언하여 널리 알림 또는 소송법 상 공판정에서 재판장이 판결을 알림을 선고(宣告), 세상에 널리 펴 알림을 선포(宣布), 공개적으로 맹세하는 일을 선서(宣誓), 권위나 명성 등을 드러내어서 널리 떨치게 함을 선양(宣揚), 종교를 선전하여 널리 폄을 선교(宣敎), 세상에 널리 선포함을 선홍(宣弘), 명예를 널리 드날림을 선예(宣譽), 일정한 사실을 분명하게 널리 말하여 밝힘을 선명(宣明), 널리 사람들에게 선포하여 알림을 선시(宣示), 널리 세상에 알림을 광선(廣宣), 사실의 내용을 빠짐 없이 갖추어 선포함을 구선(具宣), 간행하여 반포함을 간선(刊宣), 말로써 선포함을 구선(口宣), 철에 따라 몸을 잘 조리함을 절선(節宣), 전쟁을 개시한다는 것을 정식으로 선언 공포하는 일을 선전포고(宣戰布告), 마이크 장치 등을 이용하여 거리에서 선전을 하는 일을 가두선전(街頭宣傳), 혼인이 성사 되었음을 정식으로 표명함을 성혼선언(成婚宣言), 자기에 대한 것을 스스로 선전하는 일을 자기선전(自己宣傳), 나라의 위세를 널리 드러냄을 국위선양(國威宣揚), 터무니없이 또는 출처를 밝히지 않고 비밀리에 하는 선전을 흑색선전(黑色宣傳), 믿을 만한 출처나 자료를 가지고 하는 선전을 백색선전(白色宣傳), 확실한 출처나 근거는 밝히지 않고 아리송하게 하는 선전을 회색선전(灰色宣傳), 설선이 비단을 끊는다는 뜻으로 잘잘못을 명확히 한다는 말을 설선단겸(薛宣斷縑) 등에 쓰인다.
▶️ 斷(끊을 단)은 ❶회의문자로 부수(部首)를 나타내는 斤(근; 도끼, 끊는 일)과 계(실을 이음)의 합자(合字)이다. 나무나 쇠붙이를 끊다, 일을 해결함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斷자는 ‘끊다’나 ‘결단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斷자는 㡭(이을 계)자와 斤(도끼 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㡭자는 실타래가 서로 이어져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잇다’나 ‘이어나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실타래가 이어져 있는 모습을 그린 㡭자에 斤자를 결합한 斷자는 실타래를 도끼로 자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斷(단)은 (1)결단(決斷) 단안 (2)번뇌(煩惱)를 끊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애는 일 등의 뜻으로 ①끊다 ②결단하다 ③나누다 ④나누이다 ⑤결단(決斷) ⑥단연(斷然: 확실히 단정할 만하게) ⑦조각 ⑧한결같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끊을 절(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이을 계(繼), 이을 속(續)이다. 용례로는 일단 결심한 것을 과단성 있게 처리하는 모양을 단호(斷乎), 먹는 일을 끊음으로 일정 기간 음식물의 전부 또는 일부를 먹지 아니함을 단식(斷食), 딱 잘라서 결정함을 단정(斷定), 죄를 처단함을 단죄(斷罪), 유대나 연관 관계 등을 끊음을 단절(斷絶), 결단하여 실행함을 단행(斷行), 끊어졌다 이어졌다 함을 단속(斷續), 확실히 단정할 만하게를 단연(斷然), 끊어짐이나 잘라 버림을 단절(斷切), 생각을 아주 끊어 버림을 단념(斷念), 열이 전도되지 아니하게 막음을 단열(斷熱), 주저하지 아니하고 딱 잘라 말함을 단언(斷言), 교제를 끊음을 단교(斷交), 어떤 사물의 진위나 선악 등을 생각하여 판가름 함을 판단(判斷), 막아서 멈추게 함을 차단(遮斷),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여 병상을 판단함을 진단(診斷), 중도에서 끊어짐 또는 끊음을 중단(中斷), 옷감 따위를 본에 맞추어 마름을 재단(裁斷), 옳고 그름과 착함과 악함을 재결함을 결단(決斷), 끊어 냄이나 잘라 냄을 절단(切斷), 남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자기 혼자의 의견대로 결단함을 독단(獨斷), 잘라서 동강을 냄을 분단(分斷), 가로 자름이나 가로 건넘을 횡단(橫斷),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으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게 견딜 수 없는 심한 슬픔이나 괴로움을 단장(斷腸),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베를 끊는 훈계란 뜻으로 학업을 중도에 폐함은 짜던 피륙의 날을 끊는 것과 같아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훈계를 이르는 말을 단기지계(斷機之戒), 긴 것은 자르고 짧은 것은 메워서 들쭉날쭉한 것을 곧게 함을 이르는 말을 단장보단(斷長補短), 남의 시문 중에서 전체의 뜻과는 관계없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을 따서 마음대로 해석하여 씀을 일컫는 말을 단장취의(斷章取義), 단연코 용서하지 아니함 또는 조금도 용서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단불용대(斷不容貸), 떨어져 나가고 빠지고 하여 조각이 난 문서나 글월을 일컫는 말을 단간잔편(斷簡殘篇), 머리가 달아난 장군이라는 뜻으로 죽어도 항복하지 않는 장군을 이르는 말을 단두장군(斷頭將軍), 단발한 젊은 미인으로 이전에 흔히 신여성의 뜻으로 쓰이던 말을 단발미인(斷髮美人), 오로지 한 가지 신념 외에 다른 마음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단단무타(斷斷無他), 단단히 서로 약속함을 이르는 말을 단단상약(斷斷相約), 조금이라도 다른 근심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단무타려(斷無他慮), 무른 오동나무가 견고한 뿔을 자른다는 뜻으로 부드러운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이김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오동단각(梧桐斷角), 어물어물하기만 하고 딱 잘라 결단을 하지 못함으로 결단력이 부족한 것을 이르는 말을 우유부단(優柔不斷), 말할 길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너무나 엄청나거나 기가 막혀서 말로써 나타낼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언어도단(言語道斷), 죽고 사는 것을 가리지 않고 끝장을 내려고 덤벼듦을 일컫는 말을 사생결단(死生決斷), 어미원숭이의 창자가 끊어졌다는 뜻으로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슬픔과 애통함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모원단장(母猿斷腸), 시작한 일을 완전히 끝내지 아니하고 중간에 흐지부지함을 이르는 말을 중도반단(中途半斷) 등에 쓰인다.
▶️ 縑(합사 비단 겸)은 형성문자로 缣(겸)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실 사(糸; 실, 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兼(겸)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縑(겸)은 ①합사(合絲) 비단(緋緞) ②생명주(生明紬: 생사로 짠 명주) ③비단(緋緞)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합사 비단의 옷을 겸의(縑衣), 비단과 종이를 겸저(縑楮), 금과 비단을 금겸(金縑), 임금의 조서로 누런 비단에 쓰기 때문에 이르는 말을 용겸(龍縑), 설선이 비단을 끊는다는 뜻으로 잘잘못을 명확히 한다는 말을 설선단겸(薛宣斷縑)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