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녹화 보러가자 친구야!
야구든 음악쇼든 거실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TV로 보는게 최고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런 고루한 생각으로 살아와 한번도 녹화현장을 가봐야겠다는 엄두를 내보지 않은
나는. 친구의 제안에 신선하다고 느끼면서도 여의도까지 가야하는 일이
만만치않아 어찌할까 망설이지 않을 수 없는데
티켓 딱 네 장만 얻어서 네 명만 갈 수 있어 쉿! 비밀이야
친구가 날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그 마음씨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으니 어찌 부정적인
답변을 하랴. 그래그래 쉿 비밀! 비밀은 비밀스런 재미가 있어 유혹력이 강하다.
사년 전인가 오년 전인가. KBS 교향악단 연말 정기연주회 티켓 두 장을 얻어 그와
다녀온 적이 있었다. 방송국쪽으로는 처음이기도 했고 그와 여유롭게 나서는
일도 오래간만인지라 연애시절 데이트라도 된다는 듯 꽤나 신이 났었다.
거기다가 악기들 중 둥둥 울리던 북소리가 어찌나 내 가슴을 울려대던지 그날밤 잠을
이루지 못하였고 그 이후로는 교향악단 연주를 듣게되면 북소리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는 습관이 생겼다. 그 기억을 되살려 둥둥둥 북을 울리며 여의도로 간다.
7080. 듣기만 해도 정다운 숫자가 아닌가. 노래말이나 곡조만 들어도 마치
내 핏줄같은 느낌, 내 분신같은 느낌이 아닌가. 요즈음 아이들 노래는 빠르기도
하지만 음률의 변화도 무쌍해서 도대체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뿐더러
노랫말까지도 하도 직설적이어서 우리때의 지고지순한 표현하고는 딴판이다.
정서가 다르니 받아들이는 일이 어렵다. 7080세대 노래는 고향같은
그리움을 지녔다. 그리움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일은 당연한 일.
방송국 앞에서 마주친 친구 S를 보라. TV에 나올지 모른다며 미용실에 가서 머리에
힘을 주고 화장을 곱게 하고 멋을 내고 나왔다. 나 어제 저녁 얼마나 흥분되고
기대했는지 몰라. 으흐! 솔직하고 담백한 친구! 평상시보다 열 배 이쁘기는 한데,
그 많은 관객 중에서 카메라맨 눈에 띄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카메라맨에게
달려가 내 친구가 온갖 정성을 들이고 나왔으니 꼭 TV에 나오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아하게 웨이브를 넣은 뒷머리가 하도 아까우니 탐스런 맨드라미를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찍어놓자고 나는 그녀를 돌려세워놓고 셔터를 눌렀다.
그녀의 열정적이고 탐스런 마음이 찍혔다. 맨드라미 꼭 닮았다.
네 장의 표를 구해 친구들을 초대한 것도 감지덕지인데 친구 S는 미리와서
음식점까지 예약해 놓았다. 그 유명하고 비싼 안동찜닭이다. 오늘은 내가 쏜다.
그렇게 말하는 친구는 얼마나 멋진가 자신감이 넘치는가.
외손녀들을 봐주고 사위한테서 월급을 받으니 이 정도는 살 수 있어.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으며 그처럼 기쁘게 말할줄 아는 그녀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멋을, 맛을 품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려 한시간여 줄을 서서 기다렸다. 안타깝게도 미리미리 예약을 해야 했는데 좀
늦어진 관계로 정해진 자리가 없단다. 예약된 사람들이 일차로 앉고 그리고 우리는
남아있는 자리를 찾아 재빨리 앉아야 하는데, 그런 일에 약지 못한 나는 겨우겨우
자리를 하나 찾아냈건만 옆자리에 하필이면 키가크고 덩치가 큰 떡벌남이 앉아있다.
노인 특유의 냄새까지 보태져서 최악의 불편한 자리였지만 어쩔것인가.
자리가 없다. 화려한 무대와 가수들에게 집중하고 열심히 박수를 쳐서 고통을
잊도록 노력하는 수 밖에.
무대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고 재빠르게 움직이는가.
악단이 무대 앞쪽에 자리잡고 뒤쪽에는 조명 감독이,왼쪽에는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
주는 도움이들이 뛰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가수가 기타를 들고나오자 기타의 음정을 확인하고 가수가 준비되었는지
확인을 한다. 노래가 끝나면 무대 위에 있던 설치물들을 재빠르게 치우기도 한다.
오른쪽으로는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둘 있었는데 아마도 편집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오른쪽 무대 앞쪽으로는 코러스 세 명이 서 있다.
노래가 시작되기 전 관객들을 향하여 카메라가 서너번 빙빙 돌았는데
눈에 띄게 열심히 열렬하게 손뼉을 치고 환호를 하면 TV나올 확률이 있다나
최대한 남다르게 해보라나.뭐라나. 카메라맨이 신호를 보낼 때마다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신이나서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틈에서 S 역시도 열렬하게
환호하고 있었다. 바라보는 나로 하여금 친구가 꼭 TV 화면에 나와주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만들만큼이었다.
배철수는 화면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유머가 넘치고 나이만큼 여유로움이 묻어나
분위기를 매끄럽게 이끌어간다. 제일 처음에 이무송이 나와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불렀다. 사랑을 하면서도 후회해도 한평생을 살 사람아. 정 주고 사는 인생
힘들어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노사연과의 결혼생활에서 얻은 지혜가 아닐까.
아니 모든 부부들의 공통된 생각이 아닐까. 가요는 우리 삶의 이야기다.
두번째로는 똑순이 김민희가 나왔다. 연기자에서 가수로 데뷔를 한 모양이다.
연기자치고는 노래를 잘 불렀지만 글쎄 내 귀에 들려오는 그녀의 노래는
음정이 불안하고 서툴다.감정 전달이 부족하다. 당신 그리울 때 라는 노래인데
은근하게 그리움을 부르기보다는 보고싶다고 소리소리 지르는것 같다. 최백호가
작사작곡 했다는데 안부르는 듯 부르라고 어려운 주문을 했단다. 그 주문만큼
되려면 일년은 더 불러봐야 될 것 같다며 자신의 현재 실력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그녀, 참 명랑하고 당당해 보인다.
임지훈의 나의 하루속에 그대가 있어요. 양하영의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한다.
그리고 임지훈의 아들 임현식이 나와서 아빠와 함게 노래를 불렀다.
어느 무대 한 장면도 소홀하지 않다는 거, 참으로 열심히 집중해서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거. 매번 그러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가수를 비롯한 무대 위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그 자체가 감동이다.
무려 한 시간 반을 가수들 노래에 맞추어 호응하고 박수치고 소리 지르고.
나중에는 손뼉을 칠 기운도 없다. 호응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지
처음 알았다. 무대 조명이 계속 번쩍거리니 처음에는 신기하던 것이 차츰
눈이 부시고 정신이 없다. 그럼에도 무대 바로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가지 환호성을 지른다. 앞자리는 가수의 얼굴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즐거움 만큼
그 만큼의 호응을 보낼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이 앉아야 하겠다. 나 같은
무덤덤한 사람이 앉으면 무대 위에 가수들 기분 다 망쳐놓겠다.
내게 좀더 흥이 많고 체력이 충분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박수를 얼마나 많이 쳤는지 손바닥이 얼얼했으니 그만하면 관객으로서의
의무를 잘 이행한 듯 하다. 나 또한 흥에 겨워 했으니 친구 덕분에 추억의 책갈피에
추억하나 추가되었다. 7080이라는 이름으로. 친구 따라 어딘들 안가랴!
첫댓글 추억의책갈피에
사ㅡ알짝끼여놓고서7080추억을새깁시다
친구야이젠그프로가없어진다네요
그날 안갔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 했네
마지막 공연이었다니!!
그러니 더욱 소중한 추억!!
고마워!!! 순네 화가님!!