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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색초등학교 총동문회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강신묵21
나는 청춘을 부모님과 난지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세월을 보냈었지요. 형님은 미군부대(용줏골)에 취직을 하여 그곳에서 생활을 하시다, 미군 철수로 직장을 잃고 집으로 들어오시게 되어, 나는 살림을 나게 되었지요. 김매는 아줌마들을 20~30명씩 고용하던 내가, 졸지에 나도 남의 품팔이를 해야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72년도에 결혼하여 이웃집 문간방에 살림을 날 때는, 작은 개다리소반과 정부미(20k납짝보리혼합곡) 한포대와 냄비 따위만 갖고 나왔었지요. 땔감(연탄)도 한 장씩 날라다 때며 쪽마루 밑 연탄아궁이에 밥을 짓고 석유곤로에 국을 끓이는 그것이 고작 이었었는데…….
이번 이사할 때 느꼈지만, 뭐가 그리도 복잡한지……. 이사 전엔 아파트 관리비 정산, 가스비 정산, 신문 우유 거절 통보, 각종 자동이체 해지, 폐기물 처리, 은행 등 주소 변경, 유선방송 전화 인터넷 이전 요청,
이사 후엔 전입신고, 가스연결, 인터넷. 전화. 유선방송. 잠을통. 정수기 설치, 한전과 가스 회사에 복지혜택 신고 등 경비도 만만치 않더군요 나는 아파트 관리비 정산시, 가스비도 같이 계산된 것인 줄로만 알고 있다가 세입자에게 검침을 부탁하여 이사 와서 신고를 했습니다.
그래도 인터넷이 있어서 스캔해 놓은‘복지카드’를 첨부하여 복지혜택 신고를 집에서 처리 할 수 있었고, 가스비 정산도 인터넷뱅킹으로 즉시 처리 하였고, 보험 은행 카드 등 각종 주소 변경도 인터넷으로 일괄로 쉽게처리 하였습니다.
15년 전에 85만원 주고 산 중고 ‘탄노이’ 스피커는 50만원에 팔아버리고,‘산스이’ 앰프와 ‘BOSE’ 스피커 및 CD는 동생 줬고, 마란츠 및 온꾜 앰프와 레코드판은 이영태(28회)가 가져갔습니다.
불필요한 살림살이를 많이 버리고 왔습니다만, 투룸이 워낙 좁아서 남는 물건들은 옥탑(창고)과 옥상에 올려놨습니다. 나의 방은 침대와 책상만 겨우 넣을 수 밖에 없어서 의자 놓을 자리도 없는 관계로, 침대가 의자 노릇도 하지요^^
4층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힘들지만, 운동도 그리 하는데 하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안산아파트 1억5천 전세금을 받아서 8천7백 대출금을 갚았으니, 당장 45만원의 이자 납부가 없어졌고, 남은 돈으로 원룸 세입자들을 월세로 전환 시키고, 앞으로 이것저것 100만원 가까이 수익이 더 생길 것 같아서 이사를 했습니다.
컴퓨터로 그린 '가구배치도'와 이사 갈 약도(주소)를 건네주니까, 이삿짐센타 인부들이 이런것 처움 본다며 모두들 웃더군요....^^ 이사는 복잡하였지요...북박이 한샘장과 소파, 식탁은 봉담 아들네로... 옥상과 창고에 들어가는 물건 따로 분류하고...물건 모두마다 라벨을 붙여 놨지요. 라벨을 보고 분류 배치하느라고 인부들이 고생이 많았지요. 고마워서 약간의 대포값좀 줬습니다.^^ 여러 동문님들 염려덕에 이사는, 차질없이 계획대로 잘~했습니다.
선반 매랴 짐정리 하랴 1주일을 보내고 나니, 몹시 피곤하여 글도 못 올렸습니다. 노동력을 잃은 장애인이 어쩝니까? 이렇게 살아가야지요!^^ 내일은 21회 친구아들 결혼식에 참석 후, 1주일 남은 동안 피로를 풀고 체육대회에 참석하려 합니다. 동문님들! 열정적으로 체육대회를 성원하여 주시고, 그날만큼은 동심으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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