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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동
 
 
 
카페 게시글
서예 세상 스크랩 충성심을 표현한 시조모음
박경동 추천 0 조회 2,018 10.02.01 10: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충성심을 표현한 시조
 
제목
 
시조 및 지은이
 
해설
이 몸이
죽고 죽어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려고 추진하고 있을 때 고려 충신인 포은의 마음을 떠보려고 이방원이 '하여가'를 그에게 보냈으나, 정몽주는 화답가로서 이 '단심가'를 지어 읊었다.
정몽주(1337∼1392)-고려 말기 문신·학자.
삭풍은
나무 끝에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 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 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에라
북풍이 나뭇가지를 울리고 흰눈이 온 천지를 뒤덮은 겨울 달 밝은 황량한 밤에, 변경을 지키며 오랑캐를 노려보고 있는 용맹한 장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김종서(1390∼1453)-조선 초기 문신.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삼도 수군 통제사로 총지휘 본영이었던 한산도의 수루에 올라 앉아서, 왜적의 침입으로 인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읊은 작품이다.
이순신(1545∼1598)-조선 중기 무신.
 이 몸이
죽어 가서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문종의 고명을 받은 충신으로, 수양 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는 정변에 대하여 비분강개하여 사육신으로서 단종 복위에 힘쓰고 있을 무렵에 우의적으로 읊은 시조이다.
성삼문(1418∼1456)-조선 초기 문신.
녹이상제
살찌게 먹여
   녹이상제 살찌게 먹여 시냇물에 씻겨 타고
   용천설악 들게 갈아 둘러메고
   장부의 위국충절을 세워 볼까 하노라
'호기가'라고도 불리는 노래인데, 녹이와 상제 같은 준마를 살찌게 먹여 시냇물에 깨끗이 씻기어 타고, 용천과 설악 같은 좋은 검을 잘 들게 갈아서 대장부의 나라 위한 충절을 세워 보자는 것이다. 무인의 씩씩한 기상과 불타는 충성심이 직설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최영(1316∼1388)-고려시대 무신·재상.
까마귀
눈비 맞아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듯 검노매라
   야광 명월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고칠 줄이 이시랴
왕의 위치에 있는 세조를 흉칙스러운 '까마귀'에다 비유하는 동시에 자기가 목숨을 바쳐 옹호하려는 단종이야말로 만고불변의 정통성을 지닌 떳떳한 임금임을, 밤에도 암흑 속에서도 빛나는 '야광명월'에 비유한 용기와 재치가 비범하다.
박팽년(1417~1456)조선 초기 문신.
가노라
삼각산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병자호란 당시 예조판서였던 작가가 끝까지 싸우기를 주장하였으므로 척화신으로 몰려 청나라 심양에 봉림대군, 소현세자와 같이 볼모로 잡혀간다.  이 시조는 그때 읊은 노래인데 '충의가'라 불린다.
김상헌(1570∼1652)-조선 중기 문신.
내 마음
베어내어
   내 마음 베어내어 저 달을 맹글고저
   구만리 장천에 번 듯이 걸려 있어
   고운님 계신 곳에 가 비치어나 보리라
임진왜란을 전후한 당시의 조정과 나라의 몰골이 얼마나 어수선하고 어지러웠기에 송강에게 이러한 시상을 낳게 한 것일까. 고운 님은 물론 선조 임금을 가리키는 것이고보면, 이로써 임금에 대한 송강의 우국충절을 역력히 알 수 있다.
정철(1536∼1593)-조선 중기 문신·학자·시인.
철령
높은 봉에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를 비삼아 띄어다가
   님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지은이가 광해군 5년에 인목대비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갈 때, 철령 고개를 넘으면서 그 원통한 심정을 읊은 것이다.
이항복(1556∼1618)-조선 중기 문신.
천만리
머나먼 길에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아이다
   저 물도 내 안 같아 울어 밤길 예놋다
폐위된 단종이 영월로 유배될 때 의금부도사로서 호송하였다. 이 시조는 그 때의 울적한 심정을 읊은 것이다.
왕방연(?∼?)-조선 초기 문신.
 
효도를 표현한 시조
 
제목
 
시조 및 지은이
 
해설
반중
조홍감이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옛날 중국 오나라 육적이 6세 때에 원술의 집에서 접대로 내놓은 유자 세 개를 슬그머니 품안에 숨겼다가 발각된 후, 어머니에게 갔다 드리고 싶어 그랬다는 '육적 회귤'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이의 지극한 효성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박인로(1561∼1642)-조선 중기의 문인.
왕상의
잉어 잡고
   왕상의 잉어 잡고 맹종의 죽순 꺾어
   검던 머리 희도록 노래자의 옷을 입고
   일생에 양지성효를 증자같이 하리라.
중국의 유명한 효자인, 왕상, 맹종, 노래자, 증자 못지 않게 나도 그들처럼 효도를 해야겠다는 다짐이다. 효는 모든 덕의 근본이기에 훌륭한 성현들은 모두 효자였다는 사실을 유념해야겠다.
박인로(1561∼1642)-조선 중기의 문인.
세월이
여류하니
   세월이 여류하니 백발이 절로 난다
   뽑고 또 뽑아 젊고자 하는 뜻은
   북당에 친재하시니 그를 두려워함이라
자식된 몸으로 어버이에게 늙어 보인다는 것은 어버이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이니, 일종의 불효가 아닐 수 없다. 옛사람의 지극한 효성을 볼 수 있다.
김진태(?~?)-조선 중기 문신.
 어버이
살아실제
   어버이 살아실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부모님이 나를 낳으시고 정성스레 길러 주셨으니, 끝없는 은혜를 언제 어느 곳에 모두 갚아야 할까를 노래하면서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도를 다하여야 한다는 효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정철(1536∼1593)-조선 중기 문신·학자·시인.
 이고 진
저 늙은이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경로 사상을 일깨워주기 위한 노래로 초중장에서는 짐을 이고 진 노인의 힘겨운 모습을 나타내었고, 종장은 그러한 늙음에 대한 연민으로 노인을 공경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정철(1536∼1593)-조선 중기 문신·학자·시인.
  어버이
날 낳으셔
   어버이 날 낳으셔 어질과저 길러 내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몸 나서 어질소냐
   아마도 지극한 은덕을 못내 갚아 하노라.
어버이 날 낳으셔 어떻게든 어진 사람되라고 고이고이 길러 내시니, 두 분이 아니시면 어찌 내가 사람다운 사람될까보냐? 이 지극한 은혜 어이 다 갚을꼬?
낭원군(1640~1699)-선조 손자 인흥군 영의 자.
뉘라서
가마귀를
   뉘라서 가마귀를 검고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미물인 까마귀도 효도를 행하는데 사람 가운데에는 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많다
박효관(1781-1880)-조선 고종 때 가객.
뫼흔
길고 길고  
   뫼흔 길고 길고 물은 멀고 멀고
   어버이 그린 뜻은 많고 많고 하고 하고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 울고 가느니
산은 끝없이 길게길게 이어져 있고, 물은 멀리 굽이굽이 이어져 있구나. 부모님 그리운 뜻은 많기도 많다. 어디서 처량한 외기러기는 울어울어 나의 마음을 구슬프게 하는가?
윤선도(1587∼1671)-조선 중기 문신·시조작가.
어버이
그릴 줄을  
   어버이 그릴 줄을 처엄부터 알아마는
   님군 향한 뜻은 하날이 삼겨시니
   진실로 님군을 잊으면 귀 불효인가 여기노라
어버이 그리워할 줄을 처음부터 알았지마는, 임금 향한 뜻은 하늘이 만드셨으니, 진실로 임금을 잊으면 그것이 불효인가 하노라.
윤선도(1587∼1671)-조선 중기 문신·시조작가.
 설워라
설워라 해도
   설워라 설워라 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무덤 풀 우군 오늘 이 '살' 붙어 있단 말가.
   빈 말로 설은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
부모님이 돌아가심에 서러워 눈물을 흘려도 아들은 어머니와 한 몸이 될 수 없는 법, 그래서 어머니 누워 계시는 무덤 앞에 와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살아 생전 효도하지 못한 자책의 눈물이다.
정인보(1892∼1950?)-한학자·국학자.
 
교훈을 표현한 시조
 
제목
 
시조 및 지은이
 
해설
가마귀
검다 하고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조선 건국의 개국 공신이며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직의 작품으로 새 왕조에 가담하여 두 왕조를 섬기게 된 자신의 자기 합리화와 정당성을 노래했다
이직(1362∼1431)-고려 말 조선 초 문신.
 풍파에
놀란 사공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웨라
   이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갈기만 하리라
사공과 마부를 문,무 관직에 비유하여 심한 당파 싸움 때문에 직책 완수가 힘드니, 벼슬을 버리고 차라리 초야에 묻혀 살리라는 숨은 뜻을 풍자적으로 표현하였다.
장만(1566∼1629)-조선 중기 문신.
 공명을
즐겨 마라
   공명을 즐겨 마라 영욕이 반이로다
   부귀를 탐치 마라 위기를 밟느니라
   우리는 일신이 한가커니 두려운 일 없에라
부귀와 공명을 탐하지 않는 홀가분하고 편안한 무욕의 경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김삼현(?∼?)-조선시대의 시인.
  옥에
흙이 묻어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고야
   두어라 알이 있을 것이니 흙인 듯이 있거라
초야에 묻혀 있는 인재도 언젠가는 알 사람이 있고 햇볕 볼 날이 있을 것이니, 구태여 나서려 할 것이 무엇이랴. 흙 속에 묻혔어도 옥은 옥인 것이다.
윤두서(1668∼1715)-조선 중기 화가.
태산이
높다하되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스스로 꾸준히 노력하면 필경에는 성공을 거두고야 만다는 교훈을, 높고 큰 태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하여 시사하고 있다.
양사언(1517∼1584)-조선 중기 문신·서예가.
 마을
사람들아
   마을 사람들아 올흔 일 하쟈스라.
   사람이 되여 나셔 올치 옷 못하면
   마소를 갓곳갈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을 하자구나. 사람으로 태어나서 옳지 못하면, 말과 소에게 갓이나 고깔을 씌어 놓고, 밥을 먹이는 것과 다를게 무엇이 있겠는가?
정철(1536∼1593)-조선 중기 문신·학자·시인.
 잘 가노라
닷지 말며
   잘 가노라 닷지 말며 못 가노라 쉬지 말라
   브데 긋지 말고 촌음을 앗겻슬아
   가다가 중지 곳 하면 안이 간만 못한이라.
잘 간다고 달리지 말며 못 간다고 쉬지 마라 부디 그치지 말고 시간을 아껴쓰라. 가다가 중지를 하면 아니 감만 못하니라.
김천택(?∼?)-조선 영조 때의 시조작가·음악가.
동창이
밝았느냐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동쪽의 창이 밝아 있느냐, 종달새가 높이 떠 울며 지저귀는구나. 소를 먹이는 아이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느냐? 고개 너머 밭이랑을 언제 다 갈려고 늦잠을 자고 있는 것이냐?
남구만(1629∼1711)-조선시대의 문신·서예가.
  가마귀
싸우는 골에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가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됴히 씨슨 몸을 더러일가 하노라.
까마귀와 백로의 대조로 소인과 군자를 비유하고 있으며, 끝까지 군자로서의 삶을 지켜가려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나쁜 무리에 어울리지 말라는 경계가이다
정몽주 어머니
 벼슬을
저마다 하면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하리 뉘 이시며
   의원이 병고치면 북망산이 져려 하랴
   아히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사람마다 입신출세를 한다면 나라의 중요한 농사는 누가 지을 것이며, 의원이 병을 다 고친다 해도 죽는 사람이 늘어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는 깊은 속뜻을 질문으로 사람들을 일깨우고 있다.
김창업(1658∼1721)-조선시대 문인·화가.
 
자연을 표현한 시조
 
제목
 
시조 및 지은이
 
해설
농암에
올라 보니
   농암에 올라 보니 노안이 유명이로다
   인사이 변한들 산천이야 가실까
   암전의 모수모구이 어제 본듯 하여라
지은이가 벼슬을 그만 둔 70세 때 고향으로 돌아와 그리던 산수를 보고 감회에 젖어 지은 이른바 '농암가'라는 것이다.
이정보(1693∼1766)-조선 후기 문신·시조작가.
꽃 피면
달 생각하고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 하네
   언제나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하려노
4미는 꽃,술,달,벗을 가리키며 그것들이 고루 갖추어졌다해서 '사미구'라 하였다.
이정보(1693∼1766)-조선 후기 문신·시조작가.
산가에
봄이 오니
   산가에 봄이 오니 자연히 일이 하다
   앞 내에 살도 매며 울 밑에 외씨도 삐고
   내일은 구름 걷거든 약을 캐러 가리라
봄을 맞는 농가의 생동하는 모습이 즐겁기만 하다. 지극히 한국적인 옛농촌의 풍경이 너무나 목가적이다.
이정보(1693∼1766)-조선 후기 문신·시조작가.
우는 것이
뻐꾸기냐
   우는 것이 뻐꾸기냐 푸른 것이 버들숲가
   어촌 두어 집이 냇속에 들락 나락
   말가한 기픈 소에 온갖 고기 뛰노난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고산이 만년에 고향 해남 보길도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지은 40수의 연시조인데 춘사,하사,추사,동사 각 10수로 이루어졌다. 각각은 한폭의 산수화 바로 그것이다.
윤선도(1587∼1671)-조선 중기 문신·시조작가.
 청산도
절로절로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자연 속에서 살고 늙는,모든 것을 대자연에 내맡긴 옛풍류객의 생활태도는 엄숙하면서도 집착이라는 것이 없어서 더욱 좋다. 얼핏보기에는 말장난을 부린 것 같지만 운율을 잘 음미하면 엄숙미가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인후(1510∼1560)-조선 중기 문인·서예가.
 강산
좋은 경을
    강산 좋은 경을 힘센 이 다툴 양이면
    내 힘과 내 분으로 어이하여 얻을소냐
    진실로 금할 이 없을새 나도 두고 노니노라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권력이나 금력 따위에 초연하면서 오로지 자연 속에서 인생을 즐기는 옛선비의 생활 태도가 재치있는 표현으로 잘 그려져 있다.
김천택(?∼?)-조선 영조 때의 시조작가·음악가.
뫼는
높으나 높고
    뫼는 높으나 높고 물은 기나 길다
    높은 뫼 긴 물에 갈길도 그지없다
    님 그려 젖은 소매는 어느 적에 마를꼬
강호를 벗삼고 산수를 즐기던 지은이의 생활이지만 때로 고독이 따르고 그 감정이 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현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경우의 님은 임금으로 확대 해석하여도 무방하다.
허강(1520∼1592)-조선 중기 학자.
강호에
봄이 드니
   강호에 봄이 드니 이몸이 일이 하다
   나는 그물 깁고 아희는 밭을 가니
   뒷뫼에 엄 기는 약은 언제 캐려 하나니
봄철의 전원생활의 목가적인 풍모를 잘 보여주는 시조이다.
황희(1363∼1452)-조선 초기 문신.
산촌에
눈이 오니
   산촌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묻혔에라
   시비를 여지 마라 날 차즈리 뉘 이시리
   밤중만 일편명월이 긔 벗인가 하노라
외로운 산길마저 눈 속에 파묻혀 버린 산마을, 찾아올 사람이 없어 사립문마저 닫아 버린 산방, 고요의 극치요 한 폭의 동양화 그것이다.
신흠(1566∼1628)-조선 중기 문신.
 어리고
성긴 가지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않았더니
   눈 기약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촉 잡고 가까이 할 제 암향조차 부동터라
안민영은 '영매가'로 유명하다. 우아한 풍치와 높은 절개를 보여주는  매화의 아름다움을 나타낸 매화찬이다.
안민영(?∼?)조선 고종 때 가객.
 
생활 자세를 표현한 시조
 
제목
 
시조 및 지은이
 
해설
초암이
적막한데
   초암이 적막한데 벗 업시 혼자 안자
   평조한 닙에 백운이 절로 존다.
   언의 뉘 이 죠흔 뜻을 알 리 잇다 하리오.
세속을 떠나 조용한 초가에 홀로 묻혀 거문고를 연주하고 풍류를 즐기는 그윽함이 잘 나타난 시조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김수장(1690 - ?) 조선 숙종 때의 문인·가인.
산촌에
눈이 오니
   산촌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묻혔에라
   시비를 여지 마라 날 차즈리 뉘 이시리
   밤중만 일편명월이 긔 벗인가 하노라  
외로운 산길마저 눈 속에 파묻혀 버린 산마을, 찾아올 사람이 없어 사립문마저 닫아 버린 산방, 고요의 극치요 한 폭의 동양화 그것이다.
성혼(1535∼1598)-조선 중기 성리학자.
 매아미
맵다 울고
   매아미 맵다 울고 쓰르라미 쓰다 우네
   산채를 맵다는가 박주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속새를 떠난 듯 세속적인 고락을 초월하고 얽매인 데 없이 유유히 소박한 삶을 즐기려는 옛사람의 담담한 생활 철학이 돋보이는 느낌이다.
이정신(?∼?)-조선 후기 가객
 벼슬을
저마다 하면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할 이 뉘 있으며
   의원이 병고치면 북망산이 저러하랴
   아이야 잔가득 부어라 내뜻대로 하히하
 명문 가정의 법도에 얽매인 생활을 박차고 자유로이 살아보려는 몸부림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옛봉건 사회에도 개성의 자유는 어쩔 수가 없었다.
김창업(1658∼1721)-조선시대 문인·화가.
보리밥
풋나물을
   보리밥 풋나물을 알마추 먹은 후에
   바위 끝 물가에 슬카지 노니노라
   그남은 여남은 일이야 부럴 줄이 있시랴
벼슬에도 별로 뜻이 없고 강호에 숨어서 자연을 벗삼고 안빈낙도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윤선도(1587∼1671)-조선 중기 문신·시조작가.
이화에
월백하고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봄밤의 애상적이면서 낭만적인 분위기가 잘 나타난 작품이다.
이조년(1269∼1343)-고려 말기 문신.
 재너머
성궐롱 집에
   재너머 성궐롱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타고
   아이야 네 궐롱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
도도하면서도 넘치는 흥, 호통을 치는  
작가의 호방스러운 모습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정철(1536∼1593)-조선 중기 문신·학자·시인.
짚방석
내지 마라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달 돋아 온다
   아이야 박주 산챌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산촌의 풍류 생활과 안빈낙도하는 옛선비들의 여유만만한 생활 태도가 도통한 경지를 이루고 있다.
한호(1543∼1605)-조선중기 서예가.
추강에
밤이 드니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저어 오노라
말 그대로는 부정적인 표현이지만 그 의미는 오히려 긍정적이며 여유있는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풍성함이 엿보인다. 한마디로 무욕의 경지다.
월산대군(1454∼1488)-조선 전기 종실.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메고 사립 나니
   긴 수풀 찬 이슬에 베잠방이 다 젖는다
   아이야 시절이 좋을 손 옷이 젖다 관계하랴
농촌 생활의 즐거움이 생동한다. 명랑, 경쾌하기 이를 데 없는 주옥 같은 가작이다. 특히 종장의 감칠맛 나는 구절이 훌륭하다
이재(1657∼1730)-조선 중기 학자.
 
사랑을 표현한 시조
 
제목
 
시조 및 지은이
 
해설
꿈에
다니는 길이
   꿈에 다니는 길이 자취곧 날 양이면
   님의 집 창 밖이 석로라도 닳으련마는
   꿈길이 자취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얼마나 다녔으면 돌길이 다 닳을까. 그렇게도 님을 찾았건만 그것이 꿈이라 눈에 띄는 흔적이 없으니 님께서 내 마음을 알아 주실까 하는 안타까움이 나타나 있다.
이명한(1595∼1645)-조선 중기 문신·시인.
님 그린
상사몽이
   님 그린 상사몽이 실솔의 넋이 되어
   추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애절한 마음이 귀뚜라미의 넋이 되어 님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박효관(?~?)-조선 고종 때 가객.
님이
헤오시매
   님이 헤오시매 나는 전혀 믿었더니
   날 사랑하던 정을 뉘손대 옮기신고
   처음에 ?시던 것이면 이대도록 설오랴
남녀 사이의 애정관계를 읊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지은이의 처지로 보아 정치적인 환경에서 받은 충격을 노래한 것으로 봄이 바람직할 것이다.
송시열(1607∼1689)-조선 중기 문신·학자.
 마음이
어린 후이니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에 어느 님 오리마난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귄가 하노라
자신에게 글을 배우려 오던 황진이를 생각하며 지은 시조이다. 학문밖에 모르는 서화담도 황진이의 여성적인 매력에 흔들렸으나 깨끗한 애정으로 승화시킨 점이 화담의 인격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서경덕(1489∼1546)-조선 초기 학자.
뫼는
높으나 높고
   뫼는 높으나 높고 물은 기나 길다
   높은 뫼 긴 물에 갈길도 그지없다
   님 그려 젖은 소매는 어느 적에 마를꼬
강호를 벗삼고 산수를 즐기던 지은이의 생활이지만 때로 고독이 따르고 그 감정이 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현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경우의 님은 임금으로 확대 해석하여도 무방하다.
허강(1520∼1592)-조선 중기 학자.
 청초
우거진 골에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황진이가 살아 있을 적에 교분이 있던 지은이가 평안 도사로 부임하는 길에 풀숲에 덮여 있는 황진이의 무덤을 지나면서 읊은 시조라고 한다. 인생무상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임제(1549∼1587)-조선 중기 문신·시인.
청춘에
곱던 양자
   청춘에 곱던 양자 님으로야 다 늙거다
   이제 님이 보면 날인 줄 알으실까
   아모나 내 형용 그려다가 님의손대 드리고저
젊어서 그리던 님을 늙어서 생각한다면 이런 넋두리가 나올 법도 하다. 임금에 대한 사모로 보아도 무방하다.
강백년(1603∼1681)-조선 중기의 문신.
임 그려
얻은 병을  
   임 그려 얻은 병을 약으로 고칠쏜가
   한숨이야 눈물이야 오매에 맺혔세라
   일신이 죽지 못한 전은 못 잊을까 하노라
사랑은 예나제나 그 이면적 모습은 같다. 얼마나 그리움이 깊었으면 죽기 전엔 못 잊겠다 그리 했겠는가
이정보(1693∼1766)-조선 후기 문신·시조작가.
녹양이
천만산들
   녹양이 천만산들 가는 춘풍 잡아매며
   탐화봉접인들 지는 곳을 어이하리
   아모리 사랑이 중한들 가는 님을 잡으랴
만남에서 헤어짐까지의 과정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 종장에 가서 사랑이 중요하다고 해도 떠나는 임을 억지로 잡을 수 없다며 체념적인 자세를 보인다.
이원익(1547∼1634)-조선 중기 문신.
  사랑이
거짓말이
   사랑이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
   꿈에 와 뵌단 말이 그 더욱 거짓말이
   날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보이리

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거짓말이로다. 꿈속에 와서 보인다는 것은 더더욱 거짓말이로다. 나와 같이 잠도 못 이루는 사람이 어느 겨를에 꿈을 꾼단 말인가.
김상용(1561∼1637)-조선 중기 시대의 문신.
 
여류들의 사랑을 표현한 시조
 
제목
 
시조 및 지은이
 
해설
청산리
벽계수야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당시 종친의 한 사람인 벽계수라는 이가 하도 근엄하여 딴 여자를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높았다. 마침 그가 개성에 와서 만월대를 산책할 때 황진이가 이것을 알고 일부러 따라가서 이 노래를 건넸더니 벽계수는 그의 시와 미모에 끌려 하룻밤의 시흥을 돋구었다고 한다.
황진이(?∼?)-조선 중기 시인(기명은 명월).
산은
옛산이로되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매라
변하지 않는 산과 변하는 물을 대비시켰다. 보고 싶은 사람도 물과 같아서 가면 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황진이(?∼?)-조선 중기 시인(기명은 명월).
 청산은
내 뜻이요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니져 우러 예어 가는고
 푸른 산은 나의 뜻이요, 푸른 물은 님의 정과 같도다. 물이야 흘러 가더라도 산이야 변하겠는가? 하지만 흘러가는 물도 자기가 놀던 산을 잊지 못하고 울며 흘러가는구나.
황진이(?∼?)-조선 중기 시인(기명은 명월).
 동짓달
기나긴 밤을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님 오시는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상냥한 여인의 섬세한 마음씨가 여지없이 살아 숨쉬는 예술적 향기가 그윽한 주옥같은 노래다.
황진이(?∼?)-조선 중기 시인(기명은 명월).
죽어
잊어야 하랴
   죽어 잊어야 하랴 살아 그려야 하랴
   죽어 잊기도 어렵고 살아 그리기도 어려웨라
   저 님아 한 말씀만 하소라 사생결단 하리라
죽어서 잊어 버려야 할지 살아서 그리워하기만 해야 할지...죽어서 잊기도 어려운 일이요 살아서 그리워하는 일도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 노래한다. 사랑에 빠진 작자의 심정이 절절히 표현되었다.
매화-조선 시대 황해도 곡산 출신 명기.
어이
얼어 자리
   어이 얼어 자리 무스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노라
얼어서 자신다니 어찌된 말씀이오. 원앙침 비취금을  어떡하고 얼어 잔단말이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은 몸을 이불안에서 녹여잘까 하노라
한우(?∼?)-조선 중기 평양 명기
 꿈에
뵈는 님이
   꿈에 뵈는 님이 신의업다 하건마는
   탐탐이 그리올 졔 꿈 아니면 어이보리
   져 님아 꿈이라 말고 자로자로 뵈시쇼
 꿈에서나 보는  님이 어찌 신의있다 할까마는 견디기 힘들만큼 그리울 땐 꿈아니고 다른 방법으로는 어찌 만날 수 있겠는가? 지은이는 님을 향해 꿈에라도 자주 자주 만나게 해달라고 노래한다.
명옥-조선 시대 화성 명기(해주 감사와 연분).
 묏버들
가지 꺽어
   묏버들 가지 꺽어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밖에 심겨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닙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고죽 최경창이 함경도 관찰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자 그를 배웅하면서 날은 저물고 궂은비마저 내리게 되자 그를 그리는 나머지 이 노래와 함께 버들가지를 보냈다고 한다.
홍랑(?∼?)-조선 선조 때 함경도 경성 명기.
산촌에
밤이 드니
   산촌에 밤이 드니 먼데 개 짖어온다
   시비를 열고 보니 하늘이 차고 달이로다
   저 개야 공산 잠든 달을 짖어 무슴하리요
숨막힐 듯한 고요 속에 승화된 외로움이 있다. 깊은 규방에서의 님 그리는 정, 사람 기다리는 한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천금-조선 시대 명기.
 이화우
흩뿌릴 제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임진왜란 대, 의병 지휘의 공으로 통정대부가 된 유희경과 정이 깊었는데 그가 서울로 올라간 뒤 소식이 없으므로 이 시조를 짓고 수절하였다고 한다.
계랑(1513∼1550)-조선 명종 때의 부안 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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