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표현하는 순우리말
장마철인 오늘도 정체전선의 영향을 받아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전국 대부분 지역에 장맛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내일도 전국에 장맛비가 내리겠지만 밤부터는 소강상태를 보이는 곳도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날씨의 변화에 따라 삶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유난히 날씨와 관련된 순우리말이 많이 존재합니다. 특히, 비로 한 해 농사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었던 만큼 비를 세심하게 관찰한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비를 표현하는 다양하고 예쁜 순우리말에 대해 심도있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비가 내리는 시기나 상황을 묘사하는 순우리말이 있습니다. 장맛비나 소나기처럼 여름철에 내리는 비를 여름비라고 하는데, 이 여름비는 예로부터 '잠비'라고 불려 왔습니다. 계절에 따라 내리는 비를 일컫는 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봄에는 비가 내리면 농사일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일비’, 여름에는 비가 내리면 일을 하지 못하고 낮잠을 잘 수 있는 비라고 해서 '잠비', 가을에는 비가 내리면 풍성하게 수확한 작물로 떡을 해서 먹게 된다는 ‘떡비’, 그리고 겨울에는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처마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인다고 해서 ‘술비’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비가 내리는 시기뿐만 아니라 상황을 묘사하는 순우리말도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단비’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때에 알맞게 내리는 비를 표현하는 단비 외에도 ‘약비’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것은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처럼 아주 요긴한 때에 내리는 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또 장마로 인해 큰 홍수가 난 뒤 한참 쉬었다가 한바탕 쏟아지는 비를 표현하는 말로 ‘개부심’이라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한 단어도 존재합니다.
비가 내리는 양을 함께 표현하는 순우리말로 비의 양과 관련된 용어 역시 다양합니다. 안개처럼 부옇게 보일 정도로 아주 약하게 내리는 비는 ‘안개비’, 아주 가늘게 내리는 비는 ‘이슬비’라고 합니다. 조금 낯선 단어지만 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늘게 내리는 비를 가리켜 ‘는개’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랑비’는 단어 그대로 가늘게 내리는 비를 표현하는 단어인데, ‘보슬비’나 ‘부슬비’, ‘실비’도 가늘게 내리는 비를 표현하는 가랑비와 비슷한 단어들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도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억수같이 쏟아진다’라는 표현에서 사용하는 ‘억수’라는 단어입니다. 억수는 단어 그 자체로 물을 퍼붓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를 의미하고, 장대처럼 굵고 거세게 쏟아지는 비를 가리켜 ‘장대비’라고 표현하는데 비슷한 표현으로 ‘작달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빗발이 아주 굵게 쏟아지는 비를 ‘달구비’, 채찍을 내리치듯이 굵고 세차게 내리는 비는 ‘채찍비’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비가 내리는 형태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는 순우리말은 다양합니다. 눈이 세찬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눈보라’라고 하듯이, 세찬 바람에 불려 흩어지는 비를 ‘비보라’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싸라기처럼 포슬포슬 내리는 눈을 가리키는 표현인 ‘싸락눈’처럼 싸라기처럼 내리는 비를 ‘싸락비’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나기’ 역시 이미 알고 있듯이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그치는 비를 표현하고, 조금 다르지만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한 줄기씩 내리는 많지 않은 양의 소나기는 ‘산돌림’이라고 합니다. 햇볕 사이로 잠깐 내리다가 그치는 비를 가리켜 ‘여우비’라고 말하는데, 비슷한 표현으로 한쪽에서 해가 비치면서 내리는 비를 ‘해 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비 꽃’ 같은 예쁜 단어도 있습니다. 한 방울 한 방울 꽃잎이 떨어지듯이 비가 시작될 때 몇 방울씩 떨어지는 비를 나타냅니다.
비가 내리면 왠지 모르게 감성이 자극되는 것은 비가 내리는 시기나 상황, 모양이나 형태, 내리는 양에 따라 다양하게 비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말을 공부할 때 보통은 어렵다고 합니다. 형용사의 다양함에 놀 라고, 한 단어에 따른 수많은 비슷한 표현에 놀라 자빠집니다. 비에 관련된 단어가 이리도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외국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장맛비'로 인해 지치기 쉬운 요즘, 빗 속에 숨어있는 생소하고 낯설지만 다양한 순우리말과 함께, 마음만은 맑고 싱그러운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기쁘고 행복한 불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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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